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점심 무렵 광화문 부근. 경찰들이 광화문 네거리에 집결해 있다. “시위라도 벌어졌나” 이렇게 생각하고 횡단보도 앞에 서니 장애인들이 보인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광화문 네거리 횡단보도를 ‘횡단’하고 있다.

‘그들’의 목에 걸려 있는 ‘생존권 보장’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비장애인’인 나 같은 사람은 이동권 확보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들’에겐 생존권의 문제다. 존재의 차이가 의식까지 규정하는 셈이다.

주변의 반응은 다양하다. ‘무심하게’ 지나가는 사람이 있고, 흘깃흘깃 쳐다보는 사람이 있다. 유심히 지켜보다가 카메라를 꺼내드는 나 같은 사람은 좀 드물다. 대부분이 하던 대화를 계속하면서 지나가거나 그냥 앞을 보고 간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그들’에게 가장 ‘관심’이 많은 건 경찰이다. 차량을 통제하고 장애인들이 이동할 때마다 호루라기를 불며 주변을 ‘정리’한다. 장애인들이 이처럼 ‘집안’이나 ‘수용소 시설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집단적으로’ 모일 때마다 경찰이 ‘출동’하는 것 -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처한 현실이 어떠한 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말하는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하다. 평소 장애인들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관심을 좀 가지려고 한다.

얼핏 생각해보니 대중교통이라는 말부터 좀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비장애인들 입장에서 대중교통은 적합한 말인지 몰라도 장애인들 입장에선 타고 싶어도 탈 수 없는 ‘비대중교통’이기 때문이다. 횡단보도도 마찬가지다. ‘비장애인들’에게 그건 횡단보도지만 어쩌면 장애인들에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길’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장애인들이 요구하는 이동권 확보가 공간적 이동만을 뜻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건 아마도 비장애인들인 ‘우리 자신’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편견과 무관심을 뚫고 나오라는 일종의 ‘외침’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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