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강원도 태백시의 한 골프장이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청정 골프장’을 만들겠다고 밝혀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이 골프장은 농약과 비료 대신 잔디의 생육 촉진과 병해충 예방에 탁월한 효과를 지닌 것으로 알려진 ‘목초액’을 사용하기로 했단다. 골프장 관계자는 실제로 목초액을 시범적으로 사용해봤더니, 색상과 질감, 성장 등 잔디의 생육에 뛰어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만약 이런 시도가 성공을 거둔다면, 앞으로는 골프장에서 사용하는 농약 때문에 생길 수 있는 환경오염을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골프장의 잔디와 나무를 관리하기 위해 농약은 여전히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경기도가 지난달 발표한 상반기 골프장 농약오염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경기도 내 113개 골프장의 62%에 해당하는 70개 골프장의 잔디와 토양에서 잔류농약이 검출됐다. 검출된 농약은 보통독성이 4가지, 저독성이 3가지로, 고독성과 미등록 농약은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주목할 것은 농약이 검출되는 골프장이 해마다 지속적으로 늘고 있으며, 현행 농약관리법에 품목 고시된 등록 농약을 사용하는 것이 합법이라 해도, 허용 기준 등 사용량에 대한 규제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보통 독성 또는 저독성 농약을 아무리 많이 사용해도 현실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근거와 수단은 전혀 없는 셈이다.

▲ <침묵의 봄(Silent Spring)> 책 표지.

이런 현실은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미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미국의 작가이자 생물학자인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은 1962년에 펴낸 자신의 역저 <침묵의 봄(Silent Spring)>에서, 미국 대부분의 주들이 농작물에 뿌리는 살충제나 농약 관련 법률을 제대로 제정하지 못했다면서 이렇게 적었다.

“(미국의) 식품의약국은 ‘허용량’이라 불리는 오염의 최대한계치를 제정했는데 여기에는 한 가지 분명한 결점이 도사리고 있다. 현 상황에서 이 제도는 단순한 서류상의 절차에 지나지 않을 뿐더러, 이 안전 기준 정도만 신경 쓰면 된다는 점을 정당화하는 느낌을 풍기고 있다.”

농약 사용에 따른 수질 오염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지하수의 광범위한 오염이다. 그래서 요즘 골프장 업자들은 주민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지하수 오염을 걱정하는 주민들에게 상수도를 놓아준다는 것이다. 지하수가 오염될 우려가 현저하다는 것을 업자들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는 셈인데, 그렇다면 과연 얼마만큼의 농약을 사용했을 때 지하수는 대체 어느 정도까지 오염되는 것일까? 아직까지 우리에겐 믿을 만한 연구결과나 통계가 없다. (혹시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란다.) 지하수 오염에 대한 우려는 골프장 옆에서 지하수로 밥 짓고 농사짓는 농민들에게는 심각한 문제다. 경기도 안성시에서 친환경 무공해 농업을 하고 있는 어느 마을에서는 골프장 개발이 시작되면서 이미 예정됐던 ‘친환경 마을’ 지정이 무기한 연기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주민들은 이미 끝난 일이라 생각하고 있는 반면, 시청의 담당 공무원은 “잠시 연기된 것 뿐”이라 했다. 골프장이 들어서면 이 마을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시대를 거슬러 레이첼 카슨의 시대에, 화학 살충제가 환경에 미칠 영향을 묻는 의회의 질문에 MIT 대학의 롤프 엘라이어슨(Rolf Eliassen) 교수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냐구요? 그것도 알 수 없습니다.”

골프장 건설에 열을 올리는 지방자치단체의 논리는 간단하다. 상당한 액수의 세금을 걷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골프장이 많아 걷히는 세금도 많은 지자체가 부러워 너도 나도 골프장 건설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특정 지자체가 아닌 국가 전체의 시각에서 보자면, 지자체의 경쟁적인 골프장 유치는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경제적인 관점’에서 봐도 장기적으로는 득보다는 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실패한 정책의 결과로 돌아오는 사회적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의 혈세로 메워야 한다. 골프장이 국토를 가장 친환경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지자체의 선전 논리 역시 수긍하기 어렵다. 공장이 들어서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뜻이겠지만, 농약 사용량에 일정한 제한을 두지 않는 현행법의 맹점을 생각하면 ‘친환경’이라는 말 자체가 지금으로선 그저 듣기 좋은 허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장 눈에 보이지 않고 확실하지 않은 위협은 쉽게 무시해버리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말도 나온다.

골프장을 예로 든 이런 암담한 현실의 이야기는 실은 오늘날 전 인류가 공통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세계의 한 작은 축소판이다. 요즘처럼 개발 지상주의가 정부의 든든한 지지를 얻어 득세하면, 환경론자의 목소리는 갈수록 사라지는 새들의 지저귐처럼 잘 들리지 않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47년 전에, 레이첼 카슨은 “오늘날 미국의 수많은 마을에서 활기 넘치는 봄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왜일까?”라고 물었다. 그런 의문에서 씌어진 <침묵의 봄>은 책이 출간된 1962년 여름 동안 잡지 <뉴요커(The New Yorker)>에 연재한 내용을 묶어 발표한 것이다. 합성화학살충제를 만드는 화학업계의 전방위적 협박과 방해 속에서 태어난 이 책은 독성 화학물질, 즉 살충제의 남용이 인간과 자연, 동식물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이 세계에 가져오는 재앙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칼 젠슨(Carl Jensen)은 <미국을 바꾼 이야기(Stories that Changed America)>에서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화학업계의 부정적인 캠페인 덕에 오히려 <침묵의 봄>은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62년 말까지 각 주에서 살충제 사용을 제한하는 법안이 50개가 넘게 발의됐다. <침묵의 봄>의 영향은 탐 페인(Tom Paine)의 <상식(Common Sense)> 그리고 업튼 싱클레어(Upton Sinclair)의 <정글(The Jungle)>에 비견되고 있다. 훗날, 화학살충제의 무분별한 살포를 고발한 레이첼 카슨 덕분에 DDT 사용이 금지되고 환경보호국이 설립됐다. 카슨 자신은 이 책이 환경정책에 전면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겠지만, <침묵의 봄>은 환경운동을 부흥시키는 데 전적으로 기여했다.”

▲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1907.5.27~1964.4.14)

아름답기 짝이 없는 언어로 씌어진 이 유쾌하지 않은 묵시록이 지적하는 바는 명확하다. 들꽃에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며 살충제 살포를 반대했던 한 노파 이야기를 하면서 ‘터무니없고 우스운 일’이라고 비웃었다는 정부 담당자들로서는 ‘들꽃을 즐길, 포기할 수 없는 권리’를 이해할 길은 요원하다. 생물학자 린다 리어(Linda Lear)가 말한 대로 “화학물 오염에 관한 그녀의 경고는 환경 문제가 공익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물론 레이첼 카슨이 우려했던 전 지구적 재앙은 오늘날 도래하지 않았고, 과학의 눈부신 발달로 DDT 같은 원시적 살충제도 오래 전에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그것이 보이지 않는 위협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갖가지 화학물질은 인간의 생리작용에 미묘한 변화를 일으켜 불임과 같은 현대적 불치병으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때문에, 자연의 존엄성 앞에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는 겸손함이라는 것을 말하는 지식인의 용기를 유감없이 드러낸 레이첼 카슨의 이 빼어난 역작이 보여준 문제의식은 4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가 오랫동안 여행해온 길은 놀라운 진보를 가능케 한 너무나 편안하고 평탄한 고속도로였지만, 그 끝에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가지 않은 다른 길은 지구의 보호라는 궁극적인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라 할 수 있다. 그 선택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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