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어려운 길로 들어섰다. 자립형사립고 지정 취소 문제를 두고 교육부 및 자사고와 법적 다툼이 일어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은 교육부와 행정소송 및 권한쟁의 다툼을 하게 될 확률이 높고, 각 자사고들도 행정소송 및 민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5일자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을 정면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조 교육감 自私高 취소 강행은 '紛亂의 길' 자청한 것>란 제목의 사설로 조희연 교육감의 처신을 비판했다.
외고와 혁신고는 왜 안 건드리냐고 말하는데…
<조선일보> 사설은 “조 교육감은 자사고 재지정 취소를 강행함으로써 스스로 분란(紛亂)의 수렁 속으로 뛰어드는 결정을 내렸다. 자사고 문제로 인한 소용돌이는 그가 품었을 다른 교육 혁신의 실현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 5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 사설은 그 이유를 제시하면서 특목고와 혁신고를 자사고 문제에 엮는다. <조선일보> 사설은 “조 교육감의 두 아들은 외국어고교를 졸업했다. 서울엔 외고(外高)가 6곳, 자사고가 25곳 있다. 일반적으로 자사고보다는 외고가 더 입학하기 어렵고 수능 성적, 대학 진학 실적이 낫다. 자기 자녀들을 외고에 보냈던 학부모로서 조 교육감은 외고에 대해선 이렇다 할 말이 없다. 그러면서도 자사고를 지목해 '일반고 황폐화의 주범'쯤으로 몰아가는 것을 학부모들이 뭐라 보겠는가”라고 비판한다.
또 <조선일보> 사설은 “좌파 교육감들이 지원해온 혁신고와 이명박 정부 시절 도입된 자사고는 학교·교사들에게 학교 운영과 교과과정 편성에 상당한 재량권을 준다는 점에서 '자율 교육'이라는 공통 지향점을 갖는다. 혁신고는 교육청에서 일반고보다 연 1억원 남짓 더 지원을 받는 반면, 자사고는 등록금이 일반고의 3배인 대신 교육 당국으로부터 연 20억~25억의 운영 지원금을 받지 않는다. 두 형태 학교가 선의의 경쟁을 벌인다면 교육 당국은 자사고 덕분에 넉넉해진 재정을 갖고 혁신고를 더 지원해줄 수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주장은 다른 목표와 양상을 가진 특목고·자사고·혁신고를 비슷한 것으로 뭉뚱그려 만든 궤변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을 비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렇게 말을 만든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외고 출신 아들’이 이 문제와 상관있나?
먼저 조희연 교육감의 두 아들이 외고 졸업자란 사실은 이 문제와 관련이 없다. 심지어 조희연 교육감이 특목고 폐지를 들고 나왔더라도 그렇다. 현행 제도의 개편을 주장하는 이라고 해서 현행 제도의 경쟁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대학평준화를 주장하는 이라도 명문대 출신일 수 있다. 평등을 주장하는 이가 기득권에 속할 경우 ‘자기모순’이라 공박하고 기득권에 속하지 않을 경우 ‘질투의 발현’이라 욕한다면 이 세상에서 현행 제도의 개혁을 주장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5일 오전 종로구 시교육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4일 자사고 재지정 취소 8개 학교 명단을 공개하면서 '자사고 사태'는 시교육청과 교육부 간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연합뉴스)
당장 조희연 교육감은 ‘교수학술4단체’(민교협, 교수노조, 학단협, 비정규교수노조)의 추천 후보였고 이들의 대학체제 개편안은 통합국립대학(교양대학․공동학위․대학네트워크) 안이다(관련 기사 링크). 조희연 교육감을 포함해서 이들 단체엔 명문대 출신 교수들이 득시글함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아들이 외고’ 운운은 애초 아무 상관도 없는 문제이나, <조선일보>는 이러한 공세가 유권자들의 마음에 불을 지를 수도 있단 것을 알기에 이렇게 말한다.
특목고와 자사고와 혁신고는 다르다
게다가 특목고는 자사고와 목적과 효과가 다르다. 특목고는 과학이나 외국어 등 특정 분야에 대한 재능이 있는 이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물론 현재의 특목고는 상위권 학생들의 대학 입시 실적을 높이기 위한 학교로 전락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는 취지를 벗어난 경우고, 진보진영에선 이런 경우엔 적절한 감사에 의해 특목고 지정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특목고가 대학입시 학원으로 전락했다 해도, 그 규모 때문에 상위 2% 정도의 학생이 가는 곳으로 인지되어 있다. 최상위권 진입을 포기한 다수 중위권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덜하다.
반면 자사고는 특히 수도권 지역에선 부모의 계층이 중간층인 다수 중위권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자사고가 대학입시에 훨씬 유리한 하나의 대안으로 존재하면 중상위권 학생의 부모가 흔들리고 초중등학교의 선행학습 경쟁이 심화된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자사고에 쏠릴 경우 이른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일반고 황폐화’ 현상도 심화된다.
자사고와 혁신고 사이엔 훨씬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혁신고는 학생을 성적으로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추첨을 통해 배정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혁신고는 이미 입학한 일반고 학생들을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가르쳐 교육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겠다는 기획이다. 교육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겠단 기획이 의외로 대학입시에도 좋은 결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학부모들의 관심이 쏠렸지만 성적 선발을 하지 않는 이상 초중등학교의 선행학습에도 일반고 황폐화에도 관련이 없다. <조선일보> 사설은 이 뻔한 차이를 굳이 지우면서 학부모와 여론을 호도한다.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오른쪽)이 5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현장 교사와 외부 교육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혁신미래교육추진단'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사고는 과연 ‘수월 교육’을 추구하나
<조선일보> 사설은 말미에서 “교육 현장은 '수월(秀越) 교육'과 '평등(平等) 교육'이라는 두 가치가 부딪치는 분야다. 둘 다 무시할 수 없는 가치여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결정을 내리는 순간 집단·계층 간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조 교육감은 스스로 진흙탕과 같은 그런 '진영(陣營) 싸움'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오늘의 대한민국 교육을 뜯어고치겠다며 품었던 꿈 역시 수렁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사고 존립을 원하는 해당 학교 학부모들의 바람은 수월 교육의 가치와 큰 상관이 없다. 8개 자사고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의도대로 지정 취소된다 하더라도 그 적용시점은 2016년도다. 지금의 고2와 고3이 졸업을 했을 시기다. 지금의 고1은 일반고에서 고3 생활을 하게 되겠지만 여전히 성적 선발로 입학한 그 인원들이 경쟁을 하게 된다. 또한 고3 수험생활은 자사고에서나 가능한 수시에 도움이 되는 비교과 활동은 어차피 접게 되는 시기다. 고3은 일반고에서도 입시준비를 위해 교과 편성의 상대적 자율성을 누린다.
결국 서울시교육청은 시기를 안배하면서 현재 자사고를 다니는 학생의 불이익을 최소화한 것이다. 그럼에도 학부모들이 극렬 반대한다면 상황을 오판했거나 과도한 욕심을 부리고 있는 셈이다. 자사고란 이유만으로 대입 수시 전형에서 엄청난 이득을 볼 거라 오판했거나, 자녀가 다니는 학교가 향후에도 계속 명문고로 남아 자녀가 일생도록 학벌집단의 혜택을 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제도를 개혁하면서 이런 수준의 욕망까지 충족시켜 줄 수는 없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이런 부분은 지적하지 않는다.
▲ 자사고 학부모가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종합평가에 대한 감사를 청구하기 전 기자회견을 갖고 손팻말을 들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4일 자사고 운영성과 종합평가 결과를 발표하며 재지정 취소 8개 학교 명단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자사고가 교육현장에 가져오는 효과는 수월 교육이라기 보단 선행학습의 압력이다. 선행학습은 수월 교육이기는커녕 효율적인 교육방식도 아니다. <미디어스>에 기고된 히요의 글의 일부를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것은 개개인의 학업성취에는 오히려 유리하다. 초중고 12년 동안 학생들이 배워야 할 공부의 양은 줄거나 그대로이고, 매스컴이나 학원에선 절대로 말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중3쯤 느즈막이 공부 시작한 후발주자들도 따라잡을 수 있다. 그럼에도 학교에서 일찍부터 어려운 걸 시키면 ‘난 못 하겠다, 너무 어렵다’ 말하는 포기자들이 더 빨리 나온다. 정해진 커리큘럼의 순서대로만이라도 지키면, 학생들은 뇌의 처리력이 그만큼 발달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 공부를 접할 수 있고, 어릴 때 미리 공부하면 어려웠던 것도 자기 단계에서 거기 맞는 내용을 보면 덜 어렵다. 포기자를 덜 만든다는 얘기다.
이제 슬슬 눈치빠른 학부모들은 학원 뺑뺑이를 돌리거나 지나친 조기교육을 하면 오히려 성적이 안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있다. 부유한 부모들 중 일부는 자녀에게 다양한 체험활동과 프로그램에 참가시키고 여행을 데리고 다니고 책도 읽히는 게 낫다는 것도 안다. 선행교육이 학업성취에 실제로는 유리하지 않다는 건 교육자라면 거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 (해당 기사 링크)
자사고의 숫자를 줄이는 것은 좋은 해법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결단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는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 보아야 한다. 하지만 자사고를 줄이겠다는 정책 방향의 취지는 옳다. 자사고가 줄어들 경우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확실하다.
이번의 결단만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이 올 거라 볼 수도 있다. 자사고가 초중학교와 일반고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자사고의 지위가 흔들리는 것만으로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사고에 다니는 학생들의 불만족도가 높거나, 대학이 자사고의 경쟁력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고 드러날 경우 초중학교 학부모가 자사고를 고민할 확률은 훨씬 줄어든다. 자사고의 지위가 불안정하다는 변수 역시 영향을 미친다.
아이러니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교육정책은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의 폐해를 일부 시정한 부분이 있다. 2014년 2월 교육부는 업무보고를 통해 올해 대입부터 학교생활기록부 전형에서 공인어학성적이나 수상실적 등 외부 '스펙'을 기록하면 0점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현장에서는 이러한 조치가 실제로 과도한 선행학습이나 ‘스펙 쌓기’ 압력을 줄이는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2015학년도 학생부 전형에 활용되는 자기소개서와 교사추천서에 외부 스펙을 기재하면 서류전형 점수가 0점 처리된다. 사진은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열린 대입설명회에서 교육청 자료를 살펴보는 학생의 모습. (연합뉴스)
자사고를 줄이겠다는 서울시교육청의 방침은 오히려 교육부의 이러한 접근에 부합하는 지점이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교육정책은 학부모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의도와 학부모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겠다는 의도 속에서 부유한다. 두 개의 의도는 많은 경우 충돌을 일으킨다.
더 이상 중간층 중상위권 학생을 성적과 계층으로 분리하여 대입에 차별을 주려는 시도를 수월 교육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대학입시 성과교육과 수월 교육이 구별된다는 매우 기본적인 사실에 동의할 때, 한국 교육 문제의 난맥상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제도에 대한 전망도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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