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의원투표를 통해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로 선출되었던 박영선 의원이 만 4개월여 지난 2일 아침 사의를 표명했다. 박영선 원내대표는 7.30 재보궐선거의 패배 이후 8월 4일 비상대책위원장 자리까지 수락하면서 내년 2월 전당대회 이전까지 당권을 행사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8월 7일과 19일에 두 번 이루어진 세월호 특별법 여야 합의안의 좌초로 불과 한 달 여만에 9월 18일 출범한 ‘문희상 비대위’에 당권을 넘겨줬다. 박 의원은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 마무리 되면 원내대표를 사퇴하겠다고 밝혀왔고, 오늘의 사퇴로 원내대표로서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4개월의 임기 치고는 격랑이었다. 원내대표와 함께 비대위원장을 겸임한 것이 큰 실책이었다. "다들 독배 마시라고 하니 마시고 죽겠다"며 등장한 박영선 비대위원장은 원내대표의 직무로 이루어진 세월호 특별법 합의에 좌초했고 결국 비대위원도 선임하지 못한 ‘나홀로 비대위’ 상태로 한 달을 갔을 뿐이다.
원내대표와 비대위원장을 겸임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을 내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확인된 바에 따르면, 박영선 의원의 주변에서도 ‘받아들이지 말라’는 조언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외려 그 상황에서 외부 인사를 비대위원장으로 수혈하면서 자신을 비대위원 중 한 명으로 포함시키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이었다.
‘박영선 비대위’의 출범에는 박지원 의원과 박범계 의원의 설득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종의 ‘박-박-박 커넥션’이었다. 한 정치부기자는 “냉정하게 말하면 박영선 의원이 원내대표가 된 건 ‘강경파들이 내세운 허수아비’의 성격이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박영선 의원은 욕심이 컸다”라고 분석한다.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는 “박영선이 대권까지 꿈꾼다더라”는 말이 돌았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소통이 부족했던 두 번의 독단적인 세월호 특별법 합의 역시 어쩌면 그러한 욕심의 산물이었다. 이 해석을 따른다면, 어려운 사태를 해결하고 멋지게 한 방에 ‘대권주자’가 되려고 했던 욕심, 그 욕심이 ‘박영선 비대위’ 뿐만 아니라 ‘박영선 원내대표’의 수명도 갉아먹었다.
▲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1일 경기도 안산 세월호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를 방문,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제공) (연합뉴스)
뒤늦게 박영선 의원은 안구에 습기가 차는 ‘나홀로 비대위’를 탈출하기 위해 외부인사를 비대위원장으로 선임하려 했다. 비대위원장의 의무를 내년 2월 전당대회를 위한 공정한 경선룰을 확정하는 것으로 보았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이번에는 사실상 당내 계파수장들을 불러 양해를 구하는 등 조율의 과정도 그쳤다.
그러나 박 의원에 대한 신뢰를 잃은 강경파들은 또 한 번 봉기했다. 나쁜 쪽으로 본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의 누구도 외부인사가 들어와 전당대회의 경선룰을 짜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어쩌면 다음 전당대회 룰도 계파 간의 타협으로 짜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같은 당 소속이라기보단, 2011년에서 2012년 사이의 통합진보당과 같은 임의적인 연합정당이었다.
현 시점에서 당의 대주주는 분명하다. ‘친노’다. 정치권 관계자나 정치부기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친노’는 실존하지만 많이 분화된 상태다. 그래서 누군가는 “더 이상은 친노가 없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더 이상은 범친노가 아닌 이가 드물다”라고 말해야 할 상황이다. ‘친노’의 분화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 ‘친노’를 견제할 만한 다른 계파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손학규 당대표 시절만 해도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했던 당내 계파의 질서는 모바일 투표로 김한길을 꺾고 당선된 이해찬 당대표를 거쳐 한명숙 당대표의 시대를 거치면서 급격하게 붕괴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정치인들도 정치인들이지만 주요 당관료를 ‘친노 486’이 장악했기 때문에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힘들다”라고 설명한다.
▲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상임고문이 7.30 재보궐선거 수원병에 출마했다고 낙선한 다음날인 7월 31일 오후 국회에서 정계은퇴 기자회견을 한 뒤 손흔들며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새정치민주연합이 향후 변혁을 하려면 이제는 서로 분화해서 다투고 견제하기도 하는 이 ‘주류세력’의 위기의식이 필요한 상황이다. 혁신에 기대를 거는 이들도 존재한다. 친노세력을 아는 한 관계자는 “아직 조심스럽지만 최근 문재인 의원의 당내 역할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면서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주목받는 분위기가 있다”라고 말했다. 얼마 전 국회에서 열린 안희정 지사의 출판기념회 때는 수천여명의 인파가 몰려 대선출정식을 방불케 했고 친노 계열 의원 수십 명이 방문해 눈도장을 찍었다. 친노세력이 대권후보를 양보할 뜻은 없지만, 대안으로 안희정을 검토할 만큼 위기의식은 가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의 행태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도 물론 있다. 다른 관계자는 “그들이 ‘이상돈 비대위’를 그토록 반대한 이유가 뭐겠나”라면서, “결국 새정치민주연합 내 대권경쟁은 ‘박원순 대 문재인’이 될 것이고, 2012년 안철수와 문재인 사이에 일어났던 일처럼 지지층은 박원순을 더 선호하는데 문재인이 다시 나와 지는 그림으로 갈 것 같다”라고 전망했다.
또 그 관계자는 “하지만 모바일 투표의 경우 당내외로 ‘친노 독식’의 유력한 무기라는 비판이 워낙 많아 관철이 쉬울 것 같지는 않다”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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