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 영화평론가가 24일 JTBC <썰전>에서 미국 제작사들의 국내 자막 제작자들에 대한 형사고소에 대해 “멍청하다”고 꼬집었다.

허지웅 영화평론가는 “외국 거대 배급사들은 (오히려)자막러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사회에서) 미드는 불모지였는데, 미드시장을 만든 사람들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활동으로 결과적으로 미드시장이 커졌다. 정상적인 유통구조가 만들어지면 결과적으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 5월 24일 JTBC '썰전' 캡처
박지윤 아나운서 또한 “일각에서는 자막 제작자들을 ‘미드 문익점’으로 부른다”라고 거들기도 했다. 이 같은 JTBC <썰전> 방송이 나간 이후, 미국 제작사들의 국내 자막 제작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고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해당 사건은 한국 내 인터넷 프라이버시권과 저작권법 개정운동을 펼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앞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는 사안이다.

미드자막, 논란의 시작은?

논란은 지난달 말 워너브라더스와 20세기폭스, NBC, ABC 등 미국 드라마 제작사 6곳이 국내 자막제작자 ID 15개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 조사가 벌어지면서 시작됐다. 해당 ID들은 미드 NBC <히어로즈>, ABC <로스트>에 대한 자막을 만들어 네이버 카페 <감상의 숲>, <ND24클럽>을 통해 공유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미드 제작사의 국내 자막제작자들에 대한 형사고발은 곧바로 “경찰력을 동원을 통한 위협이며 이는 공공자원 낭비”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사)오픈넷은 “이 사건에서 자막제작자들은 드라마의 한글자막만을 제작해 텍스트파일로 공유할 뿐, 드라마 영상파일을 무단으로 배포하지는 않았다”고 강조한 뒤, “전체 작품 중 극히 일부만을 새로운 언어로 재창조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글자막만을 읽었다고 해서 해당 드라마를 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자막파일 자체가 영상파일 저작권자의 시장을 잠식하는 효과는 미미하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오픈넷이 강도 높게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저작권 위반에 따른 형사고소에 대한 우려이고, 그를 뒷받침하는 <저작권법> 개정작업 또한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박혜자 의원은 현 저작권에 대한 형사고소가 남발돼 그로 인한 이용자들의 위축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골자는 저작권 침해로 인한 피해액이 100만원이 넘지 않는 한 형사처벌을 금지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현재 해당 개정안은 상임위를 통과해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큰 이변이 없는 한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오픈넷 남희섭 이사, “미드 자막제작 시 ‘자막러’들 참여시키는 것도 윈윈 방법”

물론, ‘영상파일을 무단 복제해 배포하려는 이들의 이득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도 오픈넷은 “그 (모든)책임을 자막제작자들에게 지우는 것은 가혹하다”고 지적한다. 만일, 자막 제작자들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이것은 “3D안경을 볼 수 있도록 무료로 배포한 사람들에게 3D영화파일의 무단복제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막 제작자들이 만드는 창작물에 대한 이점도 있다는 게 오픈넷의 판단이다. 오픈넷은 “아무런 대가 없이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런 수고를 했다”며 “비록 일부 위법행위가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형벌권(형사처벌)을 발동하는 것은 팬 문화를 위축시키고 문화의 향상, 발전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자막 제작자들이 만들어낸 제작물의 경우 때에 따라서는 공식적인 자막보다 사회 문화와 적합하다는 평가를 듣는 경우들도 있다. 또, 공식 자막과 비교해 보는 이용자들도 적지 않다.

오픈넷은 “자막 제작자들은 사실 미드의 가장 적극적인 팬”이라면서 “특히, 미드가 한국에서 인기를 끌게 된 것도 이런 자연스럽게 성장한 팬커뮤니티의 역할과 공유문화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드 자막 제작자들과 함께 성장할 방법을 찾는 것이 먼저”라면서 “미국 드라마가 한국에서 성공하는 길은 미드를 방영하는 케이블TV의 단기적 이익을 보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미국 드라마 팬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오픈넷 남희섭 이사는 <미디어스>와의 전화연결에서 미드 제작사 측과 국내 미드자막 제작자들이 공생할 수 있는 방안으로 “자막 제작 과정에 이들을 참여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남희섭 이사는 “미드 제작사 측에서 사업적으로 한국에 콘텐츠를 제공할 때 자막을 따로 제작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현재 자율적으로 미드 자막을 제작하고 있는 ‘자막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도 있다”고 강조했다. 남 이사는 “이들이 만든 자막을 보면 굉장히 전문적일 때가 많다. 이들에게 그 자막을 만들지 말라고 하기보다는 도움을 받고 정당한 대가를 줄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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