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각하 많이 힘드시죠? 힘드시겠지만 저희도 정말 힘듭니다. 아이들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게 됐고 이제는 그 아버지의 죽음을 저희는 바라봐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가족을 떠나보내고 살아남은 자의 그 아픔이 어떤 건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거 다 내려놓으시고요. 제발 사람의 마음으로, 인정으로, 양심으로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바라봐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연극배우 오민애 씨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박 대통령에게 말했다. ‘사람의 마음’으로, ‘인정’으로, ‘양심’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바라봐 달라고 호소했다. 세월호 참사 발생 128일째, 대통령이 ‘대통령이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청와대 앞’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 이행을 촉구하는 각계 대표 170인 기자회견>의 한 장면이다.
노동계, 문화예술계, 법조계, 언론계, 종교계, 학계까지 각계각층 인사 170인은 “박근혜 대통령은 김영오 씨를 기어이 죽일 것인가”라며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제대로 된 특별법이란 세월호 유가족들이 철저한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해 일관되게 요구해 온 ‘진상조사위에 수사권, 기소권을 포함시키는’ 특별법이다.
민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권영국 변호사는 “진상규명을 왜 해야 되느냐는 물음에 따라오는 말이 있다. 재발방지와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기 두 가지”라며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무엇이 안전을 해체하고 있는지, 대한민국의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사고가 났을 때 장관들이나 청장들이 제대로 대응을 못했다. 하지만 그들을 지휘하는 사람은 대통령”이라며 “대통령은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게 국민들이 가지는 의심이다. 본인을 위해서도 나서서 특별법 제정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주교를 대표해 나온 나승구 신부는 “128일 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해 구조를 기다릴 때 모든 이들이 서로에게 책임을 이리저리 넘기느라 그 사이에 아이들이 생명을 잃었다. 39일째 단식하면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유민아빠 앞에서도 여전히 책임전가가 일어난다”고 꼬집었다.
나승구 신부는 유가족 의사를 왜곡하거나 힐난하는 이들을 향해서도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애처로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들이 사는 이 세상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닌가”라고 당부했다.
사회 각계 인사 170인은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세월호 대참사로 304명이 희생됐다. 그들이 왜, 어떻게 희생되었는지 명백히 밝혀야 한다. 이는 희생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며 “이 간명한 요구를 위해 유가족과 국민들은 철저히 싸워왔지만 이 저철한 외침을 정치권도 청와대도 외면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들은 “세월호 대참사의 최종적인 책임은 자기에게 있고, 유족들을 만나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은 어디에 있는가”라며 “이제 국가운영의 최고 책임자가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제대로 된 특별법을 결단해 김영오 씨의 목숨을 구하고 희생자의 원혼을 달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국민과 더불어 대대적인 저항행동에 돌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각 종교계를 대표해 기독교 정태효 목사, 불교 이도흠 교수, 천주교 나승구 신부 세 명은 <대통령께 드리는 각계 170인 선언>을 전달하기 위해 청와대 쪽으로 이동하려 했으나 경찰에 의해 저지됐다. 결국 기자회견 참가자들과 경찰은 안산 단원고 고 박성호 학생의 이모 정현숙 수녀와 정태효 목사 두 명이 전달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한편, 각계 170인 선언 기자회견이 끝난 이후 청운동 동사무소 맞은편에서는 나라사랑실천운동·남침용땅굴을찾은사람들·납북자가족모임·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이 주최한 맞불 기자회견이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 이행을 요구하는 각계 대표 170인 명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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