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비대위원장이 탈당 의사를 철회하고 '컴백'했다. 이로써 새정치민주연합은 후임 비대위원장을 정하고 빠른 시간 안에 비대위원회를 구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세월호특별법 협상은 박영선 비대위원장이 원내대표로서 마무리해야 할 상황이다. 다행스런 일인가? 모르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전히 문제는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이 시간만 허비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박영선 리더십’은 이미 세월호특별법 협상이 두 차례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 의해 거부되면서 붕괴했다는 게 기정 사실이다. 결국 박영선 비대위원장이 어떤 모양새로 물러나느냐의 문제만 남은 셈이었는데, 그간 우려됐던 대로 박영선 비대위원장이 탈당을 선택하지 않는 이상, 그가 어떻게 물러나느냐의 문제는 오직 정치인 박영선의 미래에만 영향을 끼치는 요소일 뿐, 세월호특별법을 둘러싼 정국을 정리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17일 오후 국회 당 대표실에서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특별법에 대한 강경한 발언을 쏟아낸 것은 이런 상황과 맞물려 새정치민주연합의 처지를 더욱 답답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박영선 비대위원장이 우여곡절 끝에 복귀했으면, 이제 앞으로 이를 통해 어떤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여야 핵심 지지층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텐데 그게 아니라 고생을 할 일만 잔뜩 남아있다는 사실이 재차 확인된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발언에 더해 정의화 국회의장의 국회일정 단독 결정까지 더하면 박영선 비대위원장의 복귀와 이후 지도력 재건이 잘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장외투쟁을 반복하는 운명으로 내몰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언론과 당 내외의 비판 여론이 비등해질 것이고 결국 ‘야당의 당대표는 무덤’이라는 정치권 안팎의 비아냥이 다시 한 번 현실이 되는 괴로운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는 것이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의 비상대책위원장이 당 내의 권력구도에 있어서도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비극을 배가시키는 요소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17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새로 구성될 비대위의 주요한 임무로 당 조직의 재건과 혁신을 꼽았다. 새로운 비대위가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 시절의 상황에 머물러있는 지역위원회 등의 구성이 주요한 임무를 맡아야 된다는 것이다.

지역조직을 재건해야 한다는 것은 곧 내년 초에 진해될 예정인 차기 지도부를 구성하는 전당대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건드려야 한다는 얘기다.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상황에서 이는 그야말로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도 없다. 비대위가 지역조직 재건과 조정을 끝내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차기 전당대회의 룰을 확정하는 것이다. 이 역시 각 계파들의 이해관계가 직결돼있는 문제다. 내년 전당대회의 향방은 결국 2016년 공천권과 연결될 수밖에 없으며 2016년 총선의 결과는 곧 2017년 대선을 향한 대권주자들의 이해득실과도 맞물린다.

‘박영선 리더십’은 애초에 이런 상황을 앞두고 각 계파들이 이해관계를 두고 서로 대립하기 보다는 ‘명분’의 차원에서 충돌을 미래의 일로 미뤄둔 결과로 형성된 것이다. 7·30 재보궐선거 실패로 지도부가 총사퇴한 상황에서 그나마 ‘선출된 권력’이라는 명분을 당 내의 계파질서가 전부 수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명분이 지금 어이없는 연속된 사건으로 깨져버리고 말았다. 이후 상황을 희망적으로 볼래야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이 15일 국회에서 열린 제4차 남북관계 및 교류협력 발전 특별위원회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번 사태를 거치며 새정치민주연합 내에 그나마 존재했던 지도력에 대한 컨센서스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박영선 비대위원장 측은 이번 사태의 핵심 고리가 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영입 과정에서 당 내 주요 계파 및 중진들과 나름대로의 의논을 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박영선 비대위원장의 거취에 대해 당 내 중진들이 더 이상 거론하지 말 것을 당 내 의원들에게 주문하였음에도 초재선 의원들이 그야말로 ‘들고 일어난’ 것이나 문재인 의원의 이상돈 교수 영입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진 것 등의 상황은 앞서 언급한 상황의 근거가 되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정치권 안팎의 관계자들과 언론 등은 그간 새정치민주연합의 지도부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계파정치에 휘둘려 합리적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는 평가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갖는 계파에 의한 합의구조는 그야말로 고질적인 병폐로 취급됐다. 그러나 박영선 비대위원장이 이를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계파정치를 극복하라는 주문은 당 내 모든 합의구조의 붕괴로 귀결되고 있다. 이것이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가장 큰 문제이다. 전격적인 김한길-안철수 합의로 과거 민주당과 새로 합류한 안철수 의원 측 그룹의 갈등이 빚어진데다 이전까지 구 민주당 내에 분립하고 있었던 친노, 민평련(구 김근태계), 486, 손학규계, 구 민주계 사이의 갈등이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를 거치며 증폭돼 이제 누구도 이 난리통을 수습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른 것이 아닌가, 그런 우려를 거둘 수가 없다.

그러므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당 내의 합의구조를 재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다. 일단은 계파와 중진, 원로에 의한 의사결정이라는 구습에서 벗어날 수 없겠으나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지도력을 빠른 시간 안에 구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거에서의 승리나 권력의 쟁취를 넘어서는, 당 전체의 합의된 목표를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차기 전당대회가 노선의 경쟁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새로 구성되는 비상대책위원회는 이 전당대회에서 구성되는 지도부의 노선에 구성원 전체가 동의하고 이를 밀어붙일 수 있는 당 내의 요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자면 여전히 비대위원의 인선은 중요한 문제다. 이 모든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지금의 이런 상황은 다시 벌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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