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전 미 연준 의장의 별명은 잘 알려져있다시피 ‘헬리콥터 벤’이었다. 돈을 공중에서 뿌리는듯 공격적인 재정정책을 쓴다고 하여 이런 별명이 붙었다. 벤 버냉키 의장 시대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린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은 세계 중앙은행사를 새로 써야 할 정도의 막강한 위력을 발휘해 세계경제를 일시적으로나마 구해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필두로 해 경제관계 부처들이 24일 내놓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보면 가히 ‘헬리콥터 최’라고 할만하다. 최대 41조원의 자금을 풀어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하겠다는 이 계획을 보자면 경기부양에 대한 최경환 경제팀의 확고한 철학을 읽어낼 수 있다. 다만, 그가 하늘에서 뿌리는 것이 돈이 아니라 ‘빚’이라는 것은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브리핑룸에서 열린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방향'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최경환 부총리,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연합뉴스)

최경환 경제팀의 부양책 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인 부동산 경기부양책이다. 그간 이런 저런 경로로 회자되던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핵심 경제정책도 바로 이 부분에 관심이 집중돼있다. 최경환 경제팀은 수도권에 불리하도록 설정돼있던 DTI(총부채상환비율) 및 LTV(주택담보인정비율)를 각각 60%, 70%로 단일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애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폭의 변화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간 언론 보도를 통해 나온 얘기는 DTI와 LTV를 60% 수준으로 정리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부동산 경기부양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조치로 그간의 주택정책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1기 경제팀이 운용한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그 실제 내용이 어떻든 명분으로서는 소위 ‘하우스 푸어’나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즉, 주택의 실수요계층에 대한 정책적 접근이라는 점이 명확하게 지적됐던 바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간 정책 방향에서 2가구 이상 다주택자 등의 수요는 고려 대상에서 제외됐었다.

반면 최경환 경제팀의 부동산부양책은 수도권, 특히 강남권의 중대형 아파트 및 재건축단지에 수혜가 집중될 수 있는 것으로서 집을 살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집을 추가로 사서 재임대하는 등 형태의 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아파트 재건축 시 중소형 주택 의무 비율 폐지 및 안전진단 조건 완화, 청약가점제에서 ‘주택수에 따른 감점 폐지’ 및 청약순위제도 간편화, 디딤돌대출 대상자 무주택자에서 기존 주택 처분을 전제힌 1주택자로 확대 등의 조치 역시 같은 맥락에서 제기되는 것이다. 즉,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 투기’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극약처방이다.

이러한 사실상 투기는 금융지원을 통한 사실상 ‘빚’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가계부채의 악화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가계부채를 관리하고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감독해야 할 금융위원회는 오히려 LTV 및 DTI 등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가 가계부채 리스크를 증대시키지 않을 것이라며 최경환 경제팀의 부동산 부양책에 장단을 맞추고 있다. 이는 그간 부동산 부양의 수단으로 LTV 및 DTI 규제 완화가 실시돼선 안 된다는 입장에서 완전히 후퇴한 것이다.

금융위원회의 이러한 입장 변화는 ‘대세’가 기울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기류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 날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발언한 내용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금융규제를 아무리 많이 풀어도 윗선의 금융기관의 보신주의가 해소되지 않으면 성과를 거두기가 어렵다”면서 “금융기관 임직원들의 경우 사고만 안 나면 된다는 의식 때문에 리스크가 큰 대출이나 투자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서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다”라고 발언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은 “금융은 우리 몸의 피와 같아서 제대로 돌지 않고 막히면 금융이 건강할 수가 없다”면서 “금융이 제대로 역할을 안 한다면 금융기관의 존재의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도 발언했다. 앞뒤 사정 다 필요없고 무조건적인 대출 영업에 나서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대통령이 이런 입장인데 금융위원회라고 무슨 수가 있었겠는가?

▲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확대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간 최경환 경제팀이 이런 저런 경로로 주장해왔던 핵심 정책 중에는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증대시켜 내수를 활성화하겠다는 것도 주목을 받아 왔다. 이날 발표된 정책에도 기업소득 환류세제, 근로소득 증대세제, 배당소득 증대세제 등의 제도가 포함돼있는데, 이 역시 가계의 가처분 소득 증대를 유도하려는 정책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대해 과세를 하며 기업이 평균임금을 올리거나 배당을 촉진했을 경우 세제혜택을 주겠다는 게 이 정책의 핵심이다. “사내유보금을 시장과 가계로 흐르도록 하겠다”는 기존의 레토릭을 구체화 한 셈이다.

문제는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와 배당 촉진이 충분한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사내유보금 과세의 경우 그간의 사내유보금은 불문에 붙이고(?) 내년부터의 신규발생분에 대해서만 과세를 시행하며 유예기간을 둬 2017~2018년에 실질적인 집행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그간 재계가 사내유보금 과세에 대해 반발해온 것에 대한 일종의 절충안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조차 재계가 순순히 받아들일 것으로 예측되지는 않기 때문에 상당한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최경환 부총리는 “기업들이 법인세 인하로 혜택을 받는 부분만큼만이라도 투자나 배당, 임금인상으로 환류시키면 세금이 제로가 된다”고 설명했다. 과거 정부에서 법인세를 25%에서 22%로 인하하면서 기업이 거둔 이윤이 일자리 창출이나 투자의 형태로 내수를 진작시키는데 투입되는 소위 ‘낙수효과’가 기대됐지만 오히려 사내유보금의 증가만 불러오고 말았으니 이번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유도하겠다는 얘기다. 즉, 굳이 표현하자면 이는 ‘강제 낙수효과 유도’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어찌됐든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할 부분이 있긴 하지만 기업이 사내유보금의 형태로 이윤을 쌓아놓는 것 보다는 어찌됐든 가계나 시장에 투입되는 게 낫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불을 보듯 뻔한 것은 재계가 이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며 심지어 그들에게는 정권 말까지의 ‘충분한 시간’이 보장돼있기 때문에 그간 상당한 ‘여론전’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장 <문화일보>가 24일 게재한 사설을 보면 ‘기업의 팔 비틀기’, ‘규제 암덩어리’, ‘포퓰리즘’, ‘징벌적 수단’ 등의 과격한 어휘들이 사내유보금 과세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는 데 사용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문화일보 24일자 사설.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서민경제에 그나마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임금인상보다 배당의 강화에 집중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기업의 보다 적극적으로 배당에 나설 경우 국내 소액주주들의 가계소득 증대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해볼 수 있겠지만 이의 효과는 미미할 가능성이 크고 오히려 외국자본의 투자를 유도하는 것으로 시장에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외국인 주주들에 대한 배당이 커질 확률도 높아진다. 결국 배당 증대를 통해 기업이 투자를 보다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기회는 될 수 있어도 내수 경기를 살리는 기회가 될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연 한국경제의 문제가 ‘주주 자본주의’의 강화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인지에도 의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OECD국가 중 가장 긴 시간을 일하며 불안정한 노동환경과 열악한 임금구조에 노출돼있다. 최경환 경제팀의 경제정책에 이를 고려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 대책을 반복하거나 사실상 실효성이 없는 문구들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은 이들이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이윤 추구를 중심으로 한 현재 체제를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집행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한다. 일각에서 회자되는 ‘소득주도성장론’등을 들며 긍정적으로 평가해줄 때가 전혀 아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