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당국이 병영 내 부조리와 폭력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병사 계급체계를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병은 훈련소에서만 쓰고, 병장은 분대장에게만 준다는데

14일 육군본부는 충남 계룡대에서 진행된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 “병영 내 부조리와 폭력을 없애기 위해 병 계급체계를 검토하고 맹목적 복종 강요, 왜곡된 서열 문화를 개선하겠다”고 보고했다.
병사 계급 개편 검토에서는 4가지 계급명칭은 유지하되, 이병은 신병 훈련기간에만 부여하고, 병장도 상병 가운데 우수자로 선발돼 분대장이 된 경우에만 소수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이런 방향으로 병사 계급 개편 검토 방안이 확정된다면 실질적으로 자대에선 일병과 상병, 그리고 소수 병장이 있는 ‘2+1’ 계급으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육군은 병사 계급체계 개선안을 마련해 오는 12월쯤 국방부에 관계 법령 개정 등을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병사 계급체계 간소화 방안에 제도적 합리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병-일병-상병-병장의 4단계 계급은 사실상 대한민국 육군의 역사와 함께 했으나 복무기간이 만 3년이 넘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다. 군 복무기간이 21개월로 준 지금 시점에서 간소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면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 14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의 육군본부 국정감사에서 군 관계자들이 감사에 앞서 자료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 이병의 기간은 점점 줄어들어 갔을까
그러나 계급별 복무기간의 변동추이를 보면 다소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10여년 전 복무기관이 26개월로 줄었을 때 계급별 복무기간은 6-6-8-6이 되었다. 복무기간이 24개월로 줄었을 때 계급별 복무기간은 6-6-8-4가 되었다가 병장의 기간이 너무 짧아 사병들의 불만이 있다는 이유로 6-6-7-5로 수정되었다.
21개월 복무하는 최근의 계급별 복무기간은 3-7-7-4다. 복무기간이 24개월에서 더 줄어든 2010년까지도 6-6-7-4를 유지했다는 증언이 있는 걸 보면, ‘이병 해체’는 군 당국이 이번에 느닷없이 들고 나온 방안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병 해체’라고 표현하면 마치 군 당국이 박근혜 대통령의 ‘해경 해체’에 한 수 배운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그들은 박 대통령보다 몇 년 먼저부터 ‘이병 해체’를 야금야금 추진한 한 수 위의 내공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무엇보다, 계급체계 간소화는 병영 부조리나 폭력 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점에서 이 방안이 ‘깜짝쇼’ 내지는 ‘책임 떠넘기기’가 아닐까 우려하게 된다. 크게 보면 두 가지 부분에서 그렇다.
병영부조리의 뿌리깊은 구조를 보면
첫 번째는, 생활관(과거의 내무반)을 지탱하는 사병들의 질서는 계급과 상관없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군생활한 이들은 누구나 알 듯, 한국 사회 징병제 사병들의 질서는 ‘짬순’으로 정렬한 서열에서 나오는 것이지 계급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다. 군번이 꼬여 ‘상병 막내’가 된다면 ‘일병 막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군생활을 해야 하고, ‘일병 왕고’는 ‘서열 이삼위의 병장’과 다를 바 없는 권세를 누린다. 부대마다 달라지는 건 서열의 구획을 어떻게 하느냐, 즉 입대날짜로 자르느냐, 주단위로 자르느냐, 아니면 입대연월이 같은 이들까진 동기로 보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선후임관계를 대대까지 인정하느냐 중대까지 인정하느냐의 여부도 각자 다르다.
그렇다면 계급체계 간소화 말고 이 서열구조를 일소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현재의 물질적 토대에선 어렵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징병제 사병들이 서열을 나누는 이유는 ‘부족한 재화를 분배하는 방식’과 ‘세월을 견디는 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지난 9월 6일 오전 경기도 연천군 육군 28사단 GOP부대에서 면회 가족들이 병사들이 사용하는 생활관을 둘러보고 있다.국방부는 이날 병영문화 혁신 방안 가운데 GOP부대 주말 및 휴일 면회를 창군이래 처음으로 실시했다. (연합뉴스)
가령 한 생활관에 비치된 세탁기가 사병들 모두가 원활하게 사용할 수는 없는 정도라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조율이 필요하다. 이럴 때에 ‘모두가 공평하게 어떤 물품은 세탁기를 쓰고 어떤 물품들은 손빨래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환영받는 결론이 아니다. 이런 결론을 위해서라면 상호 간의 협의를 통해 결론을 도출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한데, 한국 사회의 남성들은 정규교육 과정에서 이런 훈련을 받아 본 기억이 없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고, 전역한 후에도 대부분 그런 질서를 체험해볼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가장 단순한 해법은 “상병부터 세탁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식의 병영부조리다. 앞서 말한 평등주의적인 질서는 자신이 손해를 감수할 의지가 충만한 이가 실세 병장이 되어 새로운 질서를 선포할 때에야 그가 ‘이빨 빠지는’ 신세가 되기 전 이삼개월이라도 실시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경우라도 그 실세 병장은 말년병장이나 자신과 1~2개월 차이 밖에 안 나는 바로 아래 후임을 자신의 질서 안에 편입시키는 것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병영부조리, 차압당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발명품?
또, 징병제 사병들은 사실상 그들이 차압당한 세월을 보상받을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스스로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소소한 쾌락을 발명할 수밖에 없다. 재화가 부족하지 않더라도 민간인의 입장에선 쓸데없이 생기는 병영부조리가 그것이다. 만약에 군생활의 모든 기간의 고통이 균일하다면 군생활은 견디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특정 시기부터 ‘사제’ 비누를 쓰는 것이 가능해지고, 특정 시기부터 생활관 침상을 뛰어서 건너다닐 수 있으며, 특정 시기부터 활동복의 지퍼를 끝까지 올릴 수 있고, 또 주머니에 손도 집어넣을 수 있다면,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자유도가 더 높아지고 권력의 양이 증대된다면 그들은 고통 속에서도 고통이 조금씩 덜해지고 가끔씩은 쾌락이 찾아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징병제 사병들은 이를 ‘짬 먹는 재미’라고 표현한다.
그렇기에 이를 일소하기 위한 대책은 임시방편으론 효과를 보기 어렵다. 사병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임금을 인상하고, 외출·외박·휴가를 기본적 권리로 지급하며, 인권문제를 외부에서 감시하는 군옴부즈맨 제도와 같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것들은 모두 비용이 들거나 군 내부의 치부를 드러내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현재의 군 당국이 결단코 회피하려는 대안이라고 볼 수 있다.
▲ 육군 제3공병여단(여단장 대령 김영동)이 3일 부대 장병의 부모님을 부대로 초청하는 부대 개방 행사를 했다. 이날 장병 부모들은 자신의 아들과 함께 병영문화를 체험하고 안보현장도 견학했다. (연합뉴스)
'이병 관리'는 없앴지만, '분대 건제'는 남기나
두 번째 이유는, 이 계급체계 간소화가 민주정부 10년 간 군대 개혁 방안의 유산을 잘못된 방식으로 제거하거나 활용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정부 시절, 군 인권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자 했던, 그러나 역시 사병들의 생활을 개선하는데 많은 예산을 부을 수 없었던 군 당국은 이등병과 관심사병에 대한 관리의 양을 늘렸다. 이등병이 간부와 상병장들 사이에서 ‘이등별’로 불리게 된 사연도 거기에 있다.
물론 이등병에 대한 집중관리 역시 임시방편이었다. 2천년대 중반에 이미 군대에서 가장 많이 자살하는 계급은 이병이 아니라 일병이라는 말이 돌았다. 집중관리를 받던 이병도 일병이 되면 업무가 폭증하고 관리가 사라진 상황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대에 막 배치된 사병에게 일종의 유예기간을 주는 것이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 몇 년 사이 이병의 계급별 복무기간이 줄어들다가 사라지게 된 상황은 과거의 노력마저 ‘무’로 돌리려는 ‘꼼수’가 아닌가 우려되는 부분이다.
병장에 대한 개혁안은 현 군 당국이 민주정부 시절의 ‘이병 관리’는 포기했으되, ‘분대 건제’는 계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다. 2천년대 육군에게 ‘분대 건제’는 병영부조리를 일신하기 위한 숙원목표였다. ‘분대 건제’ 원칙은 부대원이 분대 단위를 기본으로 생활하게 하며, 분대장이 아닌 병 상호간엔 지시·간섭·통제를 금지하고, 분대 내부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선 분대장이 책임을 지는 구조를 목표로 했다.
그러나 이 역시 분대장 개인에게 너무 과도한 책임이 지워지는 결과를 낳았고, 분대장이 되지 못한 병장이 소외되거나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낳았다. 민주정부 시절 군대 개혁의 취지는 좋았을지 모르나 현실적 맥락에서 그것이 가지는 개혁성은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이미 드러난 복안인 것이다.
▲ 육군은 14일 병사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생활토록 하는 현행 병영생활관의 공간을 나눠 개인 생활을 보장하는 개념으로 구조를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병영생활관 내 병사들의 침실과 TV시청실, 다용도실은 중간에 강화유리로 칸막이를 설치해 분리하고 TV시청실과 다용도실은 주름커텐을 설치해 구분하기로 했다. 위는 변경 전, 아래는 변경 후. (연합뉴스) (육군 제공)
'꼼수' 말고 '정수'를 보고 싶다
‘상병 중 분대장이 된 이만 병장으로 진급’이란 식의 제도개편은 분대 건제와 분대장 권한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드러났듯이, 생활관의 작동원리에서 동떨어진 이러한 부자연스러운 질서를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또 다시 이전 시대에 군생활을 한 이들은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병영부조리를 낳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된다.
결국, ‘깜짝쇼’나 ‘책임 떠넘기기’가 감추려는 것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한 진지한 대안일 수밖에 없다. 군 당국이 추진하는 병영개혁 방안이 이것만은 아니겠지만, 국정조사에서 이런 것을 주요하게 발표했다는 사실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군 당국의 안이한 대응을 비웃는 것을 넘어, 시민사회가 군대 개혁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정책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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