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1등신문과 2등신문으로 불리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각기 눈에 띄는 1면 편집을 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의 이러한 지면 편집은 현실에 대한 영향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는 사례로 주목해볼만 하다.

12일 <조선일보>는 1면에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을 청와대가 경질하기로 방침을 정했다는 기사를 배치했다. KB금융지주 내분사태 처리 과정의 잡음과 동양그룹 사태 등의 대처에 미흡했다는 게 주된 이유라고 한다. <조선일보>는 후임 금감원장 인선이 상당히 진행됐고 1~2명의 후보로 압축됐다며 상당히 구체적인 정황까지 보도했다.

▲ 조선일보 12일자 1면

<조선일보>의 이러한 보도는 다른 언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으로 그야말로 ‘단독 보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기사는 <조선일보> 1면의 우측 상단에 배치돼있는데 <조선일보>는 과거 안대희 전 대법관의 국무총리 후보자 내정 사실을 단독 보도할 때도 이 자리를 활용한 바 있다.

하지만 청와대가 <조선일보>의 이러한 보도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조선일보>의 체면은 구겨지게 됐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만약에 그런 조치를 취한다면 취해야 하는 위치에 계신 분께 확인해보니 그런 사실이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위원장의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있다. 민경욱 대변인의 해명에 의하면 최소한 금융위원장이나 대통령의 의사는 확인이 된 셈이다.

그러나 1등 신문인 <조선일보>가 아무런 근거나 판단없이 이러한 보도를 했을리는 만무하다고 추측해본다면 조만간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의 거취에 어떤 변동이 생길 가능성을 점쳐보는 것도 무리한 일은 아니다. 최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중징계 결정을 둘러싸고 극한갈등의 절벽으로 떠밀리고 있다.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가 경징계 결론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이를 뒤집은 것에 대해 임영록 회장 측이 크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계의 관례는 금융 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임원의 경우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인데, 임영록 회장은 중징계 결정 이후 언론 인터뷰 및 기자회견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을 비난하며 사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임영록 회장이 과거 재정경제부 제2차관을 역임한 이른바 모피아의 일원이라는 점에서 금융 당국과 힘겨루기를 해볼만하다고 판단하고 있지 않겠느냐는 해설을 내놓고 있다. 임영록 회장에 대한 최종 징계수위는 12일 금융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확정된다. 즉, 임영록 회장에 대한 징계 당일에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의 거취에 대한 기사를 1면에 게재하는 <조선일보>의 편집은 어떤 ‘의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추측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 날 <중앙일보>의 1면 편집도 그 의도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앙일보>는 <시대 거스르는 ‘신연좌제 망령’>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인호 KBS 이사장을 거론하며 이미 폐지된 연좌제의 망령이 여전히 한국 사회를 떠돌아 다닌다면서 소위 친일 조부 논란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드러냈다. 야권과 일부 언론 등에서 이인호 이사장의 조부가 대표적인 친일인사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는데 대한 대응으로 볼 수 있는 편집이다.

▲ 중앙일보 12일자 1면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중앙일보>가 다른 다룰만한 소재도 많은 이 날에 그 중요한 1면 톱 지면을 이인호 이사장을 방어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 관계자의 막말에 대한 책임을 지고 길환영 전 KBS 사장이 물러난 시점에서 KBS가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소위 ‘친일 강연’ 동영상을 보도한 데 대해 <중앙일보>의 ‘뒤끝’이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뉴라이트 성향인 이인호 이사장의 임명은 정권이 KBS를 장악하기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가능성이 큰데, 친일 논란에 휩싸여 이인호 이사장이 타격을 입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지원사격해 정권의 KBS 장악을 용이하게 하면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보도와 같은 비극이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계산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편, <중앙일보>는 이 날 사설을 통해 그간 제기된 중국발 IT제조업 위기론에 대한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한 한국IT호>라는 제목의 이 사설을 통해 애플의 아이폰6 등 신제품 발표와 중국업체들의 대형 UHD TV 개발 등으로 한국의 IT산업이 위기를 맞게 됐다면서 발상의 전환과 끈질긴 야성을 깨워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한국 IT산업을 <중앙일보>와 특수관계인 삼성전자가 이끌어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사설은 일종의 ‘반성문’으로 봐도 될 것 같다.

▲ 중앙일보 12일자 사설

그러나 문제는 <중앙일보>의 반성문 제출이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것이다. 사설에서 거론되고 있는 중국업체의 UHD TV 등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2014 IFA에서 화제가 된 제품들이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는 이미 다수 언론이 <중앙일보>의 반성문 제출 하루 전인 11일에 일제히 평가한 내용이다. <중앙일보>는 한국 IT제조업에 혁신을 주문하는 목소리의 가장 끄트머리에 서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목소리의 선두에 선 매체는 어딜까? 1등신문인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이미 10일 1면 톱기사를 통해 IFA 2014 소식을 전하면서 삼성이나 LG에 앞서 중국의 TCL이 세계 최대 크기의 곡면 UHD TV를 선보이며 세계 전자업계를 놀라게 했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는 같은 날 IFA 2014 소식을 전하면서 삼성전자가 스마트홈 플랫폼을 선보여 기선을 제압했다고 썼다. 다음날 언론 보도를 보면 어떤 신문의 의제 장악력이 더 우수했던 것인지를 평가할 수 있다. 역시 1등은 1등이고 2등은 2등이다.

▲ 10일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IFA 2014 소식 보도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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