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세월호특별법 합의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국은 사실상 멈춰섰다. 특별법 처리에 합의한 양당은 숨을 고르면서도 이후 국면을 대비하기 위한 신경전에 들어간 모양새다. 방탄국회에 대한 책임에 대한 비난을 주고받기도 하고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의 괴이한 행위에 대해 입을 모아 비판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국지적인 전투(?)가 벌어지고는 있지만 결국 또 큰 한 판은 세월호특별법을 둘러싼 국면일 수밖에 없다. 이후 시작될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양측의 ‘공학’이 빛나고 있다. 새누리당은 보수언론과 공조해 새정치민주연합과 유가족들에 대한 ‘갈라치기’에 나선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화살을 돌리며 지지층 단속에 들어간 분위기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2일 오후 당 의원 연찬회가 열린 충남 천안시 우정공무원교육원 앞에서 루게릭병 환자 돕기 캠페인 'ALS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참여해 얼음물을 뒤집어 쓰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무성 대표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등을 지목하면서 "박지원 의원이 당 내 강경파를 설득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21일 최고위원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박영선 위원장께서 무책임한 당내 강경파 비판을 받으면서 유가족들을 설득하시는 모습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면서 “야당의 결단을 다시 한 번 촉구 드린다”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서 이완구 원내대표 역시 “박영선 원내대표의 ‘힘들어도 재협상은 없다’는 말씀에 정치인의 한사람으로 평가한다”고 발언했다. 여당 정치인이 야당 정치인에 덕담을 건네는 것은 오랜만의 일이다. 어쨌든 여야가 서로 합의한 사안에 대한 것으로서는 나쁜 태도라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기도 하다.

▲ 조선일보 22일자 사설.

이 발언들이 명백한 ‘정략적’ 성격을 갖게 된 것은 22일 일부 보수언론들이 야권을 이리 저리 나눠 잘못을 따지면서부터다. <조선일보>는 22일 <세월호 유족 도와준다며 오히려 망치는 사람들>이란 제목의 사설을 지면에 게재했다. 말인 즉슨 세월호 유가족 측에 결합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 아니 ‘직업 시위꾼’들이 제2의 광우병 사태를 꿈꾸며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정략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그런 얘기다.

▲ 동아일보 22일자 사설

비슷한 지적을 <동아일보>도 내놓고 있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 <새정연 강경파와 세월호 유족, 국민의 눈을 돌아보라>는 제목의 사설을 지면에 게재했다. “이번에 유가족을 붙잡은 강경좌파 집단이 원하는 것이 과연 유가족의 슬픔을 덜어주는 것인지, 사회혼란을 일으키기 위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라는 대목이 눈에 박힌다. 새정치민주연합 내외의 소수 강경파들이 유가족을 이용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오늘의 이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주장이다.

새누리당 지도부의 발언과 보수언론들의 익숙한 주장을 한데 모아보면 이들이 취하는 태도의 얼개가 드러난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비대위원장의 협상안을 지지하는 야권 지지층과 이에 반대하는 지지층을 둘로 나눠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이들이 이렇게 나오면 새정치민주연합 내외에서 또 전형적인 형태의 강-온논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논쟁은 이에 대한 여론을 다시 재생산하고, 여론이 다시 논쟁을 강화하는 악순환이다. 정신을 차려보면 강경파와 온건파가 영원히 대립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모습이 온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된다.

가장 어려운 것은 유가족들의 분열이다. 현재로서는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가 대표성을 갖고 움직이고 있어서 이런 문제가 당장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21일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일반인 희생자 대표단을 만나 여야 협상안에 대한 지지의사를 확인했다고 밝히면서 분위기는 묘해지고 있다. 새누리당의 이와 같은 행보와 보수언론의 ‘장난’이 반복되면 그렇잖아도 격앙돼있는 유가족들 사이에 어떤 여론의 변화가 일어날 지 장담할 수 없게 된다.

▲ 세월호 특별법 재합의안 처리 무산 위기에 몰린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연합뉴스)

새정치민주연합도 새누리당의 이런 ‘수작’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은 22일 원내대책회의 자리에서 “대통령이 만나주면 단식을 중단하겠다는 유민아빠의 간절함에 이제 생명을 살린다는 생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답할 때”라고 강조했다. 같은 자리에서 우윤근 정책위의장도 “박근혜 대통령께서 진상규명에 유족 여러분의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고 공언했고 김무성 대표께서는 야당에 특검추천권을 주겠다고 제안했는데 약속과 제안이 지켜지고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후 새정치민주연합 한정애 대변인과 유은혜 원내대변인 역시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의 역할을 강조했다. 포커스를 정확히 대통령에게 맞추면서 그간 박영선 비대위원장을 겨냥해 쏟아진 지지층 내의 비판 여론을 뒤집어보려는 의도로 이해된다.

물론 그 ‘정략’의 방향을 따지면 새정치민주연합의 그것은 새누리당과 비교해 방어적인 성격으로 해석되는 것도 사실이다. ‘재재협상’은 불가능하고 지지층은 분열됐다. 의원총회를 열 수도 없고 안 열 수도 없다. 때문에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하기 위한 시간이라도 벌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책임을 말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 셈이다. 명분도 충분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입장이 어떻든 세월호 참사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 여당의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장하나 의원이 ‘원수’라는 중의적 표현을 사용한 것도 이러한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닥쳐올 어려운 결단의 대비가 이걸로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고민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에 더해 지금보다 훨씬 더 정치적인 액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지금과 같은 국면이 이어질 경우 구도는 박근혜 대통령 및 정부여당과 유가족 사이에서 짜여질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은 적당히 야권 지지층들을 이간질하다가 한 발 옆으로 슬쩍 빠져나가고 보수언론과 여당 지지자들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 대한 흑색선전을 수면 아래서 다양한 경로로 반복할 것이다.

그렇잖아도 유가족들은 3자협의체를 요구하고 있고 오늘 일부 보수언론은 이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보도했다. 말이 3자협의체지 그간 여당과의 협상을 야당을 통해 사실상 대리한 것처럼 비춰져 온 유가족들이 직접적으로 협상의 전면에 나서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의 처지에서 이런 상황을 맞게 되면 존재감이 하나도 없는 처지로 전락한다. 130석의 제1야당이 무력한 모습만 반복해서 보이는 건 중간층은 물론이고 전통적 지지층까지 회의를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 18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5주기 추도식에 오랜만에 김한길,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나란히 참석해 반가운 얼굴을 드러냈다. (연합뉴스)

따라서 새정치민주연합은 빠른 판단을 내리고 전열을 정비해야 한다. 유가족들에 대한 설득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되면 의원총회를 열어 새로운 방침을 정하고 전격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신의 한 수’가 계속 반복돼도 전체 정세와 잘못 조응하면 전략이 실패하고 만다는 사실을 패배로 점철된 지난 네 번의 선거를 통해 깨달았어야 한다. 움직일 때는 바람처럼, 지킬 때는 산처럼, 빼앗을 때는 불처럼 하는 정치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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