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 3일째,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행보엔 ‘개혁 교황’과 ‘보수적 한국 천주교회’, 그리고 ‘교황의 행보와 메시지를 부담스러워 하지만 환영할 수밖에 없는 한국 정부’의 입장이 어우러진 불협화음과 곤혹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인터넷에서 널리 회자된 SBS 윤창현 기자의 취재파일에서 지적되었듯, 평화를 말하는 교황에 대한 ‘의장대 사열’이란 의전은 거북스럽기 짝이 없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대책위를 더 이상 접촉하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유족들을 위로해주셔서 고맙다”고 교황에게 말한 건 그만의 유체이탈 화법이라 할 만했다.
천주교회가 정리한 교황의 방한 일정은 ‘개혁 교황’의 행보를 온전히 담아내는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충북 음성 꽃동네 방문과 같은 일정은 그 시설이 가톨릭의 것이란 걸 감안하더라도 ‘장애인 격리사회’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교황은 거듭 미사 강론에서 세월호 유족들을 언급하고 농성하는 그들을 위해 카퍼레이드에서 내려서 걸어 나오면서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그의 개성을 보여주고 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식에서 앞서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단식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는 모습이 서울광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중계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 개신교, 천주교, 불교 등 여러 종교가 교세를 넓히기 위해 각축하는 사회다. 종교의 기능 중 중요한 부분이 고통 받은 이들에 대한 위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 종교계가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느냐를 묻는다면 긍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고통 받은 이들의 투쟁이 사회운동화할 때 종교계에선 일부 사회운동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개별적으로 결합했을 뿐 교계 차원의 대응은 없었다.
정치가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여 삶과 분리될 때, 종교 역시 비슷한 길을 걸어가고 있었던 게 아닐까. 프란치스코 교황이 노란 리본을 달고 미사하고 그들에게서 편지를 전달받는 광경을 보면, 두 명의 추기경을 가진 한국 천주교회는 그간 무엇을 했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들이 이십 여개 운집해 있다는 수도 서울의 그 수많은 예수 믿는 이들을 지도하는 목사들은 무엇을 했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교황은 매우 평범하고 소탈한 행보로 사람들을 일깨우고 있다. ‘어버이’와 ‘엄마’의 이름을 단 단체가 유족들의 요구를 불순한 것으로 매도하는 사회에서, 상대방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만으로 큰 위로를 줄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여든 야든 정치세력이든 종교계든 이런 태도로 그를 위로했다면, 유족들이 세월호 특별법의 내용에서 수사권이나 기소권에 그토록 집착하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다.
아무도 믿을 수 없어 직접 추천한 이들이 수사하고 기소했으면 좋겠다는 이들 앞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를 조사하고 수사, 기소하는 게 과연 문명사회에서 용인될 수 있는 가치가 맞느냐"(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라고 반문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최소한의 공감능력이 작동하지 않는 이곳이 ‘문명’이기는커녕 ‘사회’이기는 한지를 먼저 물어야 할 판국이다. 교황의 행보는 우리가 상실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