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상암시대 개막 기념식’을 열고 MBC 상암시대를 본격화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은 MBC에 “방송의 공정성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민의 높은 기대에 부응해달라”고 주문했다. 대통령의 축사를 듣고 한 MBC 해직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뭘 더 해달라는 건지”라는 글을 올리며 개탄했다. 그만큼 MBC에는 언론의 기본인 방송의 ‘공정성’이 결핍돼있다는 것이다.

공정성을 가늠하는 언론의 신뢰도에서 MBC의 추락은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시사저널>이 발표한 ‘2014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언론매체 부문에서 MBC는 신뢰도 6위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보다 2계단 하락한 수치다. 하지만 MBC 내에 신뢰를 회복하려고 하는 노력이 있는지는 미지수다.

MBC, 상암시대 개막…또 다시 ‘광고 규제완화’만

MBC는 ‘상암시대’를 맞아 9월 1일부터 <생방송 상암통신>, <열정의 상암 승리의 MBC>, <방송의 미래를 말하다> 등 특집프로그램을 다수 편성했다. 여의도 MBC 시대를 평가하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 프로그램들의 내용에는 ‘공정성’ 확보에 대한 것은 쏙 빠져 있다.

▲ 지난 1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캡처
<방송의 미래를 말하다>의 내용은 이런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혹여나 방송 프로그램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방안이 제시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사회를 맡은 정연국 MBC 보도국 취재센터장은 프로그램 도입부 부터 “이 자리는 한류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재도약을 모색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이 날 대담 프로그램 패널은 최광식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새누리당 박창식 의원, 문철수 한신대 미디어영상광고홍보학과 교수, '뽀로로' 등을 만든 최종일 아이코닉스 대표였고, 프로그램에서 주요하게 다뤄진 주제는 ‘방송규제 완화’였다. 가상광고를 허용해 해외에 나가는 방송 프로그램에 우리나라 기업의 상표를 붙여 나간다면 한국 산업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므로 이를 막고있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게 패널들이 내놓은 핵심 주장이다.

MBC <뉴스데스크>도 비슷했다. 1일 박근혜 대통령의 축사를 보도하면서 MBC가 특별히 주목한 부분은 ‘방송산업 분야 규제 완화’에 대한 부분이었다. MBC는 박 대통령의 “정부도 방송 콘텐츠 산업을 창조경제의 핵심 분야로 육성하고, 우리 방송의 지속적인 발전을 지원해갈 것”, “MBC가 국민들이 더 큰 신뢰 속에 대한민국 창조역량을 끌어올리는 선도적인 역할을 해주시기 기대한다”라고 발언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공정성’ 관련 발언은 기자가 “방송의 공정성과 방송제작 환경 개선도 강조했다”라는 한줄 문구로 전하는 걸로 처리됐다.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다. 이는 안광한 사장 체제의 MBC에서 공정성 확보를 기대할 수 없는 이유를 스스로 설명하는 모습과도 같았다.

MBC, 지상파로서의 역할에 대한 고민은 어디에

'상암시대 시작'을 이야기 하면서 MBC는 언론으로서 본연의 모습을 찾으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콘텐츠 제작과 그를 통한 한류확산을 이야기 했다. 언론의 기본은 저널리즘에 있다. 특히, 지상파의 경우 보편적 무료 서비스라는 플랫폼의 특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자사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한 점검은 기본이다. 하지만 어느새 지상파방송사업자들은 스스로의 위치를 콘텐츠 생산과 그를 통한 수익을 얻는 데에만 한정하고 있다. 특히 MBC는 이러한 흐름에 앞장서고 있다.

▲ tvN '꽃보다 할배'와 JTBC '비정상회담'
공영방송론에 대해 학계 인사들은 각기 다른 입장을 내보이곤 한다. 그 중 수신료 인상의 당위를 강조하는 이들은 ‘KBS가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드라마는 만들어 시청률 경쟁을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같은 논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무리다. KBS가 <왕가네식구들>과 같은 이른바 ‘막장’ 드라마를 제작, 방영하는 것은 문제이지만 단막극이나 실험적인 드라마를 제작해 한국사회의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오히려 공영방송의 책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물로 한류에 기여를 한다면 더욱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상파의 역할은 그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콘텐츠 제작은 방송프로그램사용사업자(PP)에서도 하는 일이다. 최근에는 오히려 tvN이나 JTBC의 예능 및 드라마가 새로운 포맷으로 더 좋은 평가와 시청률을 얻고 있다. CJ E&M은 3일(오늘) 오전 tvN <꽃보다 할배> 방송 프로그램 포맷을 한국 예능프로그램 사상 최초로 미국 지상파 방송사에 수출해 '쾌거'를 이뤘다고 발표했다. tvN은 <꽃보다 할배> 포맷을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 시리즈로 확산시키며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CJ E&M은 이 밖에도 <슈퍼스타K>, <TEN>, <나인>, <더지니어스> 등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종편 JTBC 역시 <마녀사냥>, <히든싱어>, <비정상회담> 등의 새로운 포맷을 활용한 예능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공영방송 MBC가 새로운 ‘상암시대’를 맞아 고민해야할 부분은 드라마나 예능의 콘텐츠 제작보다는 지상파로서 고유의 역할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어야 한다.

MBC의 간판 시사프로그램들인 MBC <PD수첩>와 <시사매거진2580> 연성화는 이미 많은 언론학자들로부터 비판받는 부분 중 하나이다. MBC는 과연 시사라고 이름붙인 프로그램을 통해 박근혜 정부 정책에 대해 날카로운 칼을 겨눈 적은 있었나? 또,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논란이 컸던 국정원 간첩조작사건에 대한 진실보도를 하기는 했는가?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외면은 점차 커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역시 MBC 보도에 대한 분노가 큰 상황이다. <시사저널>은 MBC의 영향력·신뢰도 추락의 원인을 ‘정권에 불편한 이슈 피하기’, ‘연성뉴스의 증가’에서 찾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MBC는 이를 개선하려는 의지와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상암시대, MBC가 결별해야할 건 무엇인가

MBC가 상암시대를 맞아 결별해야할 것은 바로 갈등과 배척, 보복인사 등 ‘해임’된 김재철 전 사장체제의 잔재들이다. MBC <PD수첩>의 상징 최승호 PD는 현재 해직된 지 806일 째이다. 최근 법원판결로 복직된 박성제 기자와 이용마 전 노조 홍보국장, 정영하 전 노조위원장, 강지웅 전 노조 사무처장, 이상호 기자 역시 텅빈 사무실로 출근 중이다. 그들에게는 그 어떠한 업무도 주어지지 않고 있다. 이 뿐인가. 정부에 비판적인 기자와 PD들은 한직으로 밀려났다. 이는 MBC의 공정성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근거로 기록되고 있다. MBC 상암시대를 맞아 무엇이 가장 시급한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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