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새누리당-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재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20일 저녁 유족 총회가 명확한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세월호 특별법 정국에서 새정치민주연합과 유족은 완전히 갈라섰다. 유족 총회의 투표 결과는 이전에 비해서도 훨씬 확고한 ‘원안 사수’의 의지를 보였다. 유족들이 새누리당은 물론 새정치민주연합까지 믿을 수 없게 된 상황의 반영이었다.

21일 언론들이 이 상황을 반영한 방식은 엇갈렸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가장 적극적으로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도했다. 21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의 제목은 <‘세월호’에 멈춰선 한국 정치>였고, 같은 날 <중앙일보> 1면 기사의 제목은 <의회정치 무력화됐다>였다. <중앙일보>는 전날 사설에 이어 유족들의 태도를 가장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입장에 섰다.
▲ 21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조선일보> 역시 21일자 사설에서 <중앙일보>의 태도에 일부 동조했다. 그러나 <중앙일보>에 비해선 다소 조심스러웠다. 이는 <조선일보> 1면 기사의 기조와도 비슷했다. 1면 기사는 정치권이 유족들과 충분히 소통하지 않았음을 비판하면서도, 유족들의 태도도 일부 문제 삼았다.
<조선일보>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인내와 절제도 필요하다>란 제목의 이날 사설에서 “가족을 잃은 비통함에 몸부림치는 유가족들의 심정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동시에 국민 모두가 이 비극이 '안전한 나라'라는 미래로 승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진상 조사가 정쟁(政爭)과 진영 싸움의 대상이 되어버리거나 한풀이로 받아들여지게 되면 이런 국민적 이해와 기대는 머지않아 실망과 무관심(無關心)으로 바뀌고 말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 마음은 떠나고 유족과 일부 세력만 외롭게 남게 되는 상황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하지만 유족들의 인내와 절제심도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 21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어조로 볼 때는 ‘비판’이라기 보단 ‘제언’이었다. 그러나 내용으로 본다면 ‘협박’에 가까웠다. <조선일보> 사설은 유족들의 태도가 고립을 가져올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이날 별도의 신문 사설을 실지는 않았지만 1면 기사에 이어 3면 기사 제목을 <유가족 “전쟁인데, 적을 이해해주면서 하나”>로 가져가면서 유족들의 ‘과격함’을 드러내려 노력하는 지면편집을 했다.
그러나 같은 보수언론인 <동아일보>는 다른 길을 택했다. 21일자 <동아일보>는 다른 보수언론에 비해 비교적 차분하게 쓰여진 1면 기사 제목을 <세월호 유족 ‘與野 재합의안’ 거부>로 가져갔다. 3면 기사 제목 역시 <“여야 모든 합의, 유족 동의 얻어라” 격앙>으로 다른 보수언론의 제목 편집에 비해선 차분한 편이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도 <비리 의원 지키려고 ‘방탄 국회’ 여는 게 야당 의리인가>란 제목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을 비판했을 뿐이다. 사분오열하고 ‘방탄 국회’의 혐의를 받는 새정치민주연합을 비판하면 되는 상황에서 굳이 유족을 비판하지 않았다.
21일자 <한겨레>는 <‘손잡아주는 이’ 없는 정치가 불신 불렀다>란 제목의 기사를 1면에 배치했다. 유족들의 결정의 원인이 정치권의 파행에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3면에선 <유가족 여한 없게 하겠다더니… 박대통령 약속 헛말이었나>, <거부당한 재합의안… 박영선, 두 번의 내상>. <이재오 ‘유가족·야당 추천-여당 동의’ 제안> 등의 기사로 정치권의 문제를 두루 다뤘다.
▲ 21일자 한겨레 4면 기사
이날 <한겨레>는 1면과 4면, 그리고 5면 기사에서 ‘세월호 세대’의 의식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해서 눈길을 끌었다. <한겨레>는 “20일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와 참교육연구소가 서울·경기·인천의 고2 학생 1051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 결과”를 보도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이 설문 결과에서 “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낀다’는 응답자는 참사 전 61.9%에서 참사 이후 24.9%로 줄었고, ‘내가 위기에 처할 때 국가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역시 46.8%에서 7.7%로 급락했다”고 한다.
언론에 대한 신뢰 역시 급락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언론에 대한 신뢰는 참사 전 43.1%에서 참사 이후 12.4%로 급락했다”고 한다. 또 “가장 신뢰할 만한 정보획득 수단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51.4%)은 ‘어떤 것도 신뢰가 가지 않았다’고 답했고, 20%는 트위터·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꼽았다. 방송(12.8%)과 인터넷(10.4%)이 그 뒤를 이었고, 신문은 2.2%에 불과했다”고 전했다.
같은 날 <경향신문>은 1면과 3면 기사에서 <“지금 세월호법으론 진상규명 못해”>란 제목으로 38일째 단식을 하고 있는 김영오씨의 주장을 소개했다. 3면에선 유족 총회의 모습을 담았고 4면에선 청와대와 새누리당을, 5면에선 새정치민주연합을 비판했다. 김영오씨는 침묵하는 대통령에 대해 “대통령이 바빠서 광화문 단식하는 데 갈 수 없다고. 이게 국민을 위한 정부인가요? 제가 국민이 아닌가요? ‘유가족충’이라는 말도 있던데 그렇게 보이나 봅니다.”라고 질타했다.
▲ 21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국민’의 뜻을 두고 각자 아전인수의 해석을 하고 있는 가운데, 보수언론은 정치권의 행태를 비판하면서도 유족의 책임을 물었고 진보언론은 보수언론이 비판하지 않은 대통령의 침묵과 세태변화를 끄집어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정치세력의 진영논리의 대립과 한 정치세력의 공론형성 능력 부재 속에 사태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답답한 풍경이다.
두 진영의 반응을 종합해 보면 이제는 ‘유족’과 ‘대통령’의 대립구도가 와야겠지만, 대통령은 유족이 투명인간인 것처럼 무시하는 형국이다. 과연 한국 사회의 시민들이 대통령의 행동에 동참하여 그들을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할지, 아니면 어느 순간에 그들의 존재를 다시 감지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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