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장수에서 티브로드의 케이블방송을 설치하던 이아무개(1958년생)씨가 전주 작업 중 떨어져 숨졌다. 이씨는 지난 5월부터 전북지역 영업, 설치 등을 맡아온 제3의 하도급업체 두리정보통신 소속으로 건당 수당을 받던 비정규직 노동자다. 티브로드는 하도급업체 노사의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이 결렬되기 직전 이 업체와 위수탁계약을 맺었다. 이씨의 죽음에 해당 업체 사장은 ‘이씨는 개인사업자’라고 주장하며 법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원청 티브로드도 나 몰라라 하는 상황이다.

25일 티브로드, 두리정보통신 박아무개 사장,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 유족의 말을 종합하면 이씨는 지난 19일 전북 장수군 장수읍에 있는 지역에서 전주에 올라 티브로드 케이블TV를 설치하던 중 떨어져 병원에 긴급후송됐고 21일 숨졌다. 사인은 뇌출혈과 두괴골 골절 등이다. 19일 작업 당시에는 비가 내렸다. 사고 당시 이씨는 안전모와 안전화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두리정보통신은 티브로드의 영업·설치 특판점이다. 이 업체 박아무개 사장은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사람을 필요해서 수소문했고 보름 정도 전에 (이씨 등을) 소개받았다”고 말했다. 유족과 동료들에 따르면 이씨 등은 두리정보통신과 서면으로 근로계약 등을 맺지 않았다. 박 사장은 8월 초 이씨 등에게 ‘기본급 없는 건당 수당’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과정에서 박 사장은 경제사정이 어려운 이씨와 동료들에게 350~400여만 원을 미리 줬고, 45일 뒤 실적을 정산한 뒤 급여를 재정산하기로 했다.

두리정보통신은 가입자의 주소 등을 이씨와 동료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지시했다. 그러나 이씨와 동료들은 8월 초중순 연이어 비가 내린 탓에 40여 건밖에 하지 못했고, 비가 조금 잦아든 19일에 작업을 하다 결국 사고가 났다. 건당 수당(수수료) 탓에 일어난 사고인 셈이다. 안전장비도 없었다. 이씨의 아들은 <미디어스>와 만난 자리에서 “비가 오는 날에 전신주에 올라갔지만 안전모조차 없이 일을 했고, 안전화도 없이 운동화를 신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두리정보통신은 그러나 이씨 등과 프리랜서 또는 개인사업자로 건당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 상 사용자 책임과 산재 등 법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박아무개 사장은 유족에게 이씨가 산업재해보험 대상도 4대보험 대상도 아니고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법적 책임이 없다며 병원비 정도만을 도의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전했다. 그는 유족에게 “억지로라도 산재를 만들어 보시려면 그렇게 하라”고까지 말했다.

이를 두고 이씨의 아들은 “아버지는 사업자도 아니다.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주까지 내려가서 일을 하신 것”이라며 “누가 보더라도 일용직으로 일을 한 것인데 두리정보통신 사장은 자기에게는 책임이 없다며 병원비 정도로 이 문제를 끝내려 한다. 티브로드에서는 연락조차 없었다. 원청도 하청도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은 명백히 산재”라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21일) 산재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죽음은 원청에 의한 무리한 대체인력 투입의 결과로 보인다. 티브로드는 올해 초부터 제3의 업체들과 하도급계약을 맺었고, 6월 노동조합 파업 전후로 이 규모를 크게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희망연대노동조합은 원청이 특판점을 통해 무리하게 대체인력을 투입했고, 제대로 된 안전장비 없이 일을 시킨 탓에 사고가 일어났다고 보고 있다. 특히 사고가 일어난 장수 지역은 티브로드 전주센터의 관할지역이다. 5월 말 전주고객센터는 폐업했고, 기술센터는 6월 노동자들은 파업에 들어간지 닷새 만에 직장폐쇄를 결정했다.

희망연대노동조합 장제현 조직국장은 “경기도에서 살던 고인이 일당 5~6만 원을 더 벌기 위해 전북 장수군까지 와서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점에서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고인은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심지어 비가 오는데도 전봇대에 오르는 일을 해야만 했고 사고를 당했다. (이 사건은) 사고의 책임을 고스란히 사고를 당한 노동자가 모두 떠안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원청 티브로드가 책임을 지고 보상논의에 임할 것을 촉구했다.

장제현 국장은 이어 “이번 사고와 비슷한 사고들이 꾸준히 발생해왔고 앞으로도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며 “이제는 케이블방송 업계에 만연한 간접고용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안전에 대해 정부와 원청이 책임있는 자세로 나서야한다”고 말했다. 티브로드 관계자는 “파업대체인력이 아니라 위수탁계약을 맺은 업체에서 일하던 분”이라며 “사고경위를 알아보고 있다”고만 말했다. 두리정보통신 사장도 “파업대체인력이 아니다”며 법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티브로드지부(지부장 이시우) 소속인 티브로드 간접고용노동자들은 지난 7월1일 원청 티브로드에 산업안전보건법 준수 등을 요구하며 티브로드의 광화문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흥국생명 빌딩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앞서 하도급업체들은 5~6월께 지난해보다 낮은 수준의 단체협약안을 제시했고, 노동조합은 6월 중순께 파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협력사협의회는 파업 닷새만에 동시다발로 공격적 직장폐쇄를 결정, 단행했다. 원청 티브로드는 하도급업체 노사관계 문제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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