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안재환씨의 죽음을 다루는 일부 언론들의 보도 태도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자살 장소, 시신 모습 등을 자세히 묘사하고, 배우자인 정선희씨가 실신해 실려가는 모습을 ‘화보’라며 내보내는 등 연예인의 죽음을 철저히 ‘상품’으로만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4년 보건복지부, 한국기자협회, 한국자살예방협회는 언론의 신중한 자살보도를 위해 ‘자살보도 권고 기준’을 마련한 바 있다.

이 기준은 △자살자의 이름·사진, 자살 장소 및 자살 방법, 자살 경위를 자세히 묘사하지 않을 것(인물이 공공의 관심 대상이 될 수 있는 경우에는 사건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경우만 보도) △충분하지 않은 정보로 자살동기를 판단하는 보도를 하거나, 자살 동기를 단정적으로 보도하지 말것 △흥미유발이나 속보 및 특종 경쟁의 수단으로 다루지 말 것 등을 내용으로 한다.

▲ 정선희씨의 예전 사진을 끌어다 1면으로 뽑은 9일자 <스포츠조선>. 제목은 ‘40억 사채의 비극’이다.
하지만 스포츠지와 주요 일간지의 온라인 닷컴 등은 안재환씨의 죽음에 대해 이같은 권고 기준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안씨가 죽은 차량 내부를 동영상으로 촬영해 보도하거나 안씨의 죽음을 이해하는 데 별로 필요하지 않은 정보들까지 기사화해 선정적 제목과 함께 보도하고 있다.

스포츠신문부터 살펴보자. 일단 제목부터가 매우 선정적이다. <일간스포츠>는 9일자 1면 톱 기사의 제목을 ‘사채가 죽였다?’로 뽑았다. 이어지는 3면에서는 안씨가 자살한 차량 내부 모습 사진을 확대해 보도하며 ‘안재환의 시체가 발견된 차량 내부에는 하얗게 탄 연탄과 빈 소주병, 소세지 등이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어 고인의 괴로움의 흔적을 엿보이게했다’고 설명했다.

안씨의 사채빚에 관한 루머가 돌았던 3월13일부터 9월8일 사망까지 일지별로 정리하는 ‘친절’도 잊지 않았다.

<스포츠서울>은 1면 톱의 제목을 “노숙자라도 돼 내사랑 봤으면…”으로 뽑았다. 이는 안씨가 고교 선배에게 보낸 사적인 문자 메시지 내용이다. 스포츠서울은 안씨의 죽음을 1면에서 3면에 걸쳐 다뤘으며, 3면에는 타신문들과 마찬가지로 안씨가 죽은 현장인 차량 내부 사진을 담았다.

<스포츠조선>은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정선희씨가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확대해서 1면에 실었다. 하지만, 이 기사에 실린 정씨의 모습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사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정씨는 남편의 사망 소식에 실신해, 취재진 앞에서 모습을 제대로 드러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스포츠조선은 비탄에 잠긴 정씨의 얼굴을 어떻게라도 1면 톱으로 기사화하기 위해 예전 사진까지 끌어다쓴 것이다. 고인과 유족의 심경에 대한 배려는 한치도 없이 말이다. 사진 제목은 ‘40억 사채의 비극’으로 뽑았다. 하지만 안씨의 ‘40억 사채 빚’은 아직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다. 또, 2면에서는 ‘참혹했던 자살 현장’이라며 차량 내부 사진을 게재했다.

▲ 9일 새벽 동아닷컴, 조선닷컴, 조인스닷컴의 안재환 관련 기사(왼쪽부터)
주요 일간지들의 온라인 닷컴 역시 스포츠 신문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비탄에 잠긴 유족 사진과 빈소 모습을 여러장의 스틸컷 사진으로 채워 ‘화보’라고 보도하거나 아예 동영상으로 차량 내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등 스포츠 신문보다 한 수 더 뜨기도 했다.

동아닷컴은 메인 왼쪽에 안씨가 죽은 차량의 내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안재환 자살현장 동영상’을 게재했다. 안씨가 자살도구로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연탄을 클로즈업하는가 하면, 널부러진 소시지와 물병 등도 화면에 담긴다.

조선닷컴 역시 안씨의 빈소를 ‘화보’라며, 여러컷의 사진으로 게재했다. 여러 각도에서 찍은 정선희씨의 실신 장면은 ‘정선희 포토’로 보도했다. 침통한 표정의 얼굴을 하고 조문을 온 연예인 정준하, 문천식, 홍석천, 알렉스 등도 보도하며 ‘조문마케팅’을 충실히 이행했다.

중앙일보의 온라인판인 조인스닷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메인에 ‘안재환 정선희의 결혼 사진’ ‘안씨의 영정 모습’ ‘정씨의 실신 모습’ 등을 한 컷으로 담아 드라마틱함을 부각시켰다. “안재환씨가 지난달 21일, 정씨와 전화통화 후 집에 들렀다” “정선희가 아직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는 등 불필요한 정보를 별도의 꼭지로 기사화하기도 했다.

▲ 스포츠칸(http://sports.khan.co.kr)의 9일 오후 화면(왼쪽)과 여기에 실린‘탤런트 안재환 사망 '충격'’이라는 제목의 ‘화보’(오른쪽).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경향과 한겨레는 어떨까. 경향신문의 자매지인 스포츠칸(http://sports.khan.co.kr)은 9일 정씨가 실신해 누워있는 사진을 홈페이지에서 톱으로 배치하고, ‘탤런트 안재환 사망 '충격'’이라는 제목의 ‘화보’를 보도하는 등 동아닷컴, 조선닷컴, 조인스닷컴 못지 않은 기량(?)을 선보였다. 해당 ‘화보’에서는 정선희씨가 실려가는 표정, 모자이크 처리한 안씨 아버지 사진 등이 보도됐다.

한겨레는 동아닷컴, 조선닷컴, 조인스닷컴, 스포츠칸처럼 ‘화보’나 ‘동영상’을 게재하진 않았으나, 연합뉴스 사진을 발췌해 안씨가 자살한 차량사진, 정선희씨가 실려가는 사진 등을 보도했다.

▲ 연예전문 케이블채널 ETN이 9일 저녁에 보도한 안재환 관련 기사.
연예전문 케이블채널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ETN도 ‘브레이크뉴스-안재환 사망소식’(8일 저녁 10시 방송)에서 안씨의 죽음을 특집으로 다뤘다. ETN은 안씨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빈소에 나타나는 장면에서는 ‘자식을 앞세운 부친의 안타까운 뒷모습’ ‘오열하는 안재환 어머니’라는 제목을 화면에 부각시켰다.

또, 안씨의 어머니가 차에서 부축받으며 내려 빈소에 가는 장면을 2번 반복해 보여주며, 갑자기 슬픈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내보내 안씨의 자살을 ‘한편의 비극 드라마’로 극화시켰다.

tvN ‘Enews’(2부)는 9일 새벽 2시 넘어까지 안씨의 사고 현장 주변을 끈질기게 화면에 ‘전시’했다. 특히, 안씨가 사망 전 들른 것으로 추정되는 한 가게에서는 안씨의 이름은 커녕 정선희씨 이름조차 정확히 모르는 가게 주인 부부의 되풀이되는 (“번개탄을 두 개 달라고 해서 우리는 안 판다고 했더니 그냥 갔다” “사람들한테 정선흰가 김선흰가 하는 여자 남편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따위의 하나마나 한) 얘기를 5분 넘게 내보내는 등 한 연예인의 죽음에서 뽑아먹을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끝까지 뽑아먹겠다는 의도를 감추지 않았다.

그러고도 이 프로그램 진행자의 클로징 멘트는 이랬다.

“안재환씨, 부디 편안한 곳으로 가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건 ‘애도’ 마케팅이라고 불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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