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더 이상은 이렇게 살면 안 되죠. 아픈데 안 아프다고 거짓말하는 것도 하기 싫고…” - 리얼스토리 눈 ’서정희가 밝히는 파경고백‘ 중에서

아프다. 그 생각부터 들었다. 퉁퉁 부은 눈에 피로와 공포가 겹겹이 쌓여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극도의 피로감에 지쳐있는 서정희의 얼굴을 보는 순간. 때론 그 존재만으로도 아파보이는 사람이 있다.

“아직 아픔과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서정희 씨는 차분히 털어놓았습니다.” 시사 교양 프로그램 ‘리얼스토리 눈’에서 파경에 대해 토로한 서정희의 얼굴은 메인 진행자 김재원의 내레이션처럼 아프고 피로했다.

현실보다 더 무서운 공포영화는 없다고들 말한다. 실제로 우리는 매주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실사판 악마를 보았다를 감상하곤 하지 않는가. 그러니 하물며 고발 프로그램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무려 30년 이상을 지켜본 소위 잉꼬부부 서세원과 서정희라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직도 가시지 않는 그날의 충격을 털어놓은 서정희는 이 판국에도 “남편이 화가 나면 절제하기 힘든 그런 감정의 기복들이 항상 있었어요.”라고 사뭇 조심스럽게 애써 고운 말투로 서세원을 배려했다. 사건 당일 지하 주차장 라운지에서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 언어 폭행 수준에 가까운 남편의 말투에 자리에 일어선 서정희에게 욕하면서 어깨를 치고, 자리에 눌러 앉힌 서세원. 이후 시작된 서세원의 폭행은 눈을 뜨고 봐줄 수가 없을 만큼 잔인하고 끔찍했다.

cctv가 비치지 않는 요가실로 끌려 들어간 서정희는 몸에 올라탄 남편에게 목이 졸렸는데 그가 어찌나 이성을 잃은 상태였던지 안구가 빠져 나올 것 같은 느낌을 실제로 받았다고 한다. 마치 죽음과도 같은 아득한 고통의 시간 이후에도 그녀가 당한 폭행의 순간은 끝나지 않았다. 대중을 경악하게 한 장면은 이후에 나왔다.

끌려가던 서정희가 바닥에 넘어지자 그 상태로 발을 잡고 질질질 복도를 끌고 다니는 서세원의 모습. 왼쪽 다리를 잡아 엘리베이터에 끌어 태우는데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건장한 장정 여럿이 서정희를 에워싼다. “왼쪽 다리를 잡기 시작했죠. 잡고 끌어서 그 엘리베이터까지 가게 된 거예요. 끌려서. 끌려서. 끌려서.”

건장한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순간에도 서정희는 서세원에게 발이 잡혀서 뒤집어진 상태 그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상태에서 19층에 올라갔을 때 마침 도착한 경찰이 존재치 않았더라면 서정희의 안위를 과연 장담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서세원과 서정희는 연예계 잉꼬 커플, 혹은 미녀와 야수 커플로 불리며 32년간의 애정을 과시했다. 특히 살림살이에 유독 관심이 많은 서정희의 인테리어 아이디어는 남편에게조차 집착이라 놀림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가 그토록 집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실내의 인형이나 마찬가지였던 서정희에게 인테리어는 유일한 위로였다.

“남편이 사회활동을 못하게 차단했던 부분들이 있었거든요.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는 한정된 집안에서의 일들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남들 보기에 지나칠 정도로 집에 집중하고 살림에 집중하게 된 원인이 거기에 있었던 거예요.”

문득 언젠가 토크쇼에서 서세원이 아내 서정희에게 가당치 않은 이유로 폭발했다던 사연 하나가 떠올랐다. 과일 좀 가져오라고 하면 서정희는 그릇에 또 그릇을 포개 지나치게 인테리어에 신경을 쓴다나. 남편 배려한다고 하는 행동인데 그게 왜 화가 나냐는 후배들이 질문에 멋쩍게 웃던 서세원의 얼굴.

“남편이 집에서 안 그러면 밖에 나가서 폭력. 전화로도 폭력. 아이들에게도 언어폭력을 하기 시작했고 여기 미국에 있는 딸아이한테 전화를 해서 말할 수 없는 언어로…… 계속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도.”

가공되어 있었던 잉꼬부부의 실체. 그 허상은 사회 활동을 극도로 제한당하고 그저 집과 살림에 만족하는 서세원의 아내로서 32년간 그의 인형 노릇을 해주었던 서정희의 숨죽여 우는 눈물과 고통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녀 자신은 꿈꾸지도 못했던 사회 활동. 그럼에도 남편이 바깥에서 만들어낸 그 모든 비난을 부부라는 명목으로 함께 뒤집어써야만 했던 서정희. 그럼에도 그녀가 그토록 묵묵하게 32년을 버티어낼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이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열아홉 살에 시집 와서 지금 32년 동안 남편만 바라보고 살았어요. 그 부분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저한테 나쁘다고 할 수 없어요. ‘미안하다. 잘못했다, 너 그동안 수고했다.’ 그 말 하나 바라고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울먹이는 서정희의 절규 같은 한마디가 내 가슴을 찌른다. “더 이상은 이렇게 살면 안 되죠. 아픈데 안 아프다고 거짓말 하는 것도 하기 싫고…“ 아, 지난 32년간 서정희가 연기한 ‘행복한 아내의 얼굴’ 뒤에 얼마나 큰 아픔이 존재하고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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