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무용론’을 넘어 ‘국회 해산’이란 키워드로 검색을 해야 한다. 추석 민심을 전하는 기사라지만 정치권을 비난하는 언어의 수위가 높다.
11일자 <조선일보>는 <국회, 15일 본회의에서 무조건 경제·민생 법안 처리하라>란 제목의 사설에서 “여야가 세월호법을 둘러싸고 싸우더라도 그와 관계없이 시급한 경제·민생 법안들은 통과시켜 가면서 하라는 것이 이미 확인된 민심(民心)이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60~70%가 여기에 동의하고 있고 반대는 20% 안팎에 불과하다. 세월호법이 중요치 않다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성격이 다른 것을 연계해 장외투쟁까지 해가며 싸우는 데 대한 분노가 반영된 결과다. 이 정도 여론조사 결과면 거의 '명령' 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추석 기간 중 지역구에 다녀온 의원들은 여야를 불문하고 '국회 해산' 같은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라고 전한다.
같은 날 <중앙일보>는 <민생법안이 무슨 죄 … "당장 국회 해산" 들끓는 민심>란 제목의 4면 기사에서 “새정치연합은 애초 추석 연휴 직후에 진도 팽목항부터 서울까지 도보 행진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당 안팎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날짜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 11일자 중앙일보 4면 기사
보수언론이 세월호법과 민생의 대립각을 만들어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회 해산’이란 어휘를 자극적으로 동원하며 성난 민심을 강조하는 보도도 공식적인 연휴가 끝나는 10일부터 이어졌다. 그러나 민심이 실제로 그럴지라도 지금의 국회를 ‘태업 국회’라고 비난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 일인지는 의문이다.
물론 민심의 향방에 따라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세월호법과 기타 법안을 분리하여 처리하도록 방침을 변경할 수가 있다. 새누리당이 민생법안이라고 내세운 것 중엔 애초에 새정치민주연합이 동의하지 않는 법안도 많은데, 그것들을 제외한 나머지들에 대해선 합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본다면 상대방이 원하는 법안을 지렛대로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을 관철시키는 것은 정치의 한 과정인데, 애초에 이와 같은 ‘딜’을 금지한 채 ‘협상의 묘’를 발휘하라고 운운하는 것은 ‘정치 혐오’를 조장하는 것에 가깝다.
보수언론의 논법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세월호법 문제를 민생보다 위에 두는 것은 새정치민주연합 뿐만이 아니라. 새누리당 역시 정말로 민생이 세월호법보다 훨씬 엄중하다면 유가족이 원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하여 이 국면을 탈출한 후 민생법안을 처리하자고 제안하면 그만이다. 새누리당이 그러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형사사법체계의 원칙 운운하며 그 사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누리당 역시 그들이 말하는 바 형사사법체계의 원칙을 민생보다 앞세우는 정당이라고 봐야 옳겠다. 하지만 보수언론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말하는 법은 없다.
또한 행정부와 입법부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은 채 국회만을 태업하는 집단으로 몰고 가는 것도 큰 문제다. 청와대와 행정부의 관료들은 출근만 하면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이 처리되지 않을지라도 다른 할 일이 많다. ‘월급 도둑’으로 몰릴 걱정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과 그들이 현 정국에서 정치적으로 제대로 된 역할을 하는지 여부에 대한 평가는 다른 문제다. 세월호 정국이 교착화된 데엔 대통령과 청와대가 적극적인 역할을 거부하고 있다는 지점도 큰데, 이 부분을 생략한 채 ‘여의도 정치 혐오’만을 조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내수경기의 침체를 논하지만 그간 한국 사회의 정치권이 추진해온 수출 대기업 중심의 경제전략이 서민경제를 악화시켜왔다고 봐야 한다. 실질소득의 정체와 가계부채의 심화가 누적되어 갈 때 세월호 참사라는 심리에 큰 타격을 주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지 단지 사람들이 우울해서 경기가 얼어붙은 것이 아니다. 현재의 경제구조를 만든 책임은 과거 민주정부와 현재 보수정부 모두 일정 부분 져야 한다고 볼 수 있겠지만, 2012년 대선의 경제민주화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그 모순을 심화시켜 나가는 것은 현 정부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그들에게 악운이 될 수 있었을 세월호 참사를 ‘야당의 발목잡기’의 원흉으로 내세워 민생경제 침체의 알리바이로 내세우는 보수정부와 보수언론의 전략은 당장에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보수언론의 종합편성채널이 가진 여론주도력도 새삼 증명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정치 혐오’를 조장하며 지탱되는 통치는 보수정부의 통치기반조차도 취약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할 때다. 2011년, 느닷없이 출몰한 ‘안철수 현상’은 당시 민주당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에도 충격을 줬다. ‘정치 혐오’가 심화되면 여권에 유리하다는 것은 ‘당장 먹기엔 곶감이 단 것’과 같다.
새누리당 등 보수세력이 더 이상 ‘정치 혐오’를 무기로 위기를 벗어나려고 하다간 왼쪽의 야권으로부터가 아니라 최근 ‘일베’의 오프라인 세력화에서 드러나듯 아래에서, 혹은 오른쪽에서 냉소주의자나 극우파로부터 위기가 찾아올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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