15일인 어제 판문점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남북 군사실무회담이 뚜렷한 성과 없이 끝났다고 한다. 그러나 몇 년만에 진행된 회담이고 서로 간에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는 것만으로 의의를 찾지 않는 신문이 적지 않다.

<국민일보>·<서울신문>·<세계일보> 등 평소 잘 언급하지 않던 일간지들의 태도까지 봐도 그렇다. 이들 신문들은 사설에서 남북군사회담의 의의를 나름대로 평가했다. 16일자 <국민일보>는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 합의점 찾지 못했지만>란 제목의 사설에서 “국방부가 특별히 합의점을 찾지 못했으며, 추후 접촉 일정도 잡지 못했다고 발표했지만 접촉이 오전 10시에 시작돼 오후 3시10분까지 진행된 점을 감안해 볼 때 다양한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했다.
<국민일보>는 “다행히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5·24조치 해제의 전향적 검토를 시사한 데 이어 군사 당국자 접촉이 이뤄짐으로써 큰 틀에선 대화 분위기가 회복세로 돌아섰다는 느낌을 준다”라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 16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같은 날 <서울신문>의 경우 <남북, 우발적 충돌 막을 방안 강구하라>란 제목의 사설에서 “어제 판문점에서 전격적으로 열린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은 논의 내용과 별개로 남북한 대화 재개의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라고 평가했다. 또 <서울신문> 사설은 “어제 회담이 특히 고무적인 것은 북측 주도로 추진됐다는 점이다. 북은 NLL 충돌 직후 우리 측에 전통문을 보내 비공개리에 군사 대화를 갖자고 제안했다고 한다”라면서, “3년 8개월 만에 재개된 군사회담인 만큼 첫술로 배를 불릴 수는 없다고 본다. (...) 히 양측 군 당국이 중시해야 할 점은 우발적 무력 충돌에 의한 확전 가능성이다”라고 제언했다.
<세계일보> 역시 <3년8개월 만의 남북군사회담, 원칙 갖고 화해 길 터야>란 제목의 사설에서 “군사실무회담이 열리기는 2011년 2월 개최 이후 3년8개월 만이다. 장성급이 만난 것은 2007년 12월 이후 7년여 만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과 대북전단에 대한 고사총 발사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열린 회담인 만큼 의미가 크다”라며 그 의미를 평가했다. <세계일보> 사설은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의미는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사실이다. 서로 말 붙이기 힘들었던 ‘현실적 암초’ 하나를 걷어낸 셈이다”라고도 평했다.
그런데 결코 진보언론으로 분류될 수는 없는 이 신문들의 사설을 읽고 보수언론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사설을 접하면 일종의 ‘당혹’이 느껴진다.
▲ 16일자 조선일보 3면 기사
16일 <조선일보>는 <'천안함 도발 주역' 내보낸 北과 대화해야 하는 현실>이라는 제목부터 비분강개가 넘치는 사설을 게재했다. 자세히 뜯어보면 “이런 북한과 마주 앉아 대화하고 합의를 일궈내는 것은 엄청난 인내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고 북한과의 대화를 피할 이유도 없다. 긴 호흡으로 남북 대화를 이어 갈 원칙과 분명한 방향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로 마무리되는 등 대화를 하지 말자는 사설은 아니다.
그러나 “북측의 요구는 우리 측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들이다. 북이 일방적으로 NLL보다 더 남쪽에 그어놓은 경계선을 지키라는 것은 우리에게 해양(海洋) 주권을 포기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억지다. 북측은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무슨 중대한 도발인 양 거듭 문제 삼고 있지만 북한도 최근까지 군부대 등을 동원해 남측으로 선전 전단(삐라)을 뿌려 왔다”라며 북한의 요구를 시시콜콜하게 비판한 부분은 흥미롭다. <조선일보>의 이러한 견해에 반대할 이유는 별로 없지만 간만에 회담을 한 북한이 그간의 주장을 고수했을 뿐인 상황에서 굳이 이러한 비판이 필요했는지는 의문이다.
“이날 회담에 나온 북측 수석대표는 김영철 국방위 정찰총국장이다. 김은 우리 장병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폭침(爆沈) 도발의 주역이다. 우리 입장에서 그는 전범(戰犯)이다. 그런 인물까지 상대해야 하는 것이 남북 회담의 어려움이고 현실이다”라는 구절 역시 그렇다. 김영철 국방위 정찰총국장이 천안함 도발의 주역이라는 건 현 단계에선 추측일 뿐이다. 그리고 설령 우리 측 추측이 사실이라 해도 실권자가 나서는 대화가 더 의미 있는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 생각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결국 <조선일보>의 사설은 읽는 이들의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유지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 16일자 동아일보 3면 기사
대북문제에 관한 한 <조선일보>를 종종 능가하기도 하는 <동아일보> 역시 이에 질세라 울분을 토했다. 같은 날 <동아일보>는 <남북대화 필요해도 NLL은 논의 대상 될 수 없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이날 남북이 다시 머리를 맞댄 것 자체는 평가할 만하지만 북한이 2004년부터 제기해 온 ‘서해 해상경비계선’ 문제를 다시 꺼낸 것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하려는 책동을 되풀이하겠다는 의도여서 개탄스럽다. NLL은 정전 후 우리가 관리해 온 해상 경계선이다”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사설은 “북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11월 제2차 남북 국방장관 회담과 그해 12월 제7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도 이 문제를 제기했다.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다는 논란이 일었던 김정일과의 정상회담 직후였다. 당시 남북이 논의했던 서해 공동어로 수역은 사실상 NLL을 무력화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라면서 이미 합리성을 상실한 참여정부의 NLL 포기 논란마저 언급했다.
또 <동아일보> 사설은 “정부는 어제 북이 비공개를 요구했다는 것을 핑계로 회담이 열리는 동안 의제와 참석자 등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회담이 끝난 뒤에야 브리핑을 했다. 대북 정책을 투명하게 추진하겠다고 다짐해 놓고도 실제로는 비밀주의의 타성에 빠져 있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남북 관계에선 급할수록 돌아가고, 정도(正道)를 걸어야 뒤탈이 없으며 국민의 오해를 사지 않는다”라며 정부의 태도도 비판했다.
▲ 16일자 한겨레 3면 기사
비록 두 언론은 남북대화의 필요성은 부정하지 않고 있으나 저렇게 뻣뻣한 자세로 정부가 어떤 회담이나 협상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화해협력의 의지가 있음을 강조하면서도 진척이 없는 이유를 이들 보수언론의 훈수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한편 같은 날 <한겨레>는 <남북 군사회담, 꾸준히 이견 좁혀가야>란 제목의 사설에서 ‘인내’를 강조했다. <한겨레> 사설은 “하지만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견을 좁히기 위해서는 서로의 처지를 배려하는 태도가 필수적이다”라면서, “과거 남북은 ‘양쪽이 관할해온 구역’을 존중하고 의견 대립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풀기로 여러 차례 합의한 바 있다. 엔엘엘 문제 역시 이런 정신에 기초해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또 <한겨레>는 “대북 전단 살포는 정부가 중단시키는 쪽으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겨레>의 모든 주장에 동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겨레>의 주장 정도는 논의영역에 들어올 수 있어야 북한과의 대화도 가능해질 것이다. 미리부터 ‘이 문제는 논의할 수 없다’고 못 박는 태도로는 대북관계를 푸는 것이 불가능하다. 국내에서야 박근혜 정부가 선출의 정통성이 있으니 야당을 그런 태도로 대해도 통치가 가능하지만, 북한 체제는 자의적인 권력기관이고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이 미치는 영역 밖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비분강개에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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