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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 최초의 기초의원, '도전적이고 거친' 당권에 도전하다[인터뷰]공동운영위원장 선거 나선 김수민 전 시의원 인터뷰
한윤형 기자 | 승인 2014.09.22 09:09

녹색당이 당권선거에 돌입했다. 녹색당의 제3기 대표자 선출을 위한 선거운동이 지난 9월11일부터 본격화됐다. 이번 선거는 여/남 공동운영위원장 각 1명, 여/남 공동정책위원장 각 1명 등 모두 4명의 대표자를 선출한다. 이번 선거는 녹색당의 2012년 3월4일 창당 후 세 번째 대표자 선출이며, 처음으로 경선을 거쳐 대표자를 선출하게 된다. 이번 대표단의 임기는 2년인데, 다른 당과 마찬가지로 임기 내에 놓여 있는 2016년 총선을 준비해야 할 지도부란 점에서 중요하다. 

선거운동기간은 9월11일부터 24일까지 총 14일이며, 25일부터 30일까지 6일 동안 총 4,364명 당권자를 대상으로 하는 총투표가 진행된다. 4명을 선출하는 녹색당 제3기 대표자 선거에는 총 7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성별로 보면 여성이 3명, 남성이 4명이며, 연령별로 보면 20대 2명, 30대 1명, 40대가 4명 등 평균연령 37세로 여느 정당 보다 젊은 편이다. <미디어스>는 녹색당의 유일한 기초의원이었다가 최근 지방선거에서 아쉽게 낙선한 김수민 전 시의원(구미 인동 진미)이 공동운영위원장 남성 부문 선거에 출마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 당권선거에 돌입한 녹색당의 사정에 대해 물어보았다. 김수민 전 시의원은 33세로 이번 선거 후보자 평균연령에 비해서도 젊은 편이다.  
 
   
▲ 김수민 후보 블로그에 올라온 출마의 변 사진
 
지역정치에 관해 묻다
 
미디어스(이하 ‘미’): 2선 시의원이 됐으면 했는데, 지방선거에서 아깝게 낙선하셨다. 낙선 후 어떻게 지내셨나.
 
김수민 전 시의원(이하 ‘김’): 선거 후 아주 마음놓고 쉬지는 못했다. 지역에서 노동문제나 민생문제와 관련해 상담사업을 시작한 것이 있었는데 지속하고 있었다. 지역구 사무실을 공동체적 공간으로 가꿔가고 싶었는데 아직까지는 많이 부족하다. 
 
: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당원으로 활동하고 <대자보>와 같은 매체에 칼럼을 쓰는 등 정치에 관심이 많았지만 시의원에 도전을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결단이었을 것 같다. 어떤 취지와 각오로 나서게 되었는지.
 
: 2009년에 진보신당에서 탈당했다. 역설적으로 탈당하게 되면서 정치에 나서게 됐다. 처음엔 취직하려고 했다. 구성작가 아카데미도 다니고 그랬다. 그러다가 잘 안 됐다. 탈당하니 정치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노동운동을 하려고 해도 일단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웃음) 2009년 말에서 2010년 초 사이 출마를 결심하고 구미에 내려왔다. 20대 내내 정치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 좌절을 한 번 정리해보고 직접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그때는 기초의원은 정치인이라 생각을 안 했다. 결과적으론 잘못된 생각이었다. (웃음) 구미의 진보진영 사람들과 의논해 지역구를 정했다. 처음에는 무소속보다는 차라리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당적을 달고 나오는 게 차라리 낫다며 입당을 권유하더라. 그런데 탈당을 했기 때문에 구미에 내려온 건데 그러면 꼴이 이상하잖나. (웃음) 그래서 입당은 안 하고 비어 있는 지역구에서 나오게 됐다.  
 
: 박정희의 고향으로 알려진 보수적인 동네이면서, 공단이 많아 타 지역 사람이 많이 오는 젊은 동네이기도 하다. 본인이 직접 살면서, 또 정치활동을 하면서 겪은 ‘고향 구미’는 어떤 곳이었나
 
: 어찌 보면 TK 지역 평균만큼 보수적이지는 않은 동네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박정희의 고향’ 구미는 선산 농촌 지역 정도다. 지난 대선 때는 박근혜를 80% 이상 지지했지만, 총선 때를 보면 또 새누리당 지지율이 70%도 넘지 않았다. 
 
내가 나선 지역구의 사정은 또 달랐다. 구미는 낙동강을 따라 동서가 확연히 다르다. 이곳은 70년대 까지는 칠곡군이었던 곳으로, 나처럼 서쪽에 살던 청소년은 잘 놀러오지도 않는 곳이다. 다만 나는 학교 휴학할 때나 군대에서 휴가 나올 때는 와본 적이 있어 낯설지는 않았다. 대단히 젊은 동네고 친숙하고 궁합이 맞는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구미의 진보진영 입장에선 젊은 세대가 많이 사는 곳이고 대응을 해야 할 곳인데 후보가 없었다. 원래는 최근 스타케미컬 굴뚝농성으로 유명해진 차광호씨가 나올 수 있었는데 잘 안 됐다. 나는 이런 동네에선 노동자후보가 나오는 게 맞지 않나 싶어 고사했지만 공교롭게도 나올 후보가 없어 생각을 달리 하게 됐다. 새누리당이 자기들 내분으로 선거구 조정을 하느라 선거구가 다 바뀌고 갑자기 이 지역은 구미에는 없던 3인 당선 지역구가 됐다. 내가 출마를 결심한지 일주일 후의 일이었다. 
  
이런 지역이 힘든 까닭은 보수성보다는 오히려 시민들의 정주의식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지지자들이 강 건너 서쪽으로 이사가거나 칠곡으로 이사가는 일이 흔하다. 이번 선거 때 도와주신 어머니도 “이 지역은 매번 선거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하시더라. 지역구를 닦는다는 것이 힘들다는 측면이 있다. 또 이렇게 공단이 많은 동네는 풀뿌리 운동이나 환경운동이 어느 정도 있기 마련인데 그런 기반이 많이 미약하다. 울산이나 거제와 달리 구미는 내륙의 공단이라 언제든지 기업이 철수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 진보성향의 지역 정치인으로 언론에 널리 알려졌다. 언론에 그렇게 알려지는 것이 지역에는 어떤 인상을 주었다고 생각하시는지.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모두 있을 것 같은데.
 
: 큰 도움을 못 받았다. 전국적으로 ‘진보 정치인’으로 알려져서 손해를 봤다는 것도 아니었다. 지역에서는 나름 열심히 하는 시의원으로 인정을 받았다. 또 비록 기초의원이지만 구미 지역 불산누출 사태에 적극 대응하여 지역 방송이 아니라 전국 방송에 많이 나온 편이었는데 효과가 크지 않았다. 구미 지역 시민들의 미디어 접촉도 자체가 현저하게 낮았다. 그러니까 보수성향의 나이든 이들은 TV라도 보지만 젊은 층은 미디어를 잘 접촉하지 못하는 환경이다. 새누리당 성향의 토박이들만 언론에 반응하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 시의원으로서의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역시 방금 말씀하신 불산유출 사태 대응 건일까. 그리고 본인의 향후 정치일정을 계획 혹은 예측한 바가 있다면.
 
: 불산유출 건도 중요하긴 한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따로 있다. 환경미화원 노동조합에 연대하여 조례를 제정한 일이다. 환경미화원 노동조합은 한국노총 소속의 온건노조였다. 그런데 구미시에서 환경미화원의 일부 업무를 민간 사기업에 위탁하겠다는 방침을 냈다. 당시 내가 이 문제를 놓쳤다가 추후 대응을 시작했다. 노동조합에서도 파업 빼고는 뭐든 할 수 있다고 협조했다. 결국 환경미화원 업무를 민간에 위탁할 수 없게 하는 조례를 지정했는데, 전국 지자체 조례 중 거의 유일한 조례였던 것 같다. 선거 8개월 전에 환경미화원들의 체육대회가 있었는데 당시 참석한 정치인들 중에서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가족들도 참석한 행사였는데 보람 있는 경험이었다. 
 
   
▲ 2012년 9월 구미시 옥성면의 한 골재야적장을 방문해 현장관계자에게 질의하고 있는 김수민 의원 ⓒ오마이뉴스
 
정치일정은 확실히 정해진 것이 없지만 일단 당활동 중심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아마 선거에도 나가게 되지 않을까 한다. 다만 정치는 계속 구미에서 할 것이다. 상징적으로 서울 종로에 출마해본 후 다시 구미로 내려오라는 조언도 들었는데, 요즘 종로가 예전과 같은 정치적 상징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구미에서 계속 나서게 될 것 같다. 
 
녹색당은 어떤 정당이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 녹색당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이 모여 있을 것 같다. 가령 진보정당 출신들도 있고, 당원이 된 적이 없는 이들도 있다. 그 외에도 여러 결들이 있을 것 같은데, 본인은 이 당의 구성원들 중에서 어느 위치 정도에 있고 어떤 이들을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 일단 녹색당은 사상에 따른 정파가 나뉘지 않는다. 다만 지방선거 이후 당원들 사이에 “이대로는 안 된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는 낙천적인 태도만으로는 곤란하다”라는 분위기가 있다. 녹색당이 공직선거에 대응한 경험 자체가 너무 적어서 헤맸다는 시선이 있다. 내 생각은 정치적인 외연 확장도 중요하지만 정당으로 존속하려면 조속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 사회에선 1~2% 지지율 정당으로 꾸준히 존속하기가 어렵다. 치고 올라가거나 사실상 의미가 없는 정당이 되거나다. 헌법재판소가 이를 알았기에 2% 미만 정당 해산 조항에 대해 위헌을 선고했다고 나는 이해한다. 등록 취소를 당하지 않는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란 거다.
 
: 공동운영위원장이란 명칭이 생소하다. 이런 명칭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을지.
 
: 운영위원장이란 명칭을 고수하는 것은 녹색당이 각 지역 녹색당이 모여져 만들어진 기구라는 점을 어필하기 위함이다. 이를테면 녹색당은 ‘녹색당 구미시당’이란 식으로 쓰지 않는다. 그냥 ‘구미 녹색당’이라고 쓴다. 그런데 나는 내부적으론 그렇게 하더라도 외부적으론 다르게 써야 한다고 본다. 운영위원장은 대표라고 불러야 하고, ‘구미 녹색당’은 ‘녹색당 구미시당’이라 쓰는 게 더 낫다. 그러지 않으면 사람들은 녹색당을 전국정당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지역당으로 본다. 물론 한국 사회의 정당법으론 5개 시도당 각 천명 이상이 있어야 정당이 형성되기 때문에 지역당이 불가능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잘 모른다. 또 부대표도 만들어서 일종의 대표단을 꾸리고 대변인도 선임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사람들은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다른 당대표보다 권한이 적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녹색당은 공식적인 기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운영위원장의 의중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 한국에서 녹색당이 출범할 수 있었던 데에는 2011년 후쿠시마의 충격이 있었을 거라고 본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서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군소정당이 예전에 비해서도 매우 안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큰 사건 이후 발휘되는 어떤 보수성의 측면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녹색당은 이를 어떻게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 사고가 유의미한 변수는 아니라고 본다. 구미에서 나는 단수 사태도 겪고 불산 유출 사태도 겪었다. 사고가 난 직후에 선거를 치른다면 또 다르겠지만, 사고 자체로 보수적인 태도가 바뀌지는 않는 것 같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정부 여당은 규제 완화의 필요성으로 소화하는 놀라운 상황 아닌가. 사고가 나기 전에 미리 준비하고, 미리 얘기해야 고착화된 구조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야권연대보단 근본적인 접근과 전망이 중요하다고 본다. 미리부터 대안 제시를 해야 중대한 사건이 왔을 때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본다. 
 
: 녹색당은 기타 진보정당들의 통합 논의에서도 벗어나 있다. 한동안은 독자노선을 추구하겠다는 뜻이 분명한 것 같다. 녹색당의 시선으로 보기엔 기존 진보정당도 성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그런 시선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에서 녹색당의 독자노선의 의미를 짚어준다면. 그리고 녹색당이 있기에 추구해야 할, 추구할 수 있는 뚜렷한 정책적 과제의 예시를 들어주신다면
 
: 진보정당도 성장주의에 빠져 있다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녹색을 하긴 하는데 곁가지라는, 장신구 같은 주변 의제라는 느낌이 있다. 당원의 1명으로서 개인적 견해를 밝히자면 향후엔 녹색의 가치를 전면으로 내세운 연대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녹색 자체가 근본적인 가치기도 하지만 이 녹색의 비전으로 진보의 재구성 문제가 수렴되거나, 녹색 자체가 통합의 가치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녹색당에 있다 보면 기존 진보정당 출신들을 종종 만난다. 아직은 PD(평등파)들이 다수지만 종종 NL(자주파)들도 있다. 자기 사상을 바꾸고 들어오는 것이다. 
 
녹색당의 핵심적인 정체성은 아무래도 탈핵이다. 그런데 탈핵이 부문의제가 아니란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핵발전 자체가 굉장히 차별적이란 사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방사능이 유출되면 농어촌민들과 공단 노동자들이 먼저 피해를 본다. 같이 피폭되어도 여성이나 아이의 피해가 더 크다. 탈핵 자체가 차별을 타파해야 한다는 진보적인 함의가 있다. 
 
   
▲ 녹색당 관계자들이 지난 4월 3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6월 지방선거 성평등.인권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녹색당은 성평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에 관한 공약을 강조했다. (연합뉴스)
 
또 탈핵을 하기 위해선 에너지 소비구조 자체를 개편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보면 일중독 사회를 개혁해야만 한다. 녹색당 내부에선 핵발전의 반대는 재생에너지가 아니라 유기농이라고 말하곤 한다. 좋은 관점이라고 본다. . 
 
그래서 녹색당에선 기존 진보정당과는 다르게 농업을 이해하게 된다. 기존 진보정당에서도 농민운동을 받아들이지만, 민족적 관점에서 보거나, 생산력주의 관점에서 보거나, 노동자의 동맹세력 정도로 바라본다. 그런데 아무래도 녹색당에선 농민이 사회의 근간이며 생태적 활동에 종사하는 시선이 있다. 물론 급진적 생태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농업도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가 되지만 말이다. (웃음) 농업을 변혁의 동반자가 아니라 변혁의 주체로까지 바라보게 되는 것이 녹색당의 강점이 아닐까 한다.  
 
왜 김수민은 당권선거에 나왔나
 
: 자기 자신을, 언론에서 흔히 하지 않지만 본인이 생각하기엔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소개해주신다면 어떻게 될까.
 
: 정치적으로 해야 할까. 선거에 나왔으니까 정치적으로 하는 게 옳겠다. 한국 최초의 녹색당 기초의원이라고 말씀드리면 될 것 같다.
 
: ‘최초이자 최후’여서는 안 될 텐데 말이다. (웃음) 무소속으로 구미 시의원에 당선, 녹색당 창당 후 녹색당에 합류했다. 개혁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녹색당의 순서로 온 것으로 알고 있다. 
 
: 입대하기 전에 개혁당을 탈당했다. 개혁당 시절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 (웃음)
 
: 본인의 정치지향을 간략하게 표현한다면? 녹색당 입당은 그간의 정치적 입장이 다소 변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아니면 일관된 흐름의 다른 반영인 것인지?
 
: 둘 다 일 것 같다. 정치성향이란 건 인간의 내면에서 매우 표층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그 시기 동안 변화된 것들이 있고, 변화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분당파로서 진보신당 창당에 합류할 때도(2008년) 녹색 지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는 녹색을 잘 이해는 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막연한 예감으로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 2013년 5월 경북 구미 김수민 시의원의 활동 모습 ⓒ오마이뉴스
 
어쩌면 나의 가치관은 열세살 이전에 위기철 선생의 책을 읽어서 형성된 것들이 큰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어릴 때 형성된 것이 큰 흐름에서는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살아오면서 그 상황에 조응하느라 정치적 선택을 바꿔왔는데, 그 흐름이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점점 더 소수파 쪽으로 가고 있다. 일부러 소수파를 택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가치지향을 실현하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 경선에서 맞붙을 이들에 대해 평해주신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 후보로 세 명이 나왔다. 전임 공동운영위원장이었던 하승수 후보가 40대, 내가 30대, 그리고 청년녹색당위원장이었던 안준혁 후보가 20대다. 모두 소위 말하는 ‘486 후세대’로 매우 젊은 정당이다. 만약 안준혁 후보가 당선된다면 당 대표가 만 25세 이상 피선거권 기준에 걸려 선거에 나서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웃음) 결국 내가 운영위원장에 더 적합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해본 놈’이란 것이다. 이번 당 지도부는 결국 총선 준비를 해야 한다. 출마 준비가 무엇인지 잘 아는 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기존 녹색당이 “조심스럽고 평화적인” 이미지가 있다면,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도전적이고 거친” 이미지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녹색당은 다만 생태문제에만 신경쓸 뿐 정치행위자로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을 기자들로부터 듣고 한다. 당 내부에서 정치논평 자체가 잘 안 나온다. 정무적인 부분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내가 대변인을 신설하자고 말하는 것도 그런 부분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도전의식이나 정무적인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에서도 내가 우위에 있다고 본다. 
 

한윤형 기자  a_hrim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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