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대 대통령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언론의 역할과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정치보도가 후보의 동정이나 쟁점에 대한 공방위주로 흐르면서 저널리즘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뉴스의 정치보도가 지나치게 기계적 균형성에 초점을 맞출 때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쟁점과 이슈를 중심으로 정치현안에 접근, 나름대로 지평을 넓혀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올해 대선을 앞두고는 이 같은 움직임 자체가 거의 없다. <미디어스>는 대선을 두 달 정도 남겨둔 시점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나타난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짚어보고자 했다. <편집자주>

제17대 대통령선거가 꼭 두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방송가가 조용하다. 2002년의 경우 5월부터 ‘국민참여경선제’를 다룬 < MBC스페셜>에 대해 방송위원회가 주의 결정을 내리고 한나라당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등 일찌감치 논란이 일었던 것과 비교하면 그렇다.

다른 한편에서 방송가는 시끄럽다. KBS는 수신료 인상을 위해, MBC는 중간광고 도입을 위해 연일 토론회와 기자회견, 1인시위와 집회 등을 이어가며 여론의 관심을 끌어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SBS 역시 복수 미디어렙 도입을 위한 물밑 작업에 분주하다.

대선을 앞둔 방송가의 양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직 후보도 확정되지 않았고 이렇다 할 이슈가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언론으로서 검증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PD수첩>, 3월 ‘이명박리포트’ 방송 후 ‘침묵’…KBS 3건, SBS는 없어

▲ 방송3사 대표적 시사교양 프로그램. 왼쪽부터 KBS <추적60분> MBC < PD수첩> SBS <그것이알고싶다>.
역대 선거 때마다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에 대해서는 정치적 중립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2002년 < MBC스페셜>이 그랬고, 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는 MBC < PD수첩>이 ‘친일파는 살아있다’ 시리즈에서 한나라당 최연희, 김용균 의원을 언급한 것을 이유로 “특정한 입후보 예정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공정성과 형평성을 위반했다”며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의 징계를 받기도 했다.

이들 프로그램에 대한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시비’는 역설적으로 여론의 물길을 돌려놓는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2004년, “선거 90일전부터 보도 토론 방송을 제외한 프로그램에서 선거 입후보자의 출연을 제한한다”는 선거방송심의규정에서 ‘보도’의 범위를 기자 뿐 아니라 PD의 제작물까지 확대하면서 PD들의 참여폭은 더 넓어졌다.

그러나 2007년 현재까지 지상파에서 방송된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을 되짚어보면 오히려 그 폭이 좁아졌음을 알 수 있다.

▲ 대선을 다룬 방송3사 시사교양 프로그램(2007.5.1 - 현재)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이 시작된 지난 5월부터 최근까지 KBS, MBC, SBS 3사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가운데 대선을 주제로 한 것은 KBS <취재파일 4321>에서 2건, <시사기획 쌈>에서 1건,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3건이 전부였다. 이슈나 쟁점을 분석했다기 보다는 스케치성 프로그램이 대부분이었다. (토론 프로그램과 데일리 시사 프로그램인 KBS2TV <생방송 시사투나잇>은 제외했다.)

그나마 모두 기자들이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PD들이 제작한 시사교양 프로그램 가운데서는 MBC의 경우 지난 3월20일 MBC < PD수첩> ‘검증인가 음해인가-이명박리포트 논란’이 마지막이었다.

MBC 시사교양국 한 중견PD는 “올해 대선이 다른 대선과 비교해 정치 아이템을 상대적으로 작게 다루는 것은 아니다”면서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2002년과 2004년에는 몇몇 프로그램을 통해서 논란을 불러일으켜 주목을 받은 측면이 있는데 올해는 그런 게 없다는 게 차이점”이라고 분석했다.

“시청률도 안나오고, 연일 쳐들어오고, 안한다고 뭐라 하는 사람도 없고…”

이 같은 현상의 첫 번째 원인으로는 올해 대선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을 든다. ‘보수 대 개혁’ ‘지역구도’ ‘반미’ ‘재벌개혁’ 등 이번 대선을 규정할 이렇다 할 쟁점이 없는 데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독주’하면서 갈등 구도 또한 잡히지 않는 것이다.

MBC 시사교양국의 다른 PD는 “지금은 2002년과는 상황이 다르다. 그때야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민주주의의 현장을 보여주겠다는 열의 같은 게 있었지만 지난 5년 동안 실망하고 좌절하고 배반당하면서 사람들이 자포자기하는 상황이 됐다. 그 결과가 통합신당 경선참여율로 나타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 동아일보 2002년 5월7일 5면 기사.
정치권의 ‘압박’이 효과를 거둔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지난 3월에만 해도 < PD수첩>이 ‘이명박 리포트’를 다루자 한나라당은 즉각 MBC를 항의방문하고 이명박 후보 지지자들은 MBC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제 한나라당은 TV 토론 프로그램도 ‘골라서’ 출연하고 있다.

이 PD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국민검증위원회에서조차 제대로 검증이 안되고 있다고 했다. 대선후보 검증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훨씬 더 잘 만들어야 하는데 시청률이 잘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고, 완성도를 위해선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방송 나가고 나면 연일 여당, 야당 쳐들어오고, 언론중재위 불려가고, 안한다고 위에서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정파적’이란 오해 받기보다 재원마련에 더 관심”

정치적 환경과 정치권의 ‘압박’이 외부 요인이라면 방송사 내부에선 당면한 생존의 위기를 ‘침묵’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제작비는 점점 올라가는데 광고료를 올리거나 중간광고를 도입하는 문제는 건건이 벽에 부닥치면서 지상파 종사자들 스스로가 시장논리를 체화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 PD는 이런 상황을 ‘자발적 민영화’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서중 대표(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상파 종사자들의 관심이 재원마련에 가있는 상황에서, 정파적이라는 오해까지 받으면서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이 불리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을 것”이라면서 “97년이나 2002년에는 시장논리를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당시에 싸웠던 제작진들이 치이고 깨진 경험만 남아 적극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KBS의 경우 정연주 사장에 대한 실망이 프로그램으로 반영된 결과가 나타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전국언론노조 이강택 민주언론실천위원장(KBS PD)은 “정연주 사장 취임 초기의 개혁 시도가 한계에 봉착하고 인사 돌려막기, 팀제 후퇴 등 에러가 발생하면서 정체된 모습을 보였다”며 “그 과정에서 믿을 사람도 없고 우리에게 구조를 변화시킬 힘이 있냐는 식의 체념이 생기면서 퇴행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 사장 취임 초 신설된 프로그램 <한국사회를 말한다> <인물현대사> <미디어포커스> 등과 최근 신설된 <이영돈 PD의 소비자고발> <단박인터뷰> 등만 비교해도 이 같은 흐름을 알 수 있다.

이 위원장은 “KBS 2TV에서 시작된 위기가 최근 1TV로 확산되면서 시사교양 프로그램까지도 광고를 의식하게 됐다”며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치 아이템은 누구의 일도 아닌, 노바디스 비즈니스가 된 것이다. 하라는 사람도 없고 하려고 해도 할만한 ‘기지(프로그램)’도 없다. 사회적 담론이라도 치열하면 해볼 텐데 그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TV 수신료 인상안을 비롯해 연말로 예정돼 있는 지상파 방송사 재허가 등 주요 정책결정을 앞두고 정치권의 눈 밖에 나지 않겠다는 각 사별 이해관계도 걸려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중립의 반대는 편파 아니다”…“공세적 공약검증 필요”

민언련 김서중 대표는 “방송은 중립적이어야 하고 중립의 반대는 편파라는 잘못된 이데올로기가 최근 몇 년 새 우리 사회에 강력하게 자리 잡으면서 PD들의 경우 대선 관련 프로그램을 하면 튀는 걸로 인식돼 쟁점을 다루기 어려워진 게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김 대표는 “민주 대 반민주, 독재 대 반독재 식의 단순한 구도가 아니기 때문에 정치 이슈를 다루기 어렵다는 점은 이해한다”며 “하지만 PD들이 어려운데 일반인들은 이 상황을 더 해석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며 적극적인 프로그램 생산을 주문했다.

전국언론노조 이강택 민주언론실천위원장은 개인의 삶을 조정하는 정치세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에게 절실한 문제를 어떻게 하면 실현 가능한가를 언론에서 짚어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누가 그 열망을 현실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연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일자리, 교육, 주택 문제는 모든 사람의 열망이다. 지금 사람들은 그 열망을 이명박 후보에게 투여하고 있다. 논리적으로 정당하지도 않고 실현가능성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공세적인 공약검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MBC 최우철 시사교양국장은 “가능성은 항상 열어두고 있고 지금은 이슈를 모색하는 시기”라고 했다. KBS 기자들은 검증팀을 꾸렸다고도 한다. 이제 두 달 남은 기간 동안 지상파 종사자들이 어떤 프로그램으로 12월19일 우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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