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전북 장수에서 티브로드 케이블TV를 설치하다 전주에서 떨어져 끝내 사망(21일)한 이아무개씨가 원청 티브로드의 업무지시를 받아 일해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고인은 개인사업자로 자율적으로 일했다는 하도급업체의 변명은 거짓인 셈이다. (▷관련기사: 미디어스 8월25일자 <티브로드 ‘파업대체’ 기사, 설치 작업 중 사망>)

고 이아무개씨는 티브로드가 파업에 대비해 지난 5월 영업·설치 위수탁계약을 맺은 특판점 두리정보통신에서 8월 초부터 일해왔다. 고인은 지난달 19일 케이블TV 설치 중 떨어져 병원에 긴급후송됐고 사흘 뒤인 21일 숨졌다. 사인은 뇌출혈과 두괴골 골절 등이다. 특히 작업 당시에는 비가 내렸으나 하도급업체는 안전모와 안전화를 주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두리정보통신 박아무개 사장은 당시 유가족과 <미디어스>에 “(숨진 이씨는) 건당 수당을 받는 개인사업자로 업무에 자율성이 있었다”며 “(업체에는) 법적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유가족에 따르면, 두리정보통신은 병원비만을 부담하겠다는 입장이고, 원청 티브로드는 유가족에 보상문제 등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인은 티브로드에서 직접 업무지시를 받고 일을 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1일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지부장 이시우)는 “고인이 쓰던 스마트폰에는 TMS라는 티브로드 원청의 업무지시 어플이 깔려있었다”며 “이 사고는 티브로드 원청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고 이아무개씨의 스마트폰에는 티브로드의 업무지시 애플리케이션이 설치돼 있었다. 이씨는 부여된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시스템에 접속해 일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자료=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실)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실에 따르면, 고인은 스마트폰에 티브로드 업무지시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했고, 접속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한 뒤 일을 해왔다. 특히 티브로드는 사망 이후에도 계속 시스템 관련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고인에게 메시지를 보낸 번호(070-8188-0864)는 티브로드 개통센터다.

티브로드지부는 “이번 파업대체 기사의 사망사고는 티브로드의 다단계하도급 구조의 가장 밑바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노동법상 근로자 지위도 보장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서 일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며 “그러나 티브로드 원청과 하청업체는 법률적 책임이 없다는 이유로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지부는 “전국에는 수천에서 수만 명으로 추정되는 티브로드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고인의 사례와 같이 매일 티브로드로부터 직접 업무지시를 받으며 건당 수당의 임금체계로 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부에 따르면, 티브로드와 고객정보를 공유하는 하도급업체는 200여 곳에 이른다. 전북 장수군만 하더라도 28곳이다.

하도급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대부분 4대 보험 등에 가입돼 있지 않다. 티브로드지부는 “고인의 사례에서 보듯 사고가 나도 산재보상도 받지 못한다”며 “건당 수당 임금체계 때문에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주말, 악천후, 밤에도 쉼 없는 노동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부는 이어 “근속이 없기 때문에 수십년을 일해도 임금은 제자리이거나 원청의 정책이 변경되면 기존의 임금마저도 보장될 수 없다”며 “그래서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른바 ‘유목노동’을 해오고 있다. 이들은 건당 수당을 몇천 원이라도 더 주는 업체로 쉽게 이직하며 전국을 떠도는 삶을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인사업자로 업무자율성이 있었다는 하도급업체 설명과 달리, 고인이 티브로드의 업무지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일을 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원청 티브로드의 책임 문제가 나온다. 지부는 “구체적 일일 업무지시, 하청업체 노동자의 스케줄까지 지배개입하는 것은 현대차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판결에서 보듯 직접 사용자로서 티브로드가 책임을 져야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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