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에 대한 진보진영의 관심이 뜨겁다. <경향신문>은 30일자에서 “ 참된 보수라면 극우세력의 무분별한 행태에 편승하거나 방관해선 안 된다. 분명히 선을 긋고 적극적으로 비판해야 마땅하다. 공론장의 논의를 통한 사회적 제재로도 충분치 않다면, 차별금지법의 연장선상에서 혐오범죄를 규제하는 입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입법화할 경우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구성요건을 엄격히 해야 할 것이다”라며 사회적 제재 및 혐오범죄 규제 입법 검토를 밝혔다.

또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가 형법 제114조 및 폭처법 제4조 ‘범죄단체조직죄’에 의거해 처벌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트위터에 올린 바 있다. 조국 교수의 견해는 진보 성향 누리꾼들에게 환영을 받으며 SNS상에서 계속 공유되고 있다.
그러나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가 그 자체로 현행법상으로 처벌이 가능한가 문제와 별개로 이 사안을 법리논쟁으로 가져가는 것이 과연 최선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물론 누군가 그들을 고발하여 형법이나 폭처법의 규제대상이 아닌지를 법원이 검토해 보는 행위 자체는 의미를 가질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고발도 법원에게 판단을 맡기면서 사안을 널리 알리며 사회적 공론화를 유도하는 목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공론화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문제제기를 명확하게 해야 하고, 같은 정치적 견해를 공유하는 이들을 넘어 다른 당파를 설득하는 논리를 가져야 바람직할 것이다. 현재 야권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박근혜 대통령과 현 정권에 분통을 터트리는 주요한 논리 중 하나는 “반대파와 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일종의 민주주의의 원칙으로 상대당파에게 요구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같은 원칙을 자신들에게도 적용시커야 한다. 다수파는 소수파와 대화하지 않고도 국정을 어떻게든 운영할 수 있지만, 소수파는 다수파를 설득시키지 않고는 어떠한 제도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에, 이는 정치적으로 소수자인 이들에게 더욱 절실한 고민이다.
서북청년단의 활동 내용으로 공개된 것은 아직까지는 시민들이 추모를 목적으로 가져다 놓은 노란리본의 철수를 시도한 것 밖에 없다. 안두희의 김구 암살을 의거로 이해한다는 준비위원장의 발언이 소개되었지만, 대변인이 이를 반박할 만큼 아직까지는 일관된 논리나 체계화된 실무 조직도 발견되지 않는다.
▲ 30일 배성관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 위원장이'일베'에 올린 게시물 화면 캡쳐 사진
서북청년단이 한국 현대사에서 테러집단이었다 하더라도, 정관이나 조직체계도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는 것이 올바르냐는 질문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 법을 적용하려면 적어도 범죄를 범하는 것을 목적으로 일정한 지휘통솔체계를 갖춰서 행위를 시도했음이 드러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범죄구성 혐의를 맥락적으로 폭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진보진영은 대체로 이런 문제에 대해서 엄격한 법해석을 옹호해왔다. 대부분의 비판적인 법학자와 실무가들은 이런 조항의 타당성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확대적용은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위험성이 충분히 있을 때만 적용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러다가 이런 경우에만 말이 달라지는 상황은 이해하기 어렵다.
가령 적용되는 법은 다르지만, 당장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사건에 대한 해석에서도 그랬다. 녹취록엔 이석기 의원 등이 북한과의 전쟁이 일어날 경우 남한의 주요 시설을 타격해야 한다는 발언 등이 있고, 피고 측 변호인들은 녹취록의 증거능력을 부정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진보파는 이들이 처벌받으려면 좀 더 구체적인 모의가 있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 입장의 일관성을 고수한다면, 진보파는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를 맹렬한 어조로 비난한다 하더라도 그들에 대한 법리적 처벌에는 오히려 반대해야 하는 입장이 아닐까?
진보파가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에 대한 일관성을 훼손하지 않고 이들에 대한 법리적 처벌의 논거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혐오범죄(hate crime) 입법이다. 혐오범죄 입법을 하려면 또 다시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진보파는 보수파에게 서북청년단과 같은 극우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것과 별개로, 한국 사회에서 혐오범죄를 어떻게 규정하고 처벌기준을 만들 것인지에 대해 모든 당파와 시민들의 중지를 모아야만 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의 혐오범죄 입법에 대해 국제인권 규약의 규정을 참조하면 좋을 거라고 설명했다.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20조 2항에는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민족적, 인종적, 종교적 증오의 고취는 법률로써 금지된다”라고 적혀 있다.
홍성수 교수는 “이 조항이 금지하는 것은 민족, 인종, 종교 등 이른바 차별사유에 근거해서 폭력을 선동하는 것”이라면서, “그런데 한국 현대사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사상이 다른 집단을 ‘빨갱이’라 부르고 폭력을 선동하는 것 역시 금지해야 한다는 식의 확대적용이 가능할 것 같다. 이런 논의라면 논쟁가치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의 페이스북 화면 캡쳐 사진
홍 교수는 “이런 논의도 외국에서 하니까 우리도 해야 한다는 식으로 가면 안 되고 우리의 역사적 특수성을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서구에서 ‘민족, 인종, 종교’ 등을 특정한 것에 그들의 역사적 맥락이 충분히 있듯이, 분단상황에서 좌익 탄압의 특수성을 입증하고 그런 시도에 대한 강력합 법집행에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홍성수 교수는 “하지만 이런 논의를 시작할 때 드는 고민은 그들이 그렇다면 ‘종북세력’의 한국 현대사 맥락의 특수성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할 거라는 것이다. 서북청년단은 너무 위험한 이들이기 때문에 '말'만 해도 처벌해야 한다고 한다면, 종북세력도 너무 위험한 놈들이기 때문에 '말'만으로도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가 충분히 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말하자면 그간 진보세력이 국가보안법의 고무찬양 조항을 비판해온 논리가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무찬양 조항이 너무 폭넓게 적용되는 상황은 계속해서 비판할 수 있겠지만, 한국 현대사의 맥락적 특수성을 고려해 특정 정치세력을 찬양하는 발언을 금지해야 한다는 취지 자체를 부정하던 자유주의적 논변이 치명상을 입게 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홍성수 교수는 “어차피 좌우에게 공정한 규칙을 만들어야 하다면, 서로의 자유를 좁히는 쪽보다는 넓히는 쪽으로 만드는 게 낫겠다는 것이 제 개인 의견”이라면서, “그렇기에 서북청년단이란 발언에 대해 분노스러워도 구체적으로 위험한 행동에 나서지 않는 한 법적 개입엔 신중해야 하며 좀 더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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