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송 겸영 금지 풀어야”

중앙일보 오늘자(18일) 2면 기사제목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17일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정부 규제 중 폐지 및 개선대상을 담은 ‘규제개혁 종합연구’ 결과를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전달했는데 이 내용을 담고 있는 기사다.

▲ 중앙일보 10월18일자 2면.
중앙의 이 기사는 같은 내용을 전한 다른 신문들과 다르다. 중앙은 ‘규제개혁 종합연구’ 결과 가운데 ‘신문 방송 겸영금지 해제’에 기사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한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부분은 ‘추가적으로’ 덧붙였다. 중앙이 전경련 규제개혁 요구를 기사화하는 방법이 재미있다. 너무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전경련 “정부 정책 전반에 대한 규제를 폐지 내지 완화해야”

이번 ‘규제개혁 종합연구’ 결과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정부 정책 전반에 대한 규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경련과 한경연은 총 1664건의 규제를 폐지(516건)하거나 개선(1148건)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 같은 요구는 지난 5월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된 규제 5025건의 3분의 1가량 되는 것이다.

▲ 국민일보 10월18일자 2면.
전경련이 규제개혁안을 내게 된 배경이 뭘까. 대통령 선거를 두 달 정도 앞둔 시점에서 내놓은 ‘거대한 분량의 규제개혁안’이 당장 실현될 것으로 보는 이는 적다. 게다가 이번 규제개혁안에는 상당히 ‘민감한’ 부분도 포함돼 있다. 배경을 짚어야 하는 이유다.

오늘자(18일) 경향신문의 분석이 눈에 띈다. 경향은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규제 철폐에 대한 논의보다는 진보·보수 진영간 논란 거리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논란을 야기함으로써 대선의제로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인 셈이다.

국민일보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재계가 기업 입장만을 내세워 정부를 압박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다. 역시 경향이 제기한 ‘의혹’과 비슷한 맥락이다. 전경련의 규제개혁안이 전반적으로 현 정부 정책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차기 정부를 겨냥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어찌 됐든 분명한 것은 전경련의 이번 규제개혁안이 경제적 논리보다는 ‘정치적 해법’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이다.

▲ 경향신문 10월18일자 2면.
수많은 규제개혁 가운데 신문·방송 겸영 금지 해제에 방점 찍은 중앙

다시 오늘자(18일) 중앙일보로 돌아와 보자. 중앙은 전경련이 정부에 건의한 수많은 규제개혁안 가운데 ‘신문·방송 겸영금지 해제’에 상당한 비중을 뒀다. 제목을 그렇게 뽑더니 기사 리드도 이렇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은 국내 지상파 방송사 중 공영방송사가 너무 많다며 MBC와 KBS-2TV를 민영화해야 한다고 정부에 건의했다.”

중앙의 기사를 좀더 살펴보자.

“한경연은 공영방송의 민영화와 관련, ‘현재 지상파 업계는 4공영(KBS1.2, MBC, EBS) 1 민영(SBS) 체제로 공영방송사가 지나치게 많다’며 ‘두 방송사(MBC.KBS2)의 경우 회사 운영이나 프로그램 편성 등은 사실상 민영방송사여서 전환을 건의했다’고 말했다. 또 방송사와 신문사가 교차해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현행 규제를 완화하고, 대기업도 방송 및 뉴스 보도 부문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방송에 진출하고 싶은 중앙일보 커밍아웃?

사실 △MBC와 KBS2를 민영화해야 한다는 부분과 △신문·방송간 교차 소유 규제를 완화하고 △대기업의 방송·뉴스 분야 진입 허용한다는 부분은 ‘방송판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매거톤급 사안’으로 면밀히 따져봐야 할 문제다. 정치적으로도 민감할 뿐만 아니라 미디어계의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언론시민단체와 방송사 노조 등이 언급된 세 가지 ‘부분’에 대해 방송의 공공성을 약화시키고 상업화를 가속화시킬 거라며 반대하는 것도 그만큼 사안자체가 민감하고 중요하다고 판단해서다. 전경련이 요구는 할 수 있지만 추진 여부는 면밀한 검토가 우선되고 난 이후에 판단할 일이다. 중앙일보처럼 자신들이 '필요한' 부분만 떼어낸 뒤 큼지막한 제목으로 보도할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언론사는 공공적 논의의 장을 형성하는 게 '주업무'라는 점을 상기하자.

중앙이 전경련 규제개혁 요구를 기사화하는 방법이 재미있다고 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총 1664건의 규제를 폐지(516건)하거나 개선(1148건)해줄 것을 요청한 전경련의 ‘규제개혁안’ 가운데 유독(!) 신문·방송간 교차 소유 규제 완화를 주목한 곳은 중앙일보 밖에 없다. 중앙이 방송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은 언론계에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은 너무 노골적인 ‘의사표시’다.

‘공공적 지면’을 자신들의 ‘사업’에 활용하는 것도 일종의 ‘사회적 횡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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