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국민연금이 고갈된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곤 한다. 먼 훗날이기는 하지만 재정이 바닥나서 연금을 줄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더 내고 덜 받도록 만들겠다고 한다. 지금도 수령액이 노후보장은커녕 용돈이나 다름없어 연금이라는 소리가 부끄럽다. 젊은 세대가 퇴직할 즈음에는 그나마도 받기 어렵다니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런 판에 눈먼 주식투자로 생돈을 마구 날리니 국민연금=‘깡통연금’이 될까 걱정이다.

국민연금은 준조세적 성격을 지녔다. 소득이 투명하게 파악되는 직장인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징수한다. 자그마치 월소득의 9%를 근로소득세와 함께 꼬박꼬박 챙겨간다. 물가는 뛰는데 봉급의 절반쯤은 시교육비에 꼬라박는다. 당장 먹고 살기도 팍팍한데 훗날을 돌본다며 마구 떼어가니 월급날마다 도둑맞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주식투자로 국민연금을 축낸다니 울화통이 터진다.

▲ 9월20일자 동아일보 10면.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파동이 세계금융시장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이 판에 국민연금이 묻지마 주식투자에 나서 큰 손실을 입은 사실이 드러났다. 국민연금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말 현재 해외주식 투자액이 5조1914억원이나 된다. 올 들어서 7월까지 사들인 5조2254억원어치를 합치면 투자총액은 10조4168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평가액은 9조6294억원으로 줄어 투자손실액이 1조0891억에 이른다.

8, 9월 들어 월스트리트에 위기의식이 더욱 팽팽해져 세계증시가 폭락을 거듭했다. 그런데도 국민연금은 해외투자를 멈추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7월 이후에는 투자손실이 엄청나게 늘어났을 게 틀림없다. 파산위기에 몰려 미국발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만 브러더스, 메릴린치, AIG에도 상당액을 투자했다니 말이다.

미국 금융위기의 진원지는 주택담보대출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다. 두 업체의 주식을 2006년 804만7000달러어치에 이어 작년에도 2968만9000달러어치나 매입했다. 이미 경고음이 울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계속 사들여 9월까지 투자액이 500억원 상당인 4608만5000달러로 늘어났다. 공적자금을 투입한 두 업체의 주식은 휴짓조각에 다름없다. 제 돈 아니리고 정신 나간 짓을 멋대로 한 꼴이다.

국내주식 투자에서도 평가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작년말 투자평가액은 33조892억원이다. 올 들어서도 7월까지 3조원어치를 매입했다. 그런데 평가액은 30조8704억으로 줄었다. 5조2000억원이 공중으로 날아갔다는 소리다. 7월31일 코스피 지수는 1594였는데 최근에는 1400에서 맴돌고 있다. 8, 9월 주가가 폭락세로 이어졌으나 주식매입을 멈추지 않았으니 몇 조원의 손실이 더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역대 정권은 주가지수를 경제성적표로 잘못 알고 과민한 반응을 보여왔다. 이명박 정부도 국민연금을 통해 증시부양에 나선 흔적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미국의 금융기능이 마비되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 판에 국민연금이 나서 주가를 떠받쳐주고 고환율정책을 고수해 외국자본이 환차익을 누리면서 도피하도록 도왔다. 국민연금이 손해 보지 않고 나가도록 물꼬를 터준 셈이다. 국민의 재산을 날리고 개미투자자의 재산을 반토막내면서 말이다.

박해춘 국민연금 이사장은 한술 더 뜨고 있다. 2012년까지 현재 17.5%인 주식투자 비율을 40%로 올리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세계적인 금융공황을 우려하는 상황에서도 해외주식투자 비율도 작년말의 10.6%에서 2012년까지 20%로 높이겠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투자손실로 낭패를 당하고도 기색조차 하지 않는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피와 땀으로 쌓아가는 국민의 재산이다. 안정성을 무시해 투자손실을 냈다면 문책해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