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이 난리가 났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과 세월호 유족들이 연루된 대리기사 폭행시비에 대해 친절하게 사설까지 써가며 비판을 했다. <한겨레>나 <경향신문>과 같은 진보언론은 물론 중도성향의 <한국일보>조차 이 사안을 사설에서 다루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세 신문의 보조는 본능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19일자 <조선일보>는 <세월호 유족들, 국민 눈에 비친 자신 모습 돌아볼 때>란 제목의 사설에서 “국민을 실망시킨 것은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난 유족 대표들의 의식과 행태(行態)이다. 일부 유족 대표는 이날 세월호 추모(追慕)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이들이 달고 있는 노란 리본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도 되는 '완장'으로 둔갑했다”라고 비판했다.
▲ )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임원진 등 일부 유가족이 대리운전 기사 등과 시비가 붙어 폭력을 행사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영등포경찰서는 17일 오전 0시 40분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거리에서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의 김병권 위원장과 김형기 수석부위원장을 포함한 세월호 유가족 5명이 대리기사와 행인 2명을 폭행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현장 CCTV 화면이다. (연합뉴스)
또 <조선일보> 사설은 “유족 대표들은 형법 체계에도 맞지 않는 '수사권·기소권'을 세월호 조사위가 가져야 한다고 요구하며, 세월호법과 민생 법안을 분리 처리해야 한다는 국민 다수의 여론도 무시해 왔다. 이들이 여야가 만든 세월호특별법 협상안을 두 번이나 뒤엎었어도 야당과 친야 단체들은 이들을 떠받들기에 급급했다. 오죽하면 세월호 유족 대표가 야당의 상왕(上王)이란 말까지 나왔겠는가”라며 해당 사안을 세월호 특별법이라는 정치적 문제와도 엮었다.
<조선일보> 사설은 “힘없는 대리기사에게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주먹을 휘두른 세월호 유족 대표들의 모습은 지난 다섯 달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왔는가를 보여주는 이 나라의 일그러진 자화상(自畵像)이다”라고 마무리되었다. 지난 다섯 달간 세월호 유족들의 요구를 묵살하지 못한 것이 ‘이 나라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라고까지 했다.
같은 날 <동아일보>는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치외법권의 권력기관인가>란 제목의 사설에서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집행부가 대리운전사를 심야에 집단 폭행한 사건은 세월호 사태 이후 다소간의 무리와 억지도 감수해온 국민의 인내 한계선을 넘어선 것이다”라고 사건을 규정했다. <동아일보> 사설은 “국회의원의 위세를 앞세운 유가족들에게서 완장을 두른 ‘특별국민’의 냄새가 물씬 난다(...) 하루아침에 자녀들을 잃고 세상이 깜깜해졌을 유가족들의 고통을 내 일처럼 아파했던 국민도 이들의 과도한 언행과 법의 테두리를 넘는 지나친 요구에 점차 염증을 내고 있다”라며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해당 사안을 정치적 문제와 엮었다.
<중앙일보>는 사설을 썼으되 다소 절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앙일보>는 <유족 폭력은 유감, 세월호 본질은 잊지 말자>란 제목의 사설에서 “일부 유족이 정치화하고 특권의식에 젖어 있다는 항간의 의구심이 일고 있는 마당에 이 사건이 일어남으로써 전체 유족의 순수성마저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됐다는 점은 특히 안타깝다”라며 유족들을 비판하기는 했으되,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의 원색적인 비난에 비해선 품위를 지켰다.
<중앙일보>는 “폭력사건은 법에 따라 엄정하게 심판하기 바란다. 그러나 이 일로 세월호의 본질을 흐려서는 안 된다.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우리는 여전히 세월호를 잊어서도, 세월호가 정치에 이용돼서도 안 된다는 점을 기억하자. 정부도 유족도 국민도 모두 초심을 되새겨야 할 때다”라며 가까스로 ‘팬티까진 벗지 않는’ 수준의 기품을 유지했다.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 고문 피해자 등과 그 가족의 치유를 위해 2012년 10월 설립된 광주 트라우마 센터의 강용주 원장은 <미디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희생자들에겐 분노가 조절되지 않는 상황은 일상적이다”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강용주 원장은 의사이면서 자기 자신이 5.18 민주화운동에 연루되어 1990년대말까지 사상전향서 및 준법서약서 작성을 거부하는 미전향 장기수로 복역했던 양심수 출신이다.
강용주 원장은 “PTSD를 겪는 이들을 검사하면 실제로 전두엽의 기능이 저하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면서 “우울증, 분노조절 장애, 알콜 중독 등을 경험하기 십상이며 밝혀지지 않는 사안에 대해서 과도한 음모론을 믿게 되는 경향도 이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 원장은 "세월호 참사가 1차 외상이라면 그후 대통령의 냉대나 '일베'의 폭식투쟁 등의 반응이 2차 외상을 이끌어내는 상황이다. 그들에겐 외상이 현재진행형"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의 말을 따른다면 '조중동'의 사설 자체가 2차 외상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행위다.
강용주 원장은 광주 지역의 민심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강용주 원장은 “광주민심은 ‘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광주 시민상주 모임’이 결성되고 매주 재판을 함께하는 식으로 활발하게 활동할 정도”라면서 “동네에서 세월호 모임이나 음악회를 열고 광주 비엔날레 행사의 일환으로 법원 앞 가로수를 뜨개질 작품으로 감싸기도 한다. 5.18을 겪어서 그런지 세월호 참사를 또 다른 의미의 광주의 연장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고 설명했다.
폭행사건에 대해선 경찰조사에 의해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이고 법적 처벌이 이뤄지면 될 일이다. 다만 이 일을 통해 일부 법학자들조차 ‘문제가 없다’고 말하기도 하는 세월호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일이 형법체계를 뒤흔드는, 대리기사를 폭행한 것과 마찬가지의 ‘생떼’로 보수언론이 여론몰이를 하는 상황은 분노를 넘어 서글픔마저 느끼게 한다.
그것은 이 나라가 강대한 국가권력과 개별 시민 사이에 아무런 ‘정치’도 ‘공론’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란 것을, 그래서 투쟁은 희생당사자만이 할 수 있으며 그것조차 시간이 지나면 ‘순수성’을 공격받는 ‘사회 아닌 사회’라는 것을 웅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보수언론은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주장할 테니, 이 땅의 ‘보수’는 대체 무엇을 ‘고수’하고자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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