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의 '위기'다. 특히, 박영선 비대위원장의 리더십이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는 얘기가 당 안팎에 공공연하다. 나름대로 위험을 감수하고 여당과 협상을 진행했으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두 번이나 이를 거부한 것은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비판은 심지어 여당 인사로부터도 나오고 있다.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이 “나도 원내대표를 두 번이나 해봤지만 세상에 이런 협상을 본 적이 없다”고 발언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관계자들의 입장은 약간 다르다. 박영선 비대위원장 측 관계자는 유가족 측과 나름대로 소통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박영선 비대위원장과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협상하는 자리에도 유가족 측과 소통하기 위한 쪽지가 들락날락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유가족 측과 의견 조율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해 이 관계자는 “서로 사인이 안 맞았다”라고 말한다. ‘사고’에 가깝단 얘기다.

▲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20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조정회의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트위터에 올린 글은 이러한 ‘사고’의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문재인 의원은 “유가족들은 이미 수사권과 기소권을 양보했다. 대신 특검이라도 괜찮은 분이 임명될 수 있게 하자는 상식적인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썼다가 “수사권과 기소권의 방식에서 제도적 특검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양보를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자신의 표현을 정정했다. 이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유가족들과 소통해오고 있었다는 의미이며 유가족들이 지나친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는 주장이기도 하다.

정확히 하면 문재인 의원의 트윗은 일부만 맞는 이야기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는 200가구에 가까운 가족들과 임원으로 구성된 조직이다. 이들 전체의 입장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으로 한 번도 변경된 적이 없다. 하지만 협상의 실무 등을 담당하고 있는 임원진이 여야와의 소통 과정에서 논의를 검토할 수 있을만한 대안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이 수 차례에 걸쳐 시사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해 “신뢰를 쌓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대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발언하고 가족대책위 임원들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찾아가 특검후보추천위의 여당 측 위원 2명을 야당이 추천하도록 하거나 진상조사위가 추천하도록 해달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SNS 등을 통해 일종의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박영선 비대위원장이 신계륜, 김재윤, 신학용 의원의 검찰 수사를 막기 위해 일종의 ‘딜’을 한 것 아니냐는 거다. 구체적 증거가 제시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대로 신뢰하긴 어렵다. 박영선 비대위원장의 두 차례에 걸친 ‘실책’이 그만큼 이해할 수 없는 성격이라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새정치민주연합 내 분위기를 점검해보면 일단은 유가족들을 최대한 설득해보자는 의견이 다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유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 의원들을 6개조로 나눠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하지만 유가족들이 끝내 설득 되지 않는 경우에 대해서는 의견이 팽팽히 나뉜다. 한쪽에서는 유가족의 의견과는 관계없이 합의안을 추인해서 책임있는 정치세력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무래도 합의안을 파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당 내 중진인 박지원 의원은 20일 트위터에 “오늘 밤 세월호 가족 총회에서 합의안이 부결되었다면 우리당도 인준 부결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썼다. 일부 중진 의원들도 이와 다르지 않은 의견을 피력한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이 여당과의 합의안을 파기하는 순간 정국은 그야말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의 입장은 ‘재재협상’은 없다는 것이다. 완고하다. “정당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 표현까지 등장한 것은 새누리당 지도부가 이 합의안이 그야말로 ‘마지노선’이라는 인식을 실제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 인식의 한 축에는 청와대의 의중 또한 포함돼있을 것이다.

▲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가 2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족들의 반대 결정으로 불발 위기에 내몰린 세월호특별법 재합의안과 관련, 새정치민주연합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때문에 이후의 과정은 그야말로 고난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 당장 8월 임시국회는 공전을 거듭할 것이고 국정감사를 진행해야 할 정기국회도 ‘파토’다.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서는 장외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연말 예산안 정국까지 별다른 계기가 없는 상황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교황 방한에 힘입어 50%를 넘겼다고 하니 새정치민주연합이 장외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보수언론과 새누리당이 함께 ‘언론플레이’를 벌이면 단기간에 손해를 보는 것은 역시 새정치민주연합이다.

박영선 비대위원장의 고민은 클 수밖에 없다. 평상시 같으면야 당장이라도 사퇴하면 그만이지만 당장 당 내에 다른 대안이 없다. 비대위원장을 맡은 것도 당 내에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7·30 재보궐선거로 정통성 있는 지도부가 모두 사퇴해버린 이후다. 조기 전당대회를 진행하기엔 이번 합의안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당 내 갈등이 불거질 게 너무나 명백하다. 일각에서 박영선 비대위원장이 사퇴하고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해 다시 협상을 하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을 내놓고 있지만 당 내에서 이러한 의견이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선거만 끝나면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평가가 쏟아진다. ‘장외투쟁에 몰두하는 강경파들 때문에 중간파를 놓친 것이 패인’이라는 요지의 평가는 단골메뉴다. 이 때문에 선거 이후의 당 내 갈등은 늘 강온대립의 노선 싸움으로 해석돼 언론에 보도된다. 7·30 재보궐선거로 타격을 입은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서는 지금 시기에 다시 이런 평가를 받는 게 얼마나 큰 피해가 될 것인지 걱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이 세월호 유가족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끝내 그들을 외면하는 선택을 할 경우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정치적 피해로 돌아올 가능성을 생각해봐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의원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열어준 길을 우리가 망쳤다”며 자책했다. 그의 특정한 성향이 상당 부분 반영된 발언으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정치’라는 틀에서 보면 틀린 얘기도 아니다.

▲ 세월호특별법제정 촉구 단식농성 39일째인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가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 단식농성장에서 전날 청와대 앞에서 경찰과 충돌로 인해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정치에서의 ‘합리’는 강경과 온건 사이의 중간을 끊임없이 택하는 행위가 아니다. 당의 역량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정세에 맞는 기획을 실행하는 게 합리적인 정치다. 강경해야 할 때 온건하고, 온건해야 할 때 강경하면 반드시 피해를 보게 된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이 감당해야 할 제1의 과제는 물론 유가족들을 설득시키는 것이겠지만, 끝내 그것에 실패했을 때에도 반드시 유가족들의 편에 남아있어야만 한다. 130석의 제1야당이 그것조차 하지 못하면 다시 무엇으로 ‘야당의 정치’를 유권자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하겠는가? 차라리 경제라도 살려주는 새누리당을 눈 딱 감고 찍지, 왜 새정치민주연합을 지지하겠는가? 2007년과 2012년의 패배가 사실 그런 것에서 온 것은 아니었는지 다시 한 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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