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상파 방송사에 대해서는 방송광고를 유형별로 규제하고, 중간광고도 허용하지 않는다. tvN 같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와 비교하면 분명 ‘비대칭 규제’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가 지상파 방송광고 규제완화를 추진 중이다. 비지상파와 동일하게 광고총량제(유형별 규제 폐지)를 도입하고, 중간광고 허용까지 검토하겠다는 게 방통위 입장이다.
시청자는 비지상파 PP와 플랫폼의 광고에 익숙하다. 광고총량제와 중간광고에 단련이 됐다. 이미 “결과는 60초 후에 발표합니다, 멀리 가지 마세요”라는 멘트에도 적응했다. 지상파보다 오래 걸리는 비지상파 채널의 프로그램 광고를 큰 불만 없이 견딘다. <무한도전>에 중간광고가 나온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어자피 볼 건 본다. 콘텐츠만 좋다면 채널을 돌리지 않는다.
방통위의 입장 발표 직후, 지상파는 여론전에 들어갔다. 목적은 분명하다. 지상파에 광고총량제가 도입되고, 중간광고까지 허용되면 최소 1000억 원에서 최대 5000억 원 규모의 광고비가 지상파에 추가로 넘어간다. 파이는 그대로거나 줄어드는데 지상파 몫이 늘면 종합편성채널과 CJ 같은 PP의 몫은 그만큼 줄어든다. 신문, 케이블SO, IPTV사업자에도 영향이 있을 게 빤하다.
지상파는 분명 위기에 다다랐다. 온라인·모바일 광고가 지상파 광고매출을 넘어섰고, 방송은 사양산업이 됐다.방송시장에서 N분의 1로 전락하고 있는 지상파는 이 싸움에서 이겨야 몇 년이라도 위기를 지연할 수 있다. 정치권 로비가 결정적이겠지만 최소한 명분이 필요하다. 국민 50% 이상이 ‘비대칭 규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응답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라도 있어야 한다.
지상파는 비빌 언덕을 쌓고 있다. 올해 500억 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된다는 MBC는 뉴스와 시사교양프로그램까지 동원해 규제완화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명분은 콘텐츠 육성과 한류 재점화다. 18일 MBC는 메인뉴스 <뉴스데스크>를 통해 “광고총량제 효과는 한 달 7억 미만”이라며 이것만으로는 콘텐츠 육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지상파에 중간광고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시사매거진 2580>은 방송광고 규제 때문에 ‘한류 기지’ 지상파가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MBC는 “지상파TV 한류 콘텐츠의 제작 기반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부쩍 높아지고 있다”며 비대칭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MBC는 중국과 홍콩에서 분 한류는 ‘지상파 콘텐츠의 힘이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제작비조차 대기 힘든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MBC에 따르면 <왔다 장보리> 제작비는 110억 원인데 광고·협찬 매출은 94억5천만 원이다. 51편짜리 <기황후> 제작비는 196억2천만 원이지만 광고·협찬 매출은 196억1천만 원이다. “콘텐츠 성장에 한계가 왔고, 제작 자체가 어려운 상황”인데 “배우 출연료와 작가 집필료가 오른 것도 원인이지만 지상파에 불리한 방송광고 규제가 근본 원인”이라고 게 MBC 주장이다.
제작비는 콘텐츠 성장의 핵심이다. 물론 MBC 주장대로 제작기반이 흔들리면 한류콘텐츠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MBC가 19일 밤 내보낸 <100분 토론> ‘광고 총량제, 쟁점은?’편에 출연한 이시훈 계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광고총량제와 중간광고는 패키지”라며 두 가지 모두 규제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간광고를 “매체혼잡현상을 풀어주는 장치”로 표현했다.
위험한 주장이다. 채널이 많아진 것은 비대칭 규제 때문이 아닐뿐더러 ‘잘할 놈을 일단 챙겨주자’는 것은 낮춰야 할 방송산업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이는 꼴이다. 방통위의 규제완화가 잘못된 점은 가장 약한 매체인 중소PP들이 피해자가 된다는 점이다. 보수신문의 종합편성채널과 CJ는 앉아서 당하지 않는다. 중소PP의 광고물량을 지상파에 밀어주는 결과만 예상된다.
지상파는 ‘N분의 1’로 추락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드라마 예능 스포츠 관련 PP를 만들었고, 이곳에 자사 프로그램을 우선 공급해왔다. 실제 지상파 계열PP들은 시청률 조사에서 130여개 채널 중 10% 안팎에 있다. 플랫폼사업자가 시장에서 힘을 얻자 콘텐츠 사용료 협상을 제기해 가입자 1인당 280원을 받는 데 성공했다. N스크린 시대에 맞춰 ‘푹(PooQ)’도 만들었다.
지상파는 그 동안 덩치를 무제한급으로 키웠고, 이제 체급을 유지하려고 규제완화를 원하고 있다.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에 따르면, 1994년 대비 2012년 채널수는 13배, 방송광고 시장은 3배 규모다. 지상파와 그 계열PP의 방송광고 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77% 안팎을 기록 중이다. 지상파 안방의 점유율은 떨어졌지만 지상파 전체의 몸집이 늘어난 것만은 분명하다.
지상파는 실패했다. 본방사수 시대가 끝나가는데도 지상파는 전체 송출시간과 인기있는 예능프로그램의 방송시간을 늘렸다(유재석은 <무한도전> 방송시간 연장에 ‘공식’ 반대했다). 광고 덤핑영업은 중소PP의 문제만은 아니다. 더구나 CJ E&M과 종편의 성장으로 지상파 위기는 심해졌다(SBS 드라마<괜찮아 사랑이야>(극본 노희경, 주연 조인성·공효진) 제작사는 CJ다).
황근 교수는 “국내에서 경쟁력 있는 콘텐츠가 한류로 이어진다”며 MBC 주장을 반박했다. 내년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 해외자본이 직접 한류콘텐츠를 만들 길이 열린다. 한류 재점화와 콘텐츠 역량 확보는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 지상파가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진짜 이유는 미디어 환경 급변에 적응 못한 지상파가 다른 사업자의 몫을 뺐는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본질은 따로 있다. 매스미디어의 몰락을 막을 길은 저널리즘뿐이다. 지금 지상파의 위기는 저널리즘이 망가지면서 그 속도가 빨라졌다. 황근 교수 설명대로 전체 프로그램 중 광고가 가장 많이 붙는 곳은 ‘기업이 무서워하는’ 메인뉴스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지상파 메인뉴스는 최근 몇 년 동안 연성화됐다. ‘비판적’ 시청자들은 지상파 대신 JTBC 손석희 뉴스와 ‘대안언론’에 주목한다.
지상파가 뉴스와 시사교양프로그램으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떼쓰기 보도는 목표 달성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자칭 ‘공영방송’ MBC는 보도프로그램을 자사 선전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자칭 ‘무료방송’ MBC는 누리집에서 교양프로그램을 다시 보려는 시민에게 1분30초짜리 광고부터 먼저 보여준다. KBS는 누리집 VOD에 중간광고까지 붙이는 것을 검토했다.
미국 시민들이 공영방송 PBS에 기부금을 내는 이유는 PBS를 ‘저널리즘의 마지막 보루’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사는 종합편성채널보다 더 엄격한 감시를 받는다. 그리고 경쟁이 심해진 만큼 시민들은 지상파의 저널리즘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문제는 지상파에 대한 불신이다. 저널리즘을 팽개치고 ‘가장 큰 유료방송’을 목표로 잡은 것이 위기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