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각의 야권 지지자들은 신상로마제국에 대한 볼테르의 발언을 새정치민주연합에 빗대기도 한다. 볼테르는 “신성 로마 제국은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에 있지도 않으며, '제국'도 아닌 어떤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빗대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새정치’도 없고 딱히 ‘민주’적이지도 않으며 하다못해 ‘연합’도 아닌 어떤 것이다”란 식으로 말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관리형 비대위’로 평가받는 ‘문희상 비대위’의 상황에 대해서도 우려는 가능하다. 문희상, 문재인, 박지원, 정세균, 박영선, 인재근 등으로 구성된 비대위가 현존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계파들을 포괄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가능하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김한길·안철수 전 공동대표에 대해서도 설득에 나섰지만 비대위에 참여하게 만들지는 못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세간의 반응은 “현재의 제1야당은 부족연맹국가 수준이다”라는 것이다. 부여나 초기 고구려처럼 각 부족의 대가들이 연맹왕국을 구성하는 수준의 리더십을 갖췄다는 힐난이다.
▲ 23일자 조선일보 6면 기사
물론 이러한 비판은 타당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수준이 그렇다면 일단 연맹왕국 수준의 지도력을 회복하는 것이 시작점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최근 몇 달간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 있었던 갈등은 ‘계파정치’라는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것은 계파 간의 담합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었고, 계파란 요소가 물론 존재하지만, 언론·SNS·의원들끼리의 카카오톡 채팅방이란 현 시대의 다양한 매체들을 활용해 펼쳐진 복잡다단한 노선갈등 및 인정투쟁의 장이었다. 본인들은 노선갈등이라 믿으나 바깥의 남들은 모두 인정투쟁이라 부르는 ‘안습’한 상황에 왔다.
이 상황을 극복하려면 일단은 당내의 정치질서를 대변하는 이들을 내세워서 일차적 상황을 수습하고 공정한 경쟁을 펼칠 전당대회의 룰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 비대위원들은 선수와 심판을 동시에 하겠다는 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라는 조경태 의원의 비판에 일리는 있다.
▲ 23일자 한겨레 6면 기사
그러나 그런 잣대로라면 결국 내부 계파에 이해관계가 없는 외부 인사 수혈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데,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은 그것조차 받아들일 수 없음이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의 비대위원장 선임 후 번복 사건에서 드러났다.
당시 조경태 의원은 ‘안경환-이상돈 투톱’ 체제에 대해서도 “비대위가 무슨 축구냐”란 식으로 비판했다. 이 비판에도 일리가 없진 않지만 결국 조경태 의원의 기호를 만족시키려면 당내 소수인 비주류가 비대위를 잡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면 그게 유지가 될 수 있을까? 가령 ‘조경태 비대위’가 출범하면 당내 강경파들이 가만히 있을까?
새누리당에 대해서는 상대가 우리보다 덩치가 크다는 점을 감안하고 협상을 통해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당내 문제에 대해선 당내 다수파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고 ‘돌직구’만 던져대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다. 동아리 내 패권다툼이라면 이렇게 처신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수파에게 끝까지 개겨 봤자 남는 게 없으니 말이다. 정치는 여론이 개입한 문제이며, 여론전이 전개되면 다른 전기가 올 수도 있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당내 모든 세력, 모든 의원 개개인이 그렇게 여론을 쳐다보며 언론플레이, SNS플레이, 카톡플레이를 해댄 결과가 오늘날의 새정치민주연합의 몰골이 아닌가?
▲ 23일자 경향신문 3면 기사
정치권 관계자들은 조경태 의원이나 김영환 의원 등이 ‘문희상 비대위’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 “냉정하게 말하면, 계파가 없는 사람들이다”라고 평한다. 정동영 상임고문이나 천정배 전 의원이 포함되지 못한 것도 그들의 계파가 사실상 당내에서 소멸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안타까운 것이지만, 현 시점에서는 인정해야 할 조건이기도 하다. ‘연맹왕국’이 혼란에 빠졌다면 일단 각 부족장들이 최소한의 질서를 수습하고 중앙집권국가를 어떻게 수립할지를 논의하는 게 수순이 아닐까? 조경태 의원과 가까운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체제에서도 정동영 상임고문이나 천정배 전 의원은 소외되는 방식으로 재보선 공천파문이 벌어졌다.
정동영이나 천정배가 포함됐다 한들 조경태 의원이 만족하는 비대위가 왔을지도 의문이지만, 비판을 이런 식으로 하면 결국 ‘내가 권력을 잡기 전엔 아무런 진전도 없다’라는 논리 밖에 되지 않는다. 새정치민주연합을 지금의 이 난국에 빠뜨린 바로 그 정서다. 강준만 교수는 주로 당내 강경파를 의식하며 ‘싸가지 없는 진보’를 거론했을 것이나, 이 당에선 정파투쟁을 할 때엔 온건파나 강경파나 쓸데없이 과격하긴 매한가지다.
▲ 23일자 동아일보 5면 기사
물론 ‘문희상 비대위’는 출발일 뿐이며 우려할 만한 부분도 있다. 21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모바일 투표가 문제 있는 게 아니다. 개표 확인 작업이 까다로운 점 등을 보완한다면 그처럼 간단명료한 게 어디 있나”라고 말한 건 성급했다. 그간 경선 룰에 대한 논란의 핵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준다.
‘민심과 여론을 반영하는 당권 구성’의 정도가 무엇인지는 큰 논란거리다. 흔히 온건파는 당원과 대의원을 중시하고, 친노세력 내지 강경파는 모바일투표나 오픈프라이머리 등 외부 시민들의 참여를 중시하는 것으로 나온다. 각자의 논리도 있다. 그러나 당원 중심만으로 사고하기엔 한국의 진성당원제가 매우 허약하고, 시민참여만 강조하기엔 창구를 열어놓으면 새누리당이나 중도층에 대해서 매우 강경한 열성지지층만 온다는 정황도 있었다.
그래서 ‘당원중심’이니 ‘시민참여’니 다들 명분으로 떠들지만 결국엔 그게 모두 계파투쟁이 되었다. 사실이 그렇다면 자신들이 올바른 명분을 독점하고 있다는 아집과 독단을 버리고, ‘당원중심’도 ‘시민참여’도 백프로 정답은 아니란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며, 권력배분 및 구성을 위한 타협적 틀을 제시하는 게 옳다. 오히려 그렇게 해야 여론과 민심이 반영될 길이 열릴 것이다.
▲ 23일자 동아일보 5면 기사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엔 본인이 ‘적당히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모두들 명분에 의한 확신을 가진 채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한다. 그런 태도가 견지되는 한 보수언론은 각 주체의 목소리를 담는 신문 보도만으로 그들의 리더십을 가루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문희상 비대위'에 대해 보수언론이 갈등의 목소리를 더 많이 담는 실상도 맥락으로 고려해야 한다. ‘연맹왕국 비대위’는 한심하지만 이 상황을 무로 돌릴 수는 없다. 일단은 ‘연맹왕국 비대위’부터 시작해서 향후를 논의하자고 하는 것이 차라리 더 합리적이다.
▲ 23일자 동아일보 5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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