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전문지’가 거시경제정책에 대한 기사를 쓰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언론이 주되게 다루는 것은 보통 정치나 사회면에 실릴 소식들이고 경제면에 실릴 소식이더라도 개별 기업의 차원에서 이뤄지는 일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만일 거시경제정책에 대한 기사가 신문 1면을 장식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건 경제 분야의 정책을 총괄하는 관료들이 바뀔 때이거나 특별히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시기다.

이번에는 두 경우가 겹쳤기 때문에 여파가 오래 갔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취임 이전부터 자신만의(?) 구상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며 신문 지면을 장식해왔다. 지금까지 그가 내놓은 경제정책은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를 통한 경기부양과 가처분소득 증대를 통한 내수활성화의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이 중 후자의 핵심은 가처분소득 증대를 위해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임금인상이나 배당에 투입하도록 유도하는 세제개혁을 진행하는 것이다.

▲ 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6일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4 전경련 CEO 하계포럼'에서 '10년 후 대한민국을 설계한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한 언론의 평가들은 다소 제각각이었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사내유보금 과세에 대한 재계의 불만을 반영하면서도 정부 시책을 합리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느라 다리가 찢어질 지경이었다. 이 두 신문들에 비해 <조선일보>는 상대적으로 기업의 사내유보금 과세의 당위를 제기하는 데 열심이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다소 결이 다른 행보를 보였다. <경향신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최경환 부총리의 구상을 비판하는데 집중했다고 한다면 <한겨레>는 최대한 합리적인 관점에서 최경환 부총리 구상의 명과 암을 짚어보는데 집중했다. <경향신문>이 전통적인 ‘야당지’의 역할을 수행하려 했다면 <한겨레>는 대안적 성격의 보도를 보여주려 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 한겨레 21일자 지면에 실린 칼럼.

<한겨레> 7월 21일자 지면에 실린 <최경환의 변신, 또는 본색>이란 제목의 안선희 한겨레 경제부 정책금융팀장의 칼럼을 보면 <한겨레>의 고민 지점을 알 수 있다. 그는 이 글에서 최경환 부총리가 ‘성장’이라는 토끼를 잡기 위해 ‘분배’라는 토끼를 더는 외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냐며 그의 가계소득 증대를 위한 정책에 대해 “그 의미를 폄하하고 싶지 않다”고 썼다. 그러면서 그는 한 경제관료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우리 경제가 부진한 이유는 지표들을 보면 명확하다. 소비가 문제다. 수출은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다. 왜 소비가 안 될까. 가계가 쓸 돈이 없기 때문이다. 이건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게 그 내용이다.

그러나 경제관료들의 입에서 내수시장에 대한 고민이 묻어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내수경제 활성화는 사실 입만 열면 관료들부터 자칭 경제전문가까지 그 필요성을 제기하는 이슈이다. 정부 관료가 내수경제 활성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낸 것은 일부에 불과할 것인데 이를테면 이명박 정부 초기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소위 ‘고환율정책’ 방어를 위해 “대내균형보다는 대외균형이 우선”이라고 발언한 것 정도가 대표적이다.

때문에 최경환 부총리가 단지 가계소득 증대를 언급했다는 이유로 그가 어떤 ‘새로운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는 식의 해석을 내놓는 것은 과잉된 것일 수 있다. 그가 ‘사내유보금 과세’를 말하는 것은 신선한 접근이긴 하지만 이를테면 그 유명한 이명박 정부에서도 ‘동반성장’이라는 패러다임을 꺼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으로부터 “초과이익공유제라니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는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지 않은가? 이명박 정부 시절 만들어져 아직까지도 존재가 유지되고 있는 동반성장위원회의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또한 여전히 논란의 대상인 것도 사실이다.

최경환 부총리는 문제가 되고 있는 사내유보금 과세에 대해서도 지난 정부가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 인하한 요율 안에서 사내유보금의 과세 폭을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재계의 반발을 의식해 지난 26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아이러니한 장소 섭외다)에서 열린 ‘전경련 최고경영자 하계포럼’에 참석해 내놓은 발언이다. 지난 정부는 법인세 인하에 대해 ‘낙수효과’를 언급하며 기업의 이익이 민간에까지 전파되도록 하겠다는 ‘명분’을 내놨다. 이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꺼내든 카드가 ‘동반성장’이었다. 최경환 부총리의 발언을 이 맥락으로 본다면 작동하지 않는 ‘낙수효과’를 작동시키기 위해 ‘동반성장’보다 더 센 수단을 동원한 셈이다. 큰 틀에서 보자면 경제관료들의 당시 문제의식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라고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더군다나 사내유보금 과세의 효과가 사실상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 역시 우려스러운 지점이다. 기업이 임금인상보다 배당에 사내유보금을 투입하는 방향을 선택할 경우 최경환 부총리가 장담했던 가계소득의 증대는 미미한 수준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부채를 많이 갖고 있고 임금이 적은 저소득층의 가계 소득에는 이러한 정책이 사실상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최경환 부총리가 정권의 ‘실세’라는 점은 기대와 우려를 모두 불러일으키고 있다. 각 일간지들은 26일 최경환 부총리 입각 후 단행된 각 부처 장·차관급 인사를 비중있게 다뤘다. 대개 기획재정부 출신이 약진하고 있다거나 최경환 부총리와 관계가 깊은 인사들이 요직에 진출했다는 식의 분석이 뒤따르고 있다. 현오석 부총리 시절 기획재정부 출신들의 주된 불만거리였던 ‘인사 적체’도 이걸로 일부 해소될 수 있게 됐다. 이와는 반대의 사례도 있다. 1기 경제팀의 한 축을 담당했고 ‘천재’라는 평가까지 받은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유임이 유력했지만 최경환 부총리의 반대로 방랑생활(?)을 하게 됐다. 조원동 전 수석은 이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나 국무조정실장 등으로도 고려됐지만 이 자리들은 최경환 부총리와 가까운 인사들에게 돌아갔다. 그야말로 최경환 부총리가 ‘실세’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부분이다.

최경환 부총리는 경제기획원 출신이지만 내부에서 그럴듯한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차피 뛰어난 천재에게 방향타를 맡긴다고 해서 한국 경제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이지만 믿고 맡길만한 ‘능력’을 보여줬느냐 라는 문제도 경제부총리를 평가하기 위해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인 것은 분명하다. 확인된 바 없는 능력과 ‘실세’라는 파워는 결국 우리 경제를 더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하는 건 아닌가 걱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인 게 사실이다.

이런 여러 부분을 볼 때 <한겨레>가 최경환 부총리에 대해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일견 동의할 부분도 있으나 좀 더 적극적인 태도로 비판을 내놓는 기획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현재 매체지형에서는 이런 역할을 ‘야당지’가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비판은 섬세해야하고 대안적이어야 한다. 얼마 전 진보진영의 한 인사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좌파가 경기부양책을 환영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 인사는 “경기부양은 좋다. 단, 제대로 한다면……”이라고 답한 바 있다. ‘제대로 하는 경기부양’이란 실제로 정부가 추진하는 경기부양이 기업들과 고소득층의 주머니를 풍족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서민들의 실제 생활에 도움을 주는 형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즉, 경기부양이냐 아니냐의 구도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경기부양인가 하는 점을 제대로 짚어야 한다는 얘기다.

▲ 경향신문 25일자 지면.

이를테면 DTI·LTV 규제완화의 경우도 가계부채 규모를 키우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일반적이나 이 부채들이 안정적으로, 또 공적으로 관리될 경우 리스크를 오히려 축소시킬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부에서 가계부채의 건전화의 측면에서 금융권역에 관계없는 LTV 70%의 일괄 적용은 소위 주택담보대출의 ‘갈아타기’가 가능해지는 등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 것에 일리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효과보다는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가 강남권 대형 아파트와 재건축 단지 등의 거래를 촉진시키고 이들이 전체 수도권 주택 가격을 견인해 집값 상승에 서민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 집중해야 하겠으나, 적어도 진보언론의 비판의 포인트가 개별 정책의 실효를 넘어서서 대안적이며 실천적인 ‘담론’을 위주로 제기돼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게 사실이다. <경향신문>이 최경환 부총리의 정책을 다루면서 “재정건전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을 한 것이나 한국은행에 대한 금리인하 압력을 “경기부양의 들러리” 정도로 비판한 것 등은 지나치게 관성적인 방식으로 비판을 제기한 것은 아닌지 한 번 쯤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이런 지적들은 내용적으로는 틀린 것이 아닐 수 있겠으나 담론의 측면에서 볼 때에는 어떤 ‘빈곤’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도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담론의 빈곤은 제1야당의 무능과 진보정치의 실질적 붕괴에서 비롯된 바가 크지만 적어도 언론이 대안적 경제 담론의 형성과 유통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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