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300석 중 130석을 점유하는 거대정당의 대표자가 나가 떨어졌다. 안 그래도 마비상태였던 국회는 언제 작동을 할지 예측조차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신문들 역시 이 상황에 대한 우려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16일자 <조선일보>는 <정치가 '作動 중단' 빠지면 極端 세력 커질 수밖에 없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새정치연합은 의원 60%의 동의 없이는 어떤 법안도 처리할 수 없게 만든 선진화법에 따라 국회를 움직이거나 세울 힘을 갖고 있다. 과거 어느 야당도 갖지 못했던 막강한 비토권(거부권)을 손에 쥐고 있는 셈”이라면서, “새정치연합의 내분은 국회마저 마비시켰다(...) 국회와 정당, 정치가 작동(作動) 불능, 기능 정지 상태에 빠져들면서 정치에 대한 극단적 혐오감과 허무주의가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고 우려했다.
같은 날 <중앙일보>는 <'박영선 탈당설' 까지 나온 제1 야당의 내분>란 제목의 사설에서 “원내대표를 겸하고 있는 박영선 비상대책위원장이 느닷없이 탈당 의사를 밝히며 종적을 감춘 건 정당 사상 초유의 사태다”라고 현 상황을 규정하면서 “박영선 사태의 근본 원인은 이성보다는 감상, 협상보다 투쟁, 타협보다 선명을 중시하는 새정치연합 의원들의 습관적인 운동권 체질 탓이다”라고 주장했다.
보수언론들만의 우려가 아니었다. 같은 날 <한겨레>는 <새정치, 무너진 리더십 정비가 시급하다>란 제목의 사설의 서두에서 “침몰 직전의 난파선을 방불케 하는 혼돈의 아수라장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그야말로 총체적 난기류에 휩싸였다”라고 품평했다.
▲ 16일자 조선일보 3면 기사
그러나 <한겨레>는 <중앙일보>와는 정반대로 “당이 혼돈의 나락으로 떨어진 일차적 책임은 누가 뭐래도 박영선 위원장에게 있다. 그는 두 차례의 세월호 특별법 ‘덜컥 합의’에 이어 무리한 외부 비대위원장 영입 추진으로 세 차례나 치명적 과오를 되풀이했다. 단순한 실책으로 넘어가기에는 내용이 엄중하고 절차도 독단적이었다. ‘박영선 파동’은 여당의 오만을 덮고 청와대의 독선을 감추는 가리개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박 위원장 자신은 비대위원장은 물론 원내대표의 기능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리더십에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박영선 위원장을 흔드는 새정치민주연합 내 강경파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경향신문> 역시 <새정치연합의 지리멸렬 암담하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이 사태의 풍경을 “말 그대로 지리멸렬이다. 130석의 거대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정당’이라고 운위하기에도 낯뜨거운 난맥을 드러내고 있다”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경향신문> 역시 <한겨레>와 마찬가지로 박영선 위원장에게 책임을 돌렸다. <경향신문> 사설은 “박영선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세월호특별법 1·2차 협상 실패에 이어 비대위원장 영입 과정에서 리더십 빈곤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유족들과의 기본적 공감도 없이 세월호특별법을 합의해주는 패착을 연거푸 저지른 것도 모자라, 정체성 논란을 야기할 게 뻔한 비대위원장 영입을 독단으로 결정해 밀어붙이려다 좌초했다. ‘나쁜 결과’에 대한 책임을 놓고도 ‘박영선 탄핵’과 박 위원장의 ‘탈당 불사’가 파열하는 막가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다만 <경향신문> 사설은 새정치민주연합 내 다른 주체들에 대한 비판도 아끼지 않았다. <경향신문>은 “심각한 것은 박 위원장의 거취를 정리하는 것으로 새정치연합의 혼돈이 정리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선 후보를 비롯해 당내 중진들이 이번 국면에서 보여준 행태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문재인 의원은 ‘이상돈 비대위원장’에 적극적 동의를 해놓고 막상 논란이 일자 관전했고, 뒤늦게 “무산돼 아쉽다”고 말한다. 다른 중진들 역시 계파적 이해와 차기 당권 득실을 계산하며 지도부를 나무에 올려놓고 흔들기에 급급했다“라며 새정치민주연합 내 중진의원들도 비판했다. <한겨레> 사설 역시 두 세문장으로 당내 중진을 비판하긴 했지만 문재인 의원의 행태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경향신문>의 수위가 더 쌨다.
▲ 16일자 경향신문 3면 기사
그러나 ‘박영선 파동’에 관해서 문재인 의원의 책임론을 가장 강하게 지적한 것은 <동아일보> 였다. <동아일보>는 3면 하단 기사의 제목을 <문재인도 ‘이상돈 파동’ 책임론>으로 달고 새정치민주연합 내 일부 분위기를 전했다.
또 <동아일보>는 <문재인의 기회주의 처신, 새정연 더 궁지로 몰았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나 박영선 위원장이 아닌 문재인 의원을 정조준했다. <동아일보> 사설은 “문 의원이 처음에는 이 교수 영입에 반대하지 않다가 당내에서 반발이 확산되자 슬그머니 ‘부적절’ 쪽으로 태도를 바꾼 것이라면 기회주의적 처신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동아일보> 사설은 “문 의원은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 옆에서 함께 단식을 하며 여야 간 두 차례 합의를 무력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세월호 특별법에 막힌 국회의 무한 표류를 막고 새정치연합이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문 의원이 막후에서 당을 흔들 일이 아니다. 책임지고 당을 이끌겠다고 나서든지, 아니면 당이 국민의 요구를 따르도록 친노 의원들을 설득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을 <동아일보>의 주장에 전적으로 찬동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 한 진보언론이 새정치민주연합 내 강경파들의 주장에 너무 쉽게 동조하고 문재인 의원에 대한 비판도 줄이거나 생략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 16일자 동아일보 3면 기사
강경파들은 세월호 특별법 협상의 두 번의 실패를 근거로 박영선 위원장의 자질부족을 논한다. 그 두 번의 협상에서 박영선 위원장이 발휘한 리더십은 확실히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그 협상은 원내대표로서 한 것이지 비대위원장으로서 한 것은 아니다. 책임을 물으려면 원내대표 자리를 물러나라고 하고 다른 이를 그 자리에 앉혀 협상을 진행시키는 것이 나았다. 원내대표는 의원들의 의결을 통해 다시 뽑으면 되는 자리다.
비대위원장은 그와는 다르다. 안철수 세력과의 통합 이후 제대로 된 절차를 통해 지도부를 구성하지 않은 새정치민주연합은 7.30 재보궐선거의 실패 이후 김한길·안철수 두 공동대표가 떠난 이후 비대위말고는 답이 없는 상황이다.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겸임하기로 한 것은 권한을 지나치게 집중한 잘못된 처사였지만,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모든 의원은 만장일치의 박수로 그러한 결정을 환영했다. 비대위원장은 설령 사퇴하더라도 차기 비대위원장을 선임하지 않는다면 당무에 많은 혼란이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영선 위원장이 후임 비대위원장을 물색하고 있다는 건 어쨌든 사퇴의 길을 고민했다는 것이다. 박영선 위원장으로선 비대위원장은 남에게 물려주고 원내대표는 고수하는 식의 처신을 고민했을 수 있다. 원내대표로서 협상에 실패했는데 비대위는 물리고 원내대표는 고수하는 걸 ‘꼼수’라 부를 수도 있지만 원내대표직이 아닌 비대위원장 자리를 흔든 강경파들에 대한 화답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게 된 일이었는데 이제는 잘못된 사람을 선임했다고 난리를 쳤다. 다른 사람으로 다시 선임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박영선 의원더러 비대위원장에서도 원내대표에서도 물러나란 식이었다. 박영선 위원장이 가장 덜 혼란스럽게 물러나는 방법은 당내 의견을 모아 후임 비대위원장을 지명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랬다. 여기다 대고 ‘탈당’ 운운한 것이 정치인의 판단이기 보다는 개인의 ‘성질’을 못 이긴 성숙하지 못한 행위임은 분명하지만, 애초 강경파들의 요구가 괴상했다.
▲ 16일자 한겨레 3면 기사
강경파와 진보언론은 세월호 특별법 협상 때처럼 박영선 위원장의 독단이 문제의 근원이었다고 한다.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비대위 체제의 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당내 중진의원 몇 명의 의사를 물어보았으면 나름대로 여론수렴을 한 것이다. 게다가 내정 전에 언론에 흘리면서 의원들의 반응을 보기도 했다. 그들은 문재인 의원은 이 인선과 관련이 없었던 것처럼 말하다가 그렇지 않았다는 정황증거가 드러나니 그 문제에 대해선 침묵한다. <동아일보>의 공세에 뭐라고 답할지 궁금하다.
‘박영선발 태풍’, 새정치민주연합에 펼쳐진 이 난리통에 당내 주류라는 친노가 내심 대선후보로 여겼던 문재인 의원의 리더십도 파탄을 드러냈다. 문재인 의원은 전후 상황을 설명하면서 박영선 위원장과 함께 책임을 지거나, 그게 아니라면 이상돈 명예교수 선임에 대해 강경파들을 설득했어야 했다.
극단적으로,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에 필요한 리더십은 문재인 의원이 강경파들의 ‘비대위원은 되지만 비대위원장은 안 된다’는 다소 납득하기 힘든 논리에 맞서, “정 그렇다면 내가 비대위원장을 맡을 테니 이상돈 명예교수를 비대위원으로 모시자. 그리고 당을 쇄신해보자”라고 말하는 것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문재인 의원은 이중 어떤 길도 택하지 않고 이상돈 후임 비대위원장 카드와 박영선 현 비대위원장 카드가 좌초하는 걸 바라만 보고 있다가 안타까움을 표했다.
난장판이 펼쳐졌다면 개선의 여지를 기대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어떠한 종류의 리더십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문재인 의원이 몸소 확인시켜준 꼴이 되었다. 이대로 시간을 때우다가 내년 2월 전당대회에서 그 친노 주류란 사람들이 당권을 접수한다면 당이 어떤 ‘콩가루 집안’이 될지 불보듯 뻔하다. 최근 새누리당 일각에서 “이런 식으로 문재인이 (다음 대선에) 또 나오면 우리가 또 이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새정치민주연합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