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여야 원내대표가 도출해낸 세월호 특별법 재합의안이 유족들의 반대로 추인이 보류되었다. 재합의안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의원 총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또 다시 협상이 파기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 사안에 대한 20일 신문들의 보도태도는 엇갈렸다. 보수언론은 유족들의 책임을 묻는 모습마저 보였고 진보언론은 정치의 실패에 주목했다. 사설에서 해당 사안을 다룬 신문은 <중앙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이었다.

대부분의 신문이 해당 사안을 1면 기사부터 소화한 상황에서, 1면 기사 제목의 배치가 신문의 성향과 정견을 드러냈다. 유족들의 입장에 부정적인 보수언론은 기사 제목 앞에 ‘유족’을 배치했다. 20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제목은 <유족 반발에… 세월호法 합의 또 표류>였고 같은 날 <중앙일보> 1면 기사 제목은 <유가족에 막힌 세월호특별법 재합의안>이었다. ‘유족’이 앞에 배치됨으로서 그들이 적극적으로 세월호 특별법 합의를 저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줬다.
▲ 20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반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제목선정은 달랐다. 20일자 <한겨레>의 1면 기사 제목은 <여야 ‘세월호법’ 재합의 했지만… 유족들 반발>이었고, <경향신문>의 1면 기사 제목은 <여야, 세월호법 재합의… 유가족은 “반대”>였다. ‘유족’이 제목 뒤에 가니 정치권이 나름의 합의를 도출했지만 그들을 만족시키지는 못 했다는 함의를 담게 되었다.
▲ 20일자 한겨레 1면 기사
한편 중도성향의 <한국일보>의 경우 이날 1면 기사 제목이 <세월호법 재합의도 유가족 반발로 벽에>였다. 이는 <한겨레>와 <경향신문>처럼 ‘유족’을 뒤에 배치한 것이긴 하나 제목 내용이 풍기는 인상 자체는 다소 ‘유족 책임론’에 가까웠다. 보수언론인 <동아일보>의 경우 같은 날 1면 기사 제목이 <세월호法 재합의… 野, 추인 유보>로 재합의안이 통과되지 않은 상황을 비판하기는 했으나 ‘유족’ 보다는 ‘야당’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
1면 기사 제목 편집에서 ‘유족 책임론’을 암시한 <중앙일보>는 사설에서도 거침없었다. <중앙일보>는 20일자 사설 제목도 <유족 앞에 가로막힌 세월호 합의안>란 이름으로 가져갔다. <중앙일보>는 “유족들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게 유족대책위가 가이드라인을 줬는데 이완구-박영선 합의안에서 관철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유족의 아픔을 십분 이해한다 하더라도 유족들의 태도와 입장은 수용하기 어렵다. 국가의 입법권은 엄연히 국회에 있는데 원내 1, 2당 대표가 두 번에 걸쳐 합의한 내용을 무시하는 정도가 지나치다”라며 유족들을 비판했다.
유족들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합의안을 거부한다 하더라도 입법권은 엄연히 국회에 있다. 그럼에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합의안이 통과되지 않는 것은 야권 지지층 중 상당수가 유족들의 주장과 정서에 공감하기 때문이며 이를 의원들이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이 이렇다면 지지층을 어떻게 ‘대의’할 것인지와 각각의 입장을 어떻게 ‘절충’하고 ‘타협’할 것인지가 의회의 고민이 되어야 한다. 유족들이 권력을 휘둘러 문제가 꼬이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 20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중앙일보> 사설은 합의안에 대한 주관적 평가에서도 거침없었다. <중앙일보> 사설은 재합의안에 대해 “새누리당은 거의 백기항복 하다시피 양보했다 (...) 야당과 유족은 특검 이전 단계로 1~2년 활동하게 될 진상조사위 17명에서도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 세월호의 진상조사와 수사·처벌에 관한 한 유족이 거의 완벽하게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구조다”라고 주장했다. 유족들이 그간 꾸준하게 지적해온 진상조사위의 수사권과 기소권이 증발된 것은 물론, 특별검사 선정도 아닌 특별검사 추천위원회의 구성에서의 양보만으로 이루어진 합의에 대한 평가로는 매우 난감하다. 새누리당조차 스스로는 하기 어려울 말을 <중앙일보>가 대신 해준 셈이 되었다. ‘백기투항’이란 <중앙일보>의 개탄에 공감하는 공간을 온라인에서 찾는다면 그 유명한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 정도가 될 것이다.
<동아일보>의 경우 1면 기사 편집에서도 그랬듯 세월호 특별법이 추인되지 못하는 상황을 비판하는 사설을 썼지만 ‘유족’을 직접 비판하지는 않았다. <동아일보>는 <세월호에 잡힌 국회, ‘국정 발목잡기’ 구태 청산하라>란 제목의 사설에서 “그러나 타결안에 대해 세월호 유족들이 반대하고 나서 향후 정국은 불투명하다”라고 했지만 유족들을 직접 비판하지는 않았다. 다만 “자신들이 원하는 특별법에 다른 모든 법안 처리를 연계시키는 ‘발목잡기’ 구태를 재연했다”며 새정치민주연합의 행태를 비판했다.
물론 이는 다른 법안을 지렛대로 삼지 않으면 협상력 자체가 없는 야당의 처지를 무시한 하나마나한 비판이다. <동아일보> 사설은 “새정치연합이 비난을 무릅써가며 강경자세를 고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재적의원수의 5분의 3(180석)에 못 미치는 한 단독으로 법안 처리를 불가능하게 만든 이른바 국회선진화법(국회법)이 있다. 몸싸움을 막자는 취지의 이 법이 불임국회 식물국회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반복된다면 발목 잡는 야당 이미지는 굳어지고 법 개정 여론도 높아질 것이다”라면서 국회선진화법에 딴죽을 거는 모습을 보였다. 거대여당의 다수결 전횡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매우 섭섭하다는 태도였다.
▲ 20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한편 같은 날 <경향신문>은 <유가족이 반대하는 세월호특별법 합의한 여야>란 제목의 사설에서 우리의 ‘대의정치’에 ‘대의’가 어디에 있느냐고 따져물었다. <경향신문> 사설은 “유가족들은 이번 합의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1차 합의에서 형식적 절차만 조금 수정한 정도로는 애초 유족 측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런데도 1차 합의의 틀을 유지한 채 미세조정하는 협상으로 일관했다. 여야 합의와 유족 측의 거부가 반복되는 이 과정은 야당의 실패를 넘어 정치의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특별법도 여야 간 협상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정한 타협이 불가피하다. 유가족 측의 요구를 다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엄정하게 적극적으로 진상을 조사할 수 있는 특검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다. 여야 합의라면 그런 원칙을 반영했다고 당당히 설득할 자신이 있어야 한다. 과연 그런가”라고 비판했다.
또 <경향신문> 사설은 “이런 결과는 집권세력의 세월호 참사에 대한 태도 변화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세월호특별법 협상 과정에서 집권당으로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국정을 책임진 집권세력이라면 진상규명에 앞장서고 대책을 세워야 마땅하다. 그러나 7·30 재·보선 승리 이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성찰적 자세를 버리고 세월호 국면을 조기에 끝내는 데만 집중했다. 그 때문에 여야 간 협상이 ‘가장 효과적인 진상규명 방안’보다 그저 무난한 방법을 찾아 절충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야당도 협상력 결여, 지도력 부족, 신뢰 상실 속에서 새누리당에 이러저리 휘둘리다 길을 잃고 여기에 이르렀다”라며 새누리당의 행태를 집중 비판하면서도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비판을 일부 곁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