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정국이 사실상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3일 <한겨레>는 다른 신문에 비해 돋보이는 편집을 선보였다. 세월호 특별법 정국에서 정부 여당과 청와대의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3일 <한겨레>는 세월호 정국 교착에 대해 정부 여당을 비판하는 기사를 1, 3, 4, 5면에 배치했다. 1면에 <국회의장 중재 거부·‘파국 불사’ 발언까지…막나가는 여당>을, 3면에 <책임론 차단·진상조사 회피 ‘노골화’…여당 뒤 청와대 있나>와 <106일만에 세월호 입 뗀 박대통령 ‘선장책임론’>을, 4면에 <‘협상 뒤엎는 협상 대표’ 주호영·김재원 강경론 선봉에>를, 5면에 <사찰·진압…당정청, 세월호 유족·시민 ‘공안사범’ 다루듯>와 <‘삼보일배’마저 저지당한 유족들>과 <유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신뢰’> 등을 집중 배치하여 정부 여당의 처신을 비판했다.
1면 기사에서 <한겨레>는 “새누리당 지도부가 꽉 막힌 세월호 정국을 풀어보려는 국회의장의 중재 시도조차 거부하며 ‘청와대 지키기’에 집중하겠다는 속뜻을 드러내고 있다. 정당정치의 본질인 타협과 양보를 ‘꼼수’에 빗대며 국회 파행을 정당화하는 주장도 나온다”라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해당 기사에서 “새누리당이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거나, 특별검사 추천권을 야당이나 유족 쪽에 달라는 요구를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것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칼날이 청와대와 정부 여당으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로 볼 수 있는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 3일자 한겨레 1면 기사
또 <한겨레>는 3면 기사에서 “청와대는 진상조사 과정에서 대통령 책임론이 다시 불거지는 것에 대해 극도로 꺼리는 분위기다. (...) 청와대가 ‘보안’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참사 당일 받았던 보고 내용도 차마 일반에 보여주기 민망한 수준일 정도로 엉터리였다고 한다. 이에 대한 진상규명 조사 결과에 따라 청와대와 정부의 부실 대처가 또 한차례 도마에 오를 수도 있는 것이다. (...) 이는 청와대와 정부가 최근 들어 세월호 책임론을 ‘사고 원인’과 ‘구조 과정’에만 묶어두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라면서 ‘막나가는 여당’의 처신 뒤에 청와대의 의중이 있음을 밝히는 정황들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현재 시민들이 바라보는 세월호 정국은 ‘음모론’과 ‘교통사고’로 양분되어 있다. 정부 여당의 지지자들은 세월호 참사가 정부나 관계기관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단순교통사고’이며 다만 유병언과 그가 소유한 청해진해운과 세월호 선장 및 선언들만을 ‘가해자’로 지목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면서도 정부 당국에 대한 폭넓은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주장하는 유족 대책위의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피해자가 가해자를 조사하는 꼴’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은연 중에 정부 당국을 ‘가해자’의 위치로 올려놓는 자살골을 넣으면서도 희희낙락이다.
▲ 3일자 한겨레 1면 기사
반면 정부 당국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는 측에서는 ‘음모론’이 대세다. 유병언은 청해진 해운의 ‘바지 사장’일뿐 세월호의 실소유주는 국정원이었을 거란 ‘국정원 음모론’도 있고 세월호 참사 자체가 국가의 거대한 기획이라는 극단적인 ‘청와대 음모론’마저 나온다. 이러한 가정들은 극단적이고 비합리적인 부분이 있지만 관계 당국이 진상규명을 철저하게 거부하는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생성되는 측면이 있다.
세월호 참사를 만들어낸 뒤편의 맥락은 치밀하게 기획된 어떤 거대한 음모라기보다는 복지부동·무사안일·무능의 퇴적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형사처벌을 넘어 모든 이해관계 당사자들을 소환하는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이는 우리 사회가 ‘음모론’과 ‘교통사고’라는 두 극단을 넘어서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참사 초기에 지적했듯 이런 과정 없이는 사고 발생 30년 후에도 정부가 ‘가짜 김현희’를 내세워 사고의 진실을 은폐했다고 믿는 KAL기 사건의 일부 유가족들의 모습이 재연될 수밖에 없다.
▲ 3일자 한겨레 4면 기사
세월호 참사의 책임이 온전히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가되는 것은 비합리적인 일이다. 그러나 재산대처에 대한 대통령과 청와대의 사소하지만 한심한 무능마저 공개하기를 꺼리는 그 태도가 거대한 음모론을 양산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대처에 대한 무사안일은 세월호 참사 이후 정국 대처에 대한 복지부동으로 이어진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은 106일만에 세월호 참사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세월호’ 세 글자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2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으로부터 ‘연안여객선 안전관리 혁신대책’을 보고받은 뒤 “지난번(세월호 참사)에도 빨리 갑판 위에 올라가라는 말 한마디만 했으면 많은 인명이 구조될 수 있었는데 그 한마디를 하지 않아 희생이 많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 3일자 한겨레 3면 기사
참사 책임을 유병언이나 청해진 해운 등으로 떠넘기는 듯한 발언에서도 고유명사는 언급하지 않았다. “각 분야 단계단계마다 매뉴얼을 지킬 수 있도록 의식 교육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 회사에서 책임을 다하지 않았을 때는 문을 닫는다, 망한다는 것이 확실하게 돼 있어야 하고, 각 책임자들이 그것을 어겼을 때는 굉장히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해주기 바란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회사’는 여러 개가 있지만 ‘정부’는 하나다. 아무리 책임을 피하려고 한들 온전히 피할 수는 없다. 대국민담화에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이라 말했던 것은 박 대통령 자신이다. <한겨레> 보도는 박 대통령이 사냥꾼을 만난 타조처럼 납작 엎드리고 이를 가리기 위해 여당이 소란을 피는 이 상황이 얼마나 황당한지를 설명해준다.
▲ 3일자 한겨레 5면 기사
국민여론의 향방도 문제지만 이런 태도로 유족들을 설득하고 세월호 정국을 돌파할 수는 없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한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1년을 허비했다. 야당이 또 세월호를 쟁점 삼아 1년여를 끌어버리면 정말로 중요한 대통령 임기 절반을 낭비하게 되는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에서도 세월호 참사 정국에서도 ‘1년을 허비’하게 만드는 건 대통령과 청와대의 바로 이러한 태도다. 전향적으로 유족을 설득하고 그들이 전가의 보도로 내세우는 그 ‘민생’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할 때다. ‘생명’의 문제를 제기한 세월호 참사 앞에서 생명은 쏙 빼놓고 ‘민생’을 말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란 사실을 정부 여당은 알아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