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안재환의 자살사건은 8일 월요일부터 연예계를 비롯해 온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안타까운 사건의 중심에 서있던 기자(?)로서 <미디어스>의 지적대로 ‘먹잇감’에 충실한 며칠을 보냈고, 신문 홈페이지를 다운시킬 정도의 클릭 수에 부화뇌동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이제 광풍은 지나갔고, 흥분(?)된 분위기를 추스려야 할 시간이다.

▲ 스포츠칸(http://sports.khan.co.kr)의 9일 오후 화면(왼쪽)과 여기에 실린‘탤런트 안재환 사망 '충격'’이라는 제목의 ‘화보’(오른쪽).

현재 나는 이번 사건에서 우리의 보도태도가 옳았는지, 잘못됐는지 제대로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혼란스러움은 종합지와는 다른 스포츠신문의 태생적인 존재 가치와 연관된 것이고, 인터넷에 기반하거나 동반한 취재환경을 핑계로 대겠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우리의 보도태도를 합리화 시킬지라도, 사망·자살 사건의 보도태도에 부족함이 없었는지 스스로 의문부호를 찍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지금부터 써내려가는 이야기는 며칠 동안 우리 편집국에서 벌어졌던 ‘탤런트 안재환의 자살 사건’에 대한 고증 충실한 재연이고, 그 고해성사를 통해 미디어스 독자에게 스포츠신문과 스포츠신문 종사자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 위함이다. 물론 잘못에 대한 질타 역시 달게 받겠다는 말도 덧붙인다.

# 9월8일

오전 11시 50분께 = <스포츠칸> 편집국 문화연예부 기자 5명은 한류 콘텐츠 제작자와 점심을 겸한 ‘한류 되살리기’에 대한 열띤 토론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통의 제보 전화가 모 기자에게 날아들었다. “안재환 자살한 듯, 정선희 등 확인차 태릉으로…”. 황당한 제보였고 당황한 얼굴로 업무 분담을 통한 확인 작업이 벌어졌다. 일순간 가칭 ‘한류 토론회’는 파장이 났고, 점심도 날아갔다.

오후 12시 50분께 = 30여 분의 확인 취재! 제보의 내용은 점점 사실로 굳어졌다. 기사 작성을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관련 뉴스가 한 인터넷 매체의 1보 기사로 포털 사이트에 올라왔다. 기사를 작성하던 해당 기자의 얼굴은 이내 일그러졌고, 낙종 후 아이템에 대한 숙제가 부서원을 긴장시켰다. 2명의 취재 기자와 1명의 사진 기자는 태릉의 한 병원으로 날아갔다. ‘Ctrl+C’와 ‘Ctrl+V’ 된 듯한 기사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포털에 꼬리를 물었다. 혼란 그 자체였다. ‘안재환 자살 사건’을 제외한 기사를 1명의 기자가 ‘통’으로 맡고, 나머지 인력은 모두 이 사건에 매달렸다.

오후 3시 00분께 = 전화통을 붙들고 씨름을 하다가, 농담말처럼 한 지인의 “나 안재환 친구 아는데”라는 말에 멘트라도 딸 요량으로 연락처를 받아들었다. 황소가 뒷걸음질치다 개구리를 잡는 것처럼, 그에게서 새로운 ‘야마’(기사의 주제)가 잡혔다. “잘만하면 낙종 반까이(만회)는 하겠군!”. 그와 여러차례의 통화 끝에 “사업으로 진 빚 35억”이란 제목의 기사가 송고됐다. 이 기사는 최진실의 멘트로 보도된 타사의 40억원 사채로 확대 재생산됐다. 현장을 돌던 기자는 자살 장소의 처참함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현장 텍스트 기사는 인간적인 이유로 ‘킬’(몰고 : 기사를 써놓고도 보도하지 않는 일), 사진기사만 송고를 결정했다. 인터넷은 폭발 직전이었다.

오후 5시 00분께 = 회사 홈페이지가 접속자 폭주로 두어차례 다운되는 초유의 일이 발생됐다. 모회사인 경향신문사의 인터넷 서버는 촛불집회 때도 버텨내던 홈페이지였다.

오후 7시 00분께 = 인터넷 담당 기자는 단일 기사 10만 클릭 넘는 기사가 속출하고, 관련 기사의 접속도가 계속 증가하자 고무됐다. 편집국도 안재환 관련 기사의 편집에 ‘올인’했다. 기사는 오후 10시30분 50판과 오후 11시30분 60판 편집을 다시 하며 까만 밤을 하얗게 샌다.

# 그 후…

▲ 정선희씨의 예전 사진을 끌어다 1면으로 뽑은 9일자 '스포츠조선' 제목은 '40억 사채의 비극'이다.

이튿날인 9월9일 오후 2시 편집회의는 안재환 관련 기사에 대한 고무적인 관심도(관련 아이템에 대한 회사 홈페이지 클릭 건수 200만 건 육박)에 안재환 아이템 추가 발굴 지시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미 불붙은 취재 열기는 저인망식으로 자살도구로 쓰인 연탄·착화탄 출처까지 기사화되는 통해, 난전을 방불케 했다. 상황이 여기까지 이어지다보니 분석 기사로 1면을 결정했다.

핑계지만 기자들은 무엇에 이끌려 나왔는지 모르지만, 앞으로만 달려왔다. 쏟아지는 기사와 정해진 마감에 쫓겨 앞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망자에 대한 인간적인 예의와, 개중 취재가 부족한 보도도 있을 테고, 팩트보다 감정을 앞세운 기자작성도 적지 않았을 게다.

9월10일 사건에 대한 호기심이 잦아들고, 흥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번 일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이틀간 걸어온 길을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 그리고 오랜만에 집에 일찍 퇴근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됐다.

그런데… 그런데, 10일 오후 9시 퇴근을 준비하던 사무실로 제보 전화가 날아들었다. 일순 편집국 문화연예부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기자 2명은 현장으로, 나머지 기자는 기사 작성과 추가 취재에 돌입했다. 마감시간 1시간30분 전이다.

오늘 야심한 밤에 취재·송고된 우리 기사를 독자와 네티즌들은 또 어떻게 평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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