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라도닷컴’ 침탈 사건(관련 기사 링크)과 광화문 폭식투쟁 등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 회원들의 움직임이 넷상의 발언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이나 시위로 표출되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되자 오히려 보수언론과 보수인사들이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준 것은 11일자 <중앙일보>의 사설이다. <중앙일보>는 <'일베' 의 반인륜 집회, 문명 사회의 수치다>라는 대단히 강경한 제목의 사설에서 “그러나 그 취지야 어떻든 꽃다운 자식을 잃고 극한의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족들의 단식농성장 앞에서 ‘폭식행사’까지 벌인 행위는 비인간적이고 반인륜적이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더구나 광화문광장 농성장엔 추석을 맞아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추석상까지 차려진 상태였다고 한다. 이는 유가족들을 조롱하는 행위로 문명사회라면 부끄럽게 여겨야 될 일이다”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측 인사들도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11일 라디오에 나온 이준석 새누리당 혁신위원장과 하태경 의원도 ‘일베’의 행동을 일정하게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이준석 위원장은 SBS 라디오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서 "이런 행동양식 같은 경우에는 몰상식한 부분이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강자의 위치에 있는 분들은 아니다. 조롱이라는 것 자체도 자제가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 12일 오전 '일간베스트저장소' 화면 캡쳐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KBS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폭식투쟁에 대해 "좀 유치하고 졸렬하다"고 비판했다. 하태경 의원은 "사실 지금 세월호 정국을 무리하게 이끌어 가는 광화문 단식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높고, 여기에는 충분히 항의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된다"면서도 “그 항의하는 방법이 조금 더 세련되고 교양이 있었으면 많은 국민들이 지지를 했을 텐데,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하태경 의원은 20대 우파 청년들의 자정능력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10일의 발언에 대해서는 "일베 게시판에 들어가 보니까 이번 폭식투쟁을 비판하고 자성하는 20대 친구들의 목소리가 굉장히 강하게 있었다"라며 취지를 해명했다.
실제로 추석명절에 만난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투쟁을 강하게 비난하는 친척어른들 역시 ‘일베’의 폭식투쟁에 대해서는 언급할 가치도 없는 황당한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증언이 많다. 이는 ‘일베’식 조롱이 사회의 평균적인 상식에서 다소 어긋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세력의 ‘일베’에 대한 거리두기는 그들이 이슈를 충분히 통제한다는 자신감이 있고 ‘일베’의 행동이 다소 극단적으로 나타날 때에 나오는 것이다. ‘일베’의 활동이 게시판에서 머무르고 이슈에 대한 여론이 팽팽할 때 그들은 언제나 ‘일베’를 ‘별동대’처럼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보수세력은 ‘일베’에서 만든 논리가 어거지라도 이를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카카오톡 등을 통해 유포할 경우 여론에 충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히려 이들의 비판은 상대당파의 행동을 제약하는 잣대로 활용되기도 한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중앙일보>의 사설은 “일부 일베 회원 100여 명은 이날 세월호 유가족 등이 단식농성을 벌이는 곳 앞에서 피자·치킨 등을 나눠 먹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한 인터넷 카페 운영자는 9일 일베 회원들이 행사를 가진 장소에 ‘개보다 못한 것들 사료 먹는 곳’이라는 문구를 써 붙이고 개집과 개밥을 갖다 놓기도 했다”라며 ‘일베’의 행동 뿐 아니라 그들을 경멸한 이들의 행동도 함께 소개했다.
그러면서 <중앙일보>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엔 서로 의견이 다르면 합리적 논쟁으로 접점을 찾기보다는 상대를 향해 일방적인 비난과 저주를 퍼붓는 극단적인 세력이 자리 잡고 있다. 일반 사회에선 점점 약해지고 있는 지역 감정이 이들 사이에선 더 노골화되고 있다. 일베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일베 회원들을 벌레(일베충)로 비유한다. 인터넷엔 일베 회원임을 판별해 주는 일베회원검사기까지 등장했다”라고 설명한다. ‘일베’ 뿐 아니라 ‘일베’를 강력하게 배제하고자 하는 문화의 극단성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일베’ 유저들을 ‘일베충’이나 ‘개 사료나 먹을 것들’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못할뿐더러 더 이상 ‘일베’ 문제에 대한 대응이 될 수는 없다. 스스로를 ‘벌레’라고 칭하기도 하는 ‘일베’ 유저들은 그러한 배제 속에서 오히려 자신들의 행위의 정당성을 찾고 재미를 얻는 상황일 수 있다.
또한 ‘일베’의 행동 중에서 무엇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바라봐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성찰적 토의가 필요하다. 가령 민주정부를 구성했던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비하어에 분개하려면 마찬가지로 보수정부 대통령들에 대한 관습적 폄하어도 교양없는 언어로 규정하는 일관성을 지녀야만 한다. 그게 아니라면 양자 모두 각 당파의 표현의 자유의 영역으로 보장해야 한다. 민주화운동에 대한 부정을 역사교육의 문제가 아닌 법적 금지로 풀자고 말하는 이들은 국가보안법상 고무찬양죄는 어떻게 반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런 식의 성찰이 있어야 ‘일베’의 행동 중 가장 문제시 삼을 수 있는 여성혐오나 특정 지역(호남)혐오 등의 문제를 증오발언(hate speech)의 영역 속에서, 이러한 성향이 표출된 범죄 행위를 증오범죄(hate crime)의 틀 속에서 다루는 것에 대한 합의를 초당파적으로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재특회’ 등의 혐한발언과 유럽의 네오나치의 사례가 한국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예측하여 이주민노동자나 결혼이주 여성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일베’의 행동이 한국 사회 시민의 상식에 어긋나게 드러나는 것에 대해 보수가 곤혹스러워 하는 것 같지만 그들의 입장에선 진보가 단지 ‘일베’ 문제에 대해 경멸만으로 대응하는 것이 안전하다. 진보가 ‘일베’를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들 보수는 현행 법의 적용에 대해서만 침묵하고 새로운 법안에 대해선 합의를 안 해주면 그만이다.
그런 상황에서 진보가 ‘일베’라는 새로운 현상을 맞아서 하는 대응은 상호 역지사지를 통한 합의에서 최소한의 규준을 만들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늘상 보수에 대해 ‘기울어진 운동장’ 운운하지만, 이러한 노력에서 만들어낸 규준만이 운동장의 기울기를 조금이라도 보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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