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의 일련의 행보는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드는 사람을 보는 듯하다. 2003년 열린우리당 탄생 이후 십 년 넘게 요동쳤던 이 나라 자유주의 정당의 역사를 생략하고 7.30 재보궐 선거 이후만 지켜봐도 그렇다.

하나하나 짚어 보자. 먼저, 박영선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장의 자리를 그런 식으로 쉽게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의 겸임으로 인한 권력집중, 이에 대한 다른 의원들의 ‘흔들기’ 및 그로 인한 리더십의 파행은 뻔히 예측되는 것이었다. 그 우울한 예측이 지금 그대로 실현되는 중이다. 어차피 비대위원장 자리를 맡지 않았어도 비대위 구성이 완료될 때까지는 박영선 원내대표 말고 리더십을 발휘할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비대위원 구성이 어려울 정도로 이미 리더십이 실종되어 버렸다.
둘째, 이완구-박영선 세월호 특별법 합의는 납득하기 어려운 처신이었다. 물론 그러한 결단이 불가피하다고 느끼게 된 맥락 내지 사정도 있다. 정치에는 상대가 있고, 상대는 다수이며, 최근에 선거도 이겼다. 새누리당은 가족대책위의 안을 받아들일 의사가 전혀 없으며, 상설특검법은 야당이, 그것도 박영선 원내대표가 법사위 시절에 주장하고 만들어낸 것이다. 교황 방한 이후 여론의 초점이 다른 곳으로 이동해 협상력이 더 떨어질 거라 판단했을 수도 있다. 이는 진상조사위원의 구성 문제에 집중하는게 최선이라고 판단했을 법한 맥락들이다. 그러나 유족들은 물론 당내 인사들도 설득할 대책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원내대표의 합의가 며칠 만에 뒤집히는 추태가 발생했다.
셋째, 박영선 원내대표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를 비판한 당내 인사들의 발화 방식도 문제였다. 유족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정동영 상임고문과 문재인 의원의 발언의 내용은 존중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런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면 박영선 원내대표가 나쁜 방식으로 여론의 집중적 관심을 받게 되었을 때 ‘숟가락’을 얹을 게 아니라 당내 중진으로서 논의의 형성과 응집에 관여했어야 했다. 그런 역할을 방기했다 입을 열게 되었더라도, 최소한 당내 논의부터 시작했어야 했다. 당내 중진들이 지나가는 가십도 아니고 당을 들었다 놨다 하는 핵심 이슈에 대해 트위터에서 당 지도부를 비판하는 정당을 과연 정당이라고 부를 수는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넷째, 현 단계에서조차 투쟁의 목표와 전략이 불명확하다. 가족대책위가 원하는 4.16 특별법을 최대한 관철시키겠다는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어느 부분에 최대한 집중하겠다는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하겠다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유족과 여론에게 욕을 먹고 있으니 새누리당에게 하나만 더 접어달라고 떼를 쓰는 것으로 비치지나 않을까 두려울 정도다.
▲ 13일자 조선일보 2면 기사
실제로 보수언론은 일부러라도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 그러한 ‘떼쟁이’의 이미지를 지어내려고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일보>의 13일자 보도들은 우려할만한 구석이 있다. 그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의 파행의 해법을 엉뚱한 것으로 제시하면서, 파행을 연장하거나 야당을 ‘새누리당 2중대’로 만들고자 한다.
<조선일보>는 3면 기사 <"場外세력에 조종당하는 '리모컨 野黨' 집권 못한다">에서 “제1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원외(院外) 재야그룹과 이에 동조한 당내 강경파의 주장에 휘둘리고 있다. 야당 출신 원로나 중진들, 정치 전문가들은 ‘국가 운영에 대해 책임질 필요도 없고, 여야나 이념 충돌이 많아야 자신들의 입지가 확대되는 것이 장외(場外) 세력’이라며 ‘그런 사람들이 야당의 의사 결정을 좌우하는 이상 집권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질 것’이라고 하고 있다”라고 진단한다. 외부세력과 당내 강경파가 협잡하여 당을 흔들어 대고 있으며, 각종 사회단체 출신 비례대표 의원들이 그 연결고리라는 주장이다.
또한 <조선일보>는 같은 면 <새정치연합 ‘운동권 비례대표’가 場外세력과 연결통로>란 제목의 기사에서 표까지 그려가며 사회운동가 출신 비례대표가 늘어난 것이 문제인 것마냥 서술했다.
물론 운동가 출신이라 해서 무조건적으로 더 유능한 정치인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운동가는 엘리트들에 비해 도덕적일 확률이 높지만, 도덕성은 정치인이 가져야 할 여러 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민주화 운동가의 우월의식을 가진 이들이 다수라서 시민들의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에는 타당한 구석조차 있다.
▲ 13일자 조선일보 2면 기사
그러나 비례대표에 운동가 출신이 많은 것이 문제라는 주장은 전혀 다르다. 새누리당엔 재계, 법조인, 관료 출신들이 많다. 이들은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의 엘리트요 기득권세력이다. 이들은 사실상 스스로 자신을 대변하기 위해 정치를 한다.
반면 농민, 노동자, 영세자영업자들이 스스로 나서서 정치를 하기엔 쉽지 않다. 조직화가 되어 있지도 않고 대변하는 세력도 없다. 민주적 노동조합을 기반으로 한 진보정당의 실험이 있었으나 안착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선 일정 부분 사회운동가들의 수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조차 없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새누리당과 별도로 존재할 의의가 사라지고 만다. <조선일보>가 원하는 것이 정확히 그 부분이다. <조선일보>는 사실상 엘리트의 통치를 옹호하면서 대의정치의 근본적인 취지를 훼손하고 있는 셈이다.
<조선일보> 기사엔 당 안팎의 원로라는 사람들이 모두 나타나 쓴소리를 하고 있다. 여기서 강경파와 온건파의 허구적인 대립구도가 탄생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강경해서, 혹은 온건해서 문제가 아니다. 새누리당과 구별되는 정체성에 구성원들이 합의하지 못했고, 그렇기에 이를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도 못한다는 것이 근본문제다. 정당은 어쩔 때는 투쟁하고, 어쩔 때는 타협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데, 무슨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과 전망이 없으니 그냥 투쟁하고 그냥 타협해서 욕을 먹는 것이 새정치민주연합이다.
‘좌클릭’이니 ‘우클릭’이니 ‘선명야당’이니 ‘수권정당’이니 하는 말들은 다 부차적이다. 척추가 나가고 코어근육이 빈약한데 상체를 단련해야 하니 하체를 단련해야 하니 식이요법이 더 중요하니 운동이 더 중요하니 하는 흰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일보>가 이런 식의 훈수를 두는 이유는 간단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자신들의 훈수를 수용하면 매우 좋고, 그게 아니라 강경파와 온건파의 허구적 구도 내에서 당내투쟁을 지속하며 허송세월해도 매우 좋기 때문이다.
더 이상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도부를 고립시키는 논의 지형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 기왕에 당론을 뒤집은 상황,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짱돌이 우물 안에 떨어져 그 부유물이 모두 올라오는 것처럼 당을 어쩌자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 여전히 개인별·계파별로 다음 총선의 공천권을 누가 가질지에나 관심을 기울인다면, 새정치민주연합에겐 ‘정권교체 사수생’이란 시련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지지자들의 ‘멘탈’도 함께 상처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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