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장, 진짜 회장 나오라”고 했더니 ‘부장’(인사팀장)이 나왔다. 1일 티브로드는 간접고용노동자들의 노숙농성 58일 만에 문을 열었다. 3분이 채 안 됐다. 티브로드 인사팀장은 ‘불법파견·위장도급 근절, 간접고용·비정규직 철폐 진짜사장나와라운동본부’(상임대표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가 전달한 ‘입장’만 받아들었고, 별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민주노총이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1일 ‘진짜사장나와라운동본부’는 민주노총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티브로드와 씨앤앰 문제 해결을 시작으로 가짜사장 전성시대를 끝내겠다”고 밝혔다. 이남신 공동집행위원장(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과제이자 한국사회를 뒤집어엎는 혁명적 과제”라고 말했다.

간접고용의 문제는 이미 임계점에 다다랐다. 한국사회에서 하청, 파견, 용역 등 간접고용은 ‘가장 낮은 곳을 향한 착취’를 대표하는 문제가 됐다. IMF 경제위기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간접고용노동자 문제는 2000년대 초중반 청소용역노동자들은 잇따라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촉발됐다. 삼성전자서비스 ‘애니콜’ 기사, SK브로드밴드 ‘행복기사’도 모두 간접고용노동자다.

진짜사장운동본부에는 민주노총, 시민·사회운동단체들, 종교계, 진보정당들이 참여했다. 이남신 공동집행위원장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선운동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돌파하겠다는 차원에서 ‘케이블 공대위’를 확대개편했다”며 “간접고용 비정규직 철폐 요구는 세월호특별법 제정만큼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최우선 당면과제”라며 운동본부와 출범 취지를 소개했다.

▲ 1일 오전 11시 ‘진짜사장나와라운동본부’는 서울 정동 민주노총 13층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운동본부에는 노동계와 사회운동단체는 비롯 종교계, 진보정당들이 참여했다. (사진=미디어스)

시작은 종합유선방송사업자(케이블SO) 씨앤앰과 티브로드다. 씨앤앰에서는 간접고용노동자 100여 명이 해고상태고, 티브로드 간접고용노동자 300여 명은 파업 일주일 만에 ‘공격적’ 직장폐쇄로 갈 곳을 잃었다. 씨앤앰 간접고용 해고자들은 대주주 사무실이 있는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티브로드 노동자들은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앞에서 50일 넘게 노숙농성 중이다.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 이시우 지부장은 “우리는 원청의 업무스케줄에 따라 십수 년을 일해 왔고, 한때 정규직이었다. 나라가 어렵고 회사가 위기라고 해서 하청으로 내몰렸고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힘들지만 이 투쟁에서 승리해야 간접고용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 김영수 지부장은 “간접고용 폐해는 (기자회견문에 나온 것보다) 더 참혹하다”며 “민주노총 구호처럼 해고는 살인이다. 백 명 넘는 직원들이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한 만큼 복지(를 보장하고), 산업안전 위험을 해소해 달라고 원청과 각 업체에 요구했지만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활동했다는 이유로 112명 해고자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라두식 수석부지회장은 “지난 1년 동안 처절한 투쟁 속에서 느꼈던 것은 현재 노동조합법이 비정규직에게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며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키는 것은 목숨을 걸지 않고 힘든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6월 기준협약을 체결했으나 현장에서 단체협약이 체결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 운동본부는 출범 기자회견 이후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앞에 있는 티브로드 간접고용노동자 농성장을 찾았다. 운동본부는 티브로드에 간접고용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입장을 전달했다. (사진=미디어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조돈문 대표(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간접고용은 비정규직 중에서도 사용자 책임을 기피하고 회피하기 위해 (자본이) 가장 악랄하게 활용하는 방법”이라며 “2006년 기간제 노동자의 기간을 제한했지만 결과는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간접고용 비정규직 확대였다.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의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문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은 “상시고용이 무너졌고 직접고용이 무너졌다. 그 반대말인 간접고용의 문제는 우리가 보고 있는 대로다”라며 “애초 간접고용을 할 이유가 없고,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에 반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에 간접고용 차별 철폐, 고용승계, 원청의 사용자책임 인정을 위한 입법을 촉구했다.

권영숙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노동위원장은 “지난달 19일 전북 장수에서 있었던 케이블노동자의 죽음은 지금 노동자들의 현주소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며 “이 죽음에는 겹겹이 가려진 불법파견·위장하도급 문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파업권 무력화 문제가 겹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속에서 우리는 ‘세월호 같은’ 죽음들을 놓치고 있다”고 말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자본주의 300년 동안 모든 생산과 역사의 주체는 노동자이지만 가진자들과 자본가들은 생산과 역사의 현장과 주체에서 노동자를 빼버렸고, ‘간접고용’은 이 뿌리를 뽑는 마지막 단계”라며 “우리 노동운동이 여기에 눈길을 둔다는 것은 노동운동의 주체도 달라지고, 과녁도 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최선을 다해 힘쓰겠다”고 말했다.

운동본부 공동대표인 장경민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는 “이번 문제를 계기로 사회적 연대, 시민들과 함께 하는 첫발을 내딛게 됐다”며 “미흡하지만 노동계의 어려운 부분에 큰 힘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은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씨앤앰과 티브로드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녹색당 하승수 대표는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최대한 착취해 이윤을 만드는 것이 대세가 된 사회의 뿌리에는 이를 방치한 법제도와 정치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다양성포럼 양귀환 대표는 “문화예술계에도 열악한 조건의 비정규직이 많다”며 “세월호 참사에 참여 중인 영화 연극 만화 문학계와 소통하면서 작은 일이나마 찾아서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티브로드 간접고용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기자회견문

불법파견과 위장도급부터 썩 물렀거라
현대판 노예제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 때려잡으러
현대판 암행어사 ‘진짜사장나와라운동본부’가 나선다

가짜 사장 전성시대

가짜 사장 전성시대다. 진짜 사장은 작은 문 뒤에서 큰 몸통을 숨기려 하지만 이미 들통난지 오래다. 재벌 대자본을 필두로 한 원청사용주들은 범법을 행한 가해자이지만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있다. 심지어 최종심인 대법원 판결마저 짓밟혔다. 대통령과 기획재정부 장관이 소득 주도 성장을 강조하고 임금 격차 해소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뇌까리지만 요지부동이다. 물신이 된 자본 앞에 헌법과 노동법이 조아리고 있는 참담한 형국이다.

76년 무노조경영을 금과옥조처럼 고집해온 삼성그룹은 위헌 집단이다. 대법원 판결을 묵살한 현대그룹은 불법 집단이다. SK그룹과 LG그룹 소유의 통신사에는 불법적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 중소영세업체가 밀집한 지방공단에서도 불법파견과 위장도급이 판치고 있다. 사회 양극화의 결정적인 주범인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기업 규모와 업종, 지역을 망라하고 횡행하고 있다. 진짜 사장이 가짜 사장에게 책임을 떠넘겨 노동자들을 이중착취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우리 사회를 뿌리째 병들게 하는 암적 존재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간 선언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헌법에 보장받고 있는 노동3권을 행사하려면 구속이나 해고를 각오해야 한다. 법원이 시정 판결을 내려도 꿈쩍 않는 원청사용주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죽고 해고되고 구속되고 병들고 다치고 패가망신하고 취업마저도 불랙리스트로 만만찮지만 주저앉을 수 없어 싸웠다. 노동해방은 아득하고 내일의 일용할 양식 걱정이 영혼을 잠식하는 일터에서 노예처럼 일하다 인간답게 살고 싶어 스파르타쿠스처럼 투쟁하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산화해갔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억울하지만 머리 숙이고 지시에 따랐다. 계란으로 바위깨기처럼 무모해보이는 투쟁 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간 선언은 점차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98년 한라중공업에서부터 2014년 삼성전자서비스와 케이블방송 씨앤앰-티브로드에 이르기까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외침은 절규였다. 처절한 투쟁 속에서 이 전근대적인 노예제도의 최대수혜자이자 최종책임자가 드러났다. 진짜 사장인 원청사용주. 이제 투쟁의 표적은 분명해졌다.

세월호 참사와 간접고용 비정규직

세월호 참사는 이미 악질적인 고용형태인 간접고용 비정규직 안에 잠복해 있었다. 일터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중대사망산재나 위험한 사고가 간접고용 비정규직과 직간접적 연관이 있다.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이윤 추구의 하위 수단으로 여기는 그 철학과 가치관이 비정규직 양산과 차별 심화에 그대로 투영돼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여기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그 정점이다. 근로기준법이 중간착취를 금지하고 있는 이유다.

4월 16일 이전과 이후가 달라야 한다면 가장 중요하고 일상적인 시금석 중의 하나가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다. 불법․탈법․편법과 노동인권 침해의 온상인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를 이대로 두고 한국 사회의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석달째 파업 중인 씨앤앰-티브로드 투쟁 승리부터

더 이상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하거나 방치해선 안된다. 케이블방송 씨앤앰-티브로드와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삼성전자서비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인천공항공사, 다산콜센터, 수요양원,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등 전국의 수많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인간 선언으로 떨쳐 일어나고 있다.

세달째 장기파업으로 치달으며 노숙농성투쟁을 하고 있는 케이블방송 씨앤앰-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안 문제부터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 투기자본과 노조탄압으로 악명높은 원청사용주의 노조 말살 획책으로 투쟁이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당사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만 이 투쟁을 맡겨둘 수 없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노동이 건강해져야 전체 사회도 병들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사장나와라운동본부’가 나선다

이제 케이블방송통신 공동대책위원회로부터 출발한 ‘불법파견․위장도급 근절! 진짜사장나와라운동본부’가 나선다.

첫째, ‘진짜사장나와라운동본부’는 진짜 사장에게 정당한 법적, 사회적 책임을 묻고 이행을 요구하며 사회적 공론의 장에서 해결책을 찾는 진짜 해결사가 될 것이다.

둘째, 부당한 노조 탄압으로 고통받고 있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진짜 도우미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케이블방송 씨앤앰-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승리를 위해 힘을 쏟을 것이다.

셋째,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잘 모르는 국민들에게 알리고 널리 전파하는 진짜 소리통이 될 것이다.

넷째,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각종 입법 과제 등 법제도 개선을 통해 한국 사회를 새롭게 뜯어고치는 진짜 수리공 역할을 할 것이다.

‘진짜사장나와라운동본부’의 문턱은 아주 낮다. 한국 사회의 저변을 바꾸어갈 이 의미있는 운동에 공감하고 동의하는 단체나 개인은 모두 함께 할 수 있다. ‘진짜사장나와라운동본부’는 오늘부터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가 온전히 해결되는 그날까지 달려갈 것이다.

2014년 9월 1일
‘진짜사장나와라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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