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세월호 유가족의 대리기사 폭행사건에 피의자로 연루된 김현 의원에 대해 국민을 향해 대신 사과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김현 의원에 대해 "당 소속 의원이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가슴 속 깊이 정중한 사과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문희상 위원장은 이어서 "김현 의원은 세월호 유족의 아픔과 서러움을 치유하는 데 온 몸을 던진 분이고 여대생 자녀를 둔 어머니로서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유족 옆에서 늘 같이 서 있었다. 그러나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죄송하다"는 뜻을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속해있던 김현 의원과 외교통상위원회에 속해있던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상임위를 맞교대하는 방식으로 김현 의원의 안전행정위원회 사임과 보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이 경찰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안행위에 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다. 또 좀 더 해석을 덧붙여 보자면 아무래도 안행위 의원이 세월호 참사 관련해서 발언하는 일이 많은 만큼 물의를 일으킨 세월호 문제의 일선에서도 물러나게 하려는 의중이라 짐작해볼 수 있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6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통해 김현 의원 문제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세균, 문희상, 박지원 비상대책위원. (연합뉴스)
유가족 실수 기다린 새누리와 보수언론?
세월호 참사 후 정국을 돌이켜보면,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은 ‘대리기사 폭행사건’과 같은 것을 기다려 온 듯하다고 비판할 수밖에 없다. 이는 보수언론이 대리기사 폭행사건 전에도 세월호 참사 유가족 중 장기단식을 했던 김영오 씨를 향한 루머가 널리 보도되었다는 사실에서 정황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단식자 김영오 씨가 양육비를 낸 적이 없다느니 국궁을 취미로 했다느니 따위의 인신공격은 사실은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논쟁과 관련도 없는 것이었다. 다행히 김영오 씨에 관한 것은 대부분 사실관계의 맥락상 그릇된 것으로 판명되어 지나가긴 했다. 하지만 여기서 보인 것은 그들이 세월호 특별법 정국이 교착된 상황에서, 정치적 요구를 가장 강하게 하는 유가족 집단에 대한 도덕적 추문을 통해 이 상황을 돌파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비유적인 차원에서 볼 때는 경찰이나 용역이 출동해 그들을 ‘들어내고’ 세월호 특별법 합의를 하려는 시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드디어 대리기사 폭행사건 건이 터지자 보수언론 사설들은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를 맹공했다. 물론 대리기사 폭행사건 자체는 옹호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자녀를 잃은 후 사실 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에서 거대 여당과 그들을 지지하는 많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혹은 무신경한 모욕을 감내해야 했던 이들의 처지를 최소한의 인간적인 수준에서도 고려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적어도 폭행사건과, 세월호 협상 국면에서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의 태도와, 가족대책위가 내세운 세월호 특별법안의 타당성 문제를 엮어 버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바로 그렇게 했다. 여야의 협상을 비토하는 가족대책위의 결단과 그들이 지지한 세월호 특별법안의 내용은 마치 대리기사 폭행처럼 대의민주주의와 형사법체계에 대한 폭행으로 규정되었다.
이를 두고 물론 “수법이 더러워서 그렇지 그들의 정치적 입장에서는 똑똑한 대응이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가치평가의 차원에서 “똑똑한 대응이었지만 대단히 더러운 수법이었다”라고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1일 김명연 의원과 함께 분향하기 위해 안산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새정치민주연합, 유족보단 구성원을 보호했나?
그러나 이와 별개로 새정치민주연합의 처신은 비판받을 구석이 있다. 새누리당의 행위는 몹쓸 것이었다는 가치판단과 별개로 예측할 수 있는 것이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청문회서부터 그들이 보여준 목불인견의 태도는 야권의 모든 지지층들이 목도했던 바다.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은 그러한 상황을 ‘상수’로 두고 정치를 해나가야 하는 입장이다.
그런 차원에서 평가해본다면, ‘대리기사 폭행사건’과 관련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처신은 근본적인 차원부터 세부적인 차원에서까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먼저 근본적으로는 정치세력이 뒤로 빠지고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라는 피해당사자가 투쟁의 전위에 서게 만든 무능에서부터 모든 문제가 파생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니 만큼 일단 원론적인 지적만 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두 번째로, 그 민감한 정국에 사람들의 눈이 많은 여의도에서 김현 의원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만취하도록 술을 마셨다는 점부터 납득하기가 힘들다. 유가족들이 이런 상황에서 평정심을 잃기 쉽다는 것과는 별개로, 정치인이 그 정국에서 어떤 행위를 한 것이 적절하느냐의 문제는 평가할 수 있다.
세 번째로, 사고 이후 김현 의원의 태도와 새정치민주연합의 수습도 석연치 않다. 비록 기억이 없었을 수 있으나 CCTV 화면의 내용과 상이한 변명을 하는 의원의 모습과 이에 대해 가타부타 평하지 않는 정당의 모습은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이 유가족들의 추문을 질타할 때 자신의 보위나 제 조직의 구성원만을 보호하려 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문희상 비대위원장의 사과조차도 내용을 뜯어본다면 김현 의원의 선의를 강조할 뿐,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선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상세한 사과가 오히려 역공의 빌미를 주는 것을 우려했을 수 있지만, 이 정도 차원의 구체성이 없는 도의적인 사과라면 훨씬 일찍 낼 수도 있는 일이었다.
▲ 세월호 유가족의 '대리기사 폭행' 사건에 연루된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이 3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영등포 경찰서에 출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김 의원은 이날 "공동폭행 혐의를 주장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혐의 부인했는데 지금도 같은 입장이냐" 등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으나 "대리기사분이 사과를 계속 안 받고 있는데 대한 입장을 말해달라"는 요구에는 "사과 드립니다"라고 답했다. (연합뉴스)
‘피해당사자 정치’를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특별법 정국에서 새누리당과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심으로는 ‘수사권과 기소권’이란 요구가 무리하다 여기면서 그 점을 유족에게는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일관성 있는 새누리당과의 대응에서 판판이 깨졌다.
예전에도 한 번 정리했듯이, 새누리당의 세월호 특별법 정국에 대한 대응은 세월호 ‘특별법’은 ‘보상’의 문제로 만들고, 세월호 참사의 ‘책임’은 ‘유병언’에게로 몰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은 ‘교통사고’로 요약하는 것이었다 볼 수 있다.
‘특별법’=‘보상’, ‘책임’=‘유병언’, ‘진상’=‘교통사고’. 이 도식에서 세월호 참사 유족들은 깊은 슬픔을 겪고 있는 동정의 대상이지만, 보상은 유병언의 재산에서 나와야 하고, 별도의 진상규명의 필요성은 없게 된다. 새누리당의 이러한 논리는 야권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억울해하는 종편 방송과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무한재생산되었는데, 새정치민주연합은 매체 탓을 하기 이전에 이러한 논리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책조차 만들어내지 못했다.
▲ 지난 9월 30일 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세월호 희생자 정부 공식 합동분향소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대책위 전명선 위원장(앞 왼쪽), 유경근 대변인(앞 오른쪽)이 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3차 합의안에 대한 유가족대책위의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새정치민주연합 일각에선 유가족들의 강경한 요구에 휘둘렸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은 그렇게 변명할 자격도 없어 보인다. 유가족들 역시 수사권과 기소권만을 고수한 것이 아니었다. ‘특별법’=‘보상’이란 등식에 맞선 방어논리가 ‘수사권’과 ‘기소권’으로 나왔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제시해 달라는 나름대로 ‘유연한’ 움직임을 취하기도 했다. 정치세력도 아닌 피해당사자들이 이 정도 움직임을 보여줬는데 그들과 제대로 된 소통도 못하고, 새누리당의 논리에 맞서는 대항논리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새정치민주연합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유가족에 대한 공감을 표하면서도, 협상이 고착되면 그들을 강경파로 묘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에 권한 있는 진상조사위원회게 필요한 이유를 보여주지는 못한 채 ‘박근혜 7시간’을 추문으로 제시하거나 청와대나 국정원을 물고 늘어지는 것에 열심인 것도 새정치민주연합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유가족에게 책임을 돌릴 게 아니라 어떻게 ‘피해당사자의 정치’를 벗어나 그들 자신이 정치의 당사자로 돌아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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