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행복도우미가 일하는 다산콜센터에는 건물 각 층마다 노무관리 전광판이 있다. 전광판에는 콜센터 시스템에 접속해 있는 상담사의 수, 대기 중인 전화 건수, 상담 중인 노동자 수, 소요시간 등을 나타내는 여러 숫자로 가득하다. 교통, 일반 등 분야별로 콜이 5개 이상 밀리거나 총 10개의 대기콜이 발생하면 전광판에 빨간불이 뜨고 노무관리 시스템이 가동된다. 각 업체의 관리자들은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라운딩’을 뛴다. 그리고 상담사들을 채근한다.

서울시 시민봉사담당관이 채용공고까지 하며 상담사를 모집하지만 알고 보면 상담사들은 MPC, 효성ITX, KTCS 같은 민간업체 소속이다. 서울시가 민간위탁 방식으로 간접고용한 비정규직이다. 상담사들은 처리 콜수에 따라 임금이 수십만 원까지 차이 나기 때문에 동료를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상담이 숙련될수록 노동강도는 세지는데 상담사 수는 2년 전에 비해 백 명 정도 줄었다. 이들은 하루 평균 100건 이상의 전화를 받는다.

▲ 5일 밤 9시에도 다산콜에는 빨간불이 떴다. 빨간불이 뜨면 관리자들은 라운딩을 뛴다. 김영아 지부장은 “노동조합이 생기기 전에는 하루에 몇 번이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라운딩을 돌았는데, ‘후처리 빨리 끝내세요’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상담사들은 위축됐다”고 말했다. (사진=미디어스)

추석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5일 밤에도 빨간불이 떴다. 보통 밤 9시면 콜수는 3만 건 안팎인데 이날은 1만7천여 건이었다. 콜수가 절반으로 줄어 임금이 깎일 판인데도 상담사들 표정은 밝았다. 명절 연휴가 콜 수가 줄어든 걸까? 아니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날은 희망연대노조 다산콜센터지부(지부장 김영아) 쟁의행위 이틀째였다. 상담사들은 4일 4시간 경고파업을 했고, 이날 오후 3시부터 9시까지 순환파업을 벌였다. 상담사들은 ‘적정노동’을 했다.

5일 밤 서울 신설동에서 만난 김영아 지부장은 이같이 말했다. “상담사들이 숙련될수록 노동강도는 세진다. 바로 처리할 수 있는 콜이 많아지고, 더 자세히 알려드릴 수 있는 상담도 많아진다. 그런 만큼 일은 더 힘들어졌다. 퇴사자가 많이 생겼다. 2012년에 비해 근무하는 상담사가 백 명 정도 줄었다. 콜이 항상 넘쳐흐르는 상황이다. 더 깊이 있게 상담해서 알려드릴 수 있지만 여전히 콜수를 경쟁해야 한다. 상담사들은 심적으로 힘든 상황이다.”

지난해 다산콜 위탁업체 3곳과 노동조합은 기본협약을 체결했지만 단체협약을 맺지 못했다. 지난 3월 시작한 ‘2014년도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도 지난 8월27일 지방노동위원회의 조정중지 결정으로 일단 멈췄다. 노동조합은 8월28일자로 합법적인 쟁의행위 기간을 맞이했다. 업체들은 임금인상률 ‘2%’를 제시했고, 명절 상여금도 8만 원으로 동결하자고 했다. 분기별 1회 감정휴가, 심리안정시간(악성콜 후 휴식시간)에 대해서는 ‘불가’ 입장으로 전해졌다.

▲ 서울 신설동에 있는 다산콜센터. (사진=미디어스)

업체들은 “돈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노동조합의 주장은 정반대다. ‘2013년도 1인당 적용 단가’ 자료를 보면, 다산콜센터에 가장 많은 ‘3년차 일반 주간’ 상담사의 월 단가는 230만2050원이다. 희망연대노조 다산콜센터지부에 따르면, 실지급액은 가장 높은 등급을 받은 S등급의 실수령액은 200만 원 안팎이다. 업체들은 S부터 A~D까지 5개 등급으로 노동자를 평가하는데 만약 최하위 등급을 받으면 3년차 상담사의 월급은 160만 원에 불과하다.

김영아 지부장은 “회사는 단가와 임금의 차액에 대한 내용은 경영비밀이라며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서울시의 예산안 자료를 보면 우리 상담사들 인건비가 나온다. 여기에 있는 기자재는 거의 다 서울시 재산이다. 도급비는 거의 순수한 인건비로 볼 수 있다. 위수탁수수료가 어느 정도 있겠지만 서울시가 책정한 단가와 실제 급여가 이렇게 많이 차이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그런데도 회사는 수수료와 이윤 규모를 밝히지 않는다.”

문제는 어느 업체, 어느 팀에도 D등급이 있다는 것. 김 지부장은 “콜수로 등급을 나누고, 이것으로 월급과 인센티브가 달라지기 때문에 많게는 50만 원까지 차이가 난다”고 전했다. “상담사 5명 야간팀이 있었다. S부터 D까지 하나씩 등급을 매겼다. 그런데 이 팀이 4명이 됐다. 그랬더니 S와 D를 빼고 A부터 C로 등급을 매겼다.” 지난달도 이번 달도 103콜을 받았지만 등급, 월급, 인센티브가 달라질 수 있다. 다산콜센터의 ‘콜 경쟁제도’ 탓이다.

▲ ‘민주노총 서울본부 더불어 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 다산콜센터지부’ 김영아 지부장 (사진=미디어스)

상담사들은 ‘시민님’들과 대화하면서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고, 상담을 진행하면서 내용을 요약한다. 눈도 귀도 입도 손가락도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상담부터 후처리(상담내용 정리)까지 모두 같은 시간에 해야만 평균 처리 시간 3분, 하루 평균 103건을 맞출 수 있다. 한 건이라도 더 받아야 등급이 내려가지 않는다. 서울시에서 식비지원으로 단돈 650원(2013년 기준)을 받는 노동자에게 분기 인센티브 20만 원과 25만 원의 차이는 크다.

서울시는 다산콜의 이 같은 경쟁구도와 노동강도를 방치하고 있다. 지난해 ‘불법파견’ 논란이 일자 서울시는 시민봉사담당관실을 본청으로 옮겼지만 본청 2층 담당관실에는 업체 관리자들이 보고 있는 전광판이 설치돼 있다. 업체 관리자들이 상담사들 사이에서 라운딩을 뛴다면 서울시는 원격으로 노동자들을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 사실상 시에서 내려주는 도급비가 월급과 노동강도를 결정하지만 서울시는 ‘위탁업체 노사문제’라며 선을 긋고 있다.

김영아 지부장은 “8~9월 중 다산콜 직접고용에 대한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고, 내년 초 업체 위수탁계약이 끝나는 시점인데 이제는 서울시가 직접고용에 대한 답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울시는 ‘다산콜 상담사들을 직접고용하라’는 서울시 인권위원회 권고를 무시하고, (위탁업체 3곳의 교섭을 대리하는) 경총과 노조를 중재하지도 않고 뒷짐을 지고 있지만 추석이 끝난 뒤에는 직접고용 문제에 대해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 지금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은 빨간색 투쟁조끼를 입고 시민님들의 전화를 받고 있다. 그리고 하루 몇 시간씩 ‘로그아웃’을 하며 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희망연대노동조합 다산콜센터지부)

최근 쟁의행위에 들어가면서 상담사들은 잠시나마 경쟁을 않기로 했다. ‘적정 콜 받기’다. “다산콜은 받은 질문에 대해서만 빨리 대답하고, 상담이 들어오면 충분히 알려주지 못하는 구조다. 이번 쟁의행위는 ‘상담사들이 자기 몸을 생각해서 적정 콜을 받고, 서울시민에게 제대로 된 행정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취지다. 누군가 툭 튀어나와 콜을 당겨 받기 시작하면 끝나고, 몸에 배인 습관을 바꾸기도 어렵지만 지금까지 잘 하고 있다. 다들 좋아한다.”

‘이런 것을 물어봐도 되나’하는 것까지 척척 알려주는 서울시 행복도우미들이 자신이 행복해지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지금 수화기 너머 있는 다산콜 상담사들은 빨간조끼를 입고 있다. 김영아 지부장은 “다산콜은 공공기관 콜센터 최초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올해 콜센터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고, 공공기관이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를 양산하는 문제를 알려내고 싶다. 이제 우리 이야기도 들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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