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대화(소통)가 외면보다는 낫다. 그러나 말이 오간다고 모두 대화는 아니다. 이를테면,

“아(애)는?… 묵(먹)자… 자자… 존나(좋아)?”

경상도 싸나이의 ‘과묵함’을 찬미(또는 풍자)하는 이 우스개 안에는 ‘거칢’은 있되 ‘대화’가 없다. ‘거친 대화’라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

-버럭 아내 : “지금 몇 시야? 그 잘난 핸드폰은 폼으로 들고 다니냐? 오늘은 당신이 애들 방에 가서 자.” (그동안에는 아내가 스스로 애들 방으로 옮겼다.)
-납작 남편 : “한번만 살려주라. 다시는 안 그럴게. 다음부터는 늦으면 전화라도 꼭 할게.”(“앞으로 늦지 않겠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술에 취해 이른 새벽 늦은 퇴근을 밥먹듯 하는 남편과, 그때마다 남편을 싸늘하게 외면하고 아이들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던 아내. ‘침묵의 나선’이 한없이 깊어가던 어느 날, 아내의 느닷없는 악다구니에 남편은 화들짝 놀라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빈다. 그날 밤, 아니 새벽, 부부는 한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내의 공격은 형식상 따뜻한 언어가 아니다. 거칠다. 그러나 적어도 외면하지는 않았다. 외면이 상대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면 거칠게라도 말을 건넨 건 상대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뜻이며, 상대의 반응을 ‘기대’한다는 뜻이다. 소통의 의지가 있고, 카타르시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아는?… 묵자… 자자… 존나?’의 일방성과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이다.

‘대통령과의 대화’가 오늘이다. 대화는 이미 한 차례 연기됐었다. 다른 때도 아닌, 국민이 한창 대화를 요구할 때였다. 청와대는 대화를 요구하는 상대(국민)의 숨결이 거칠다는 이유로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그러나 앞의 어느 부부 대화에서 보듯, ‘거칢’은 대화의 미덕은 아닐지라도 소통을 가로막는 결정적 장애도 아니다. 진짜 걸림돌은 ‘외면’(인정하지 않음)이다.

‘대통령과의 대화’ 게시판에 올라온 수많은 글들은 얼핏 매우 이중적이다. 수없이 꼬리를 물고 올라온 이 글들은 이번 행사를 향한 ‘기대’를 정량적으로 반영한다. 굳이 지상파와 케이블 보도 채널들을 총동원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내용을 가려도) 글의 제목에서 드러나는 정성적 냉소(외면)마저 가릴 수는 없다. 국민은 맘속으로 이번 행사에 기대를 걸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대’와 ‘냉소’는 하나의 집단심리 속에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두 심리를 조합하면 ‘열띤 냉소(외면)’이거나 ‘싸늘한 열정’ 둘 중 하나일 텐데, 이런 해괴한 모순심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이번 행사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변수가 될 것이다. 둘은 단지 조합 순서에서 차이가 날 뿐이지만, 본질은 극과 극이다. 물질계에서는 부글부글 끓는 드라이아이스와 딱딱하게 얼어붙은 ‘가스 하이드레이트’(저온·고압 상태에서 천연가스와 물이 함께 얼어붙어 있는 덩어리)쯤에 각각 해당할 것이다. 국민은 어느 쪽일까?

내가 볼 때 게시판 글들은 하나같이 전자다. “차라리 이날 저녁에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촛불 문화제를 개최하자. 이날을 ‘TV 안 보는 날’로 제안한다”는 어느 누리꾼의 글 제목은 6개 채널에서 똑같은 콘텐츠를 쏘아대는 텔레비전 앞에서 시청자들을 돌려세우기에는 역부족이겠지만, 텔레비전을 하릴없이 봐야 하는 국민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그 많은 눈과 귀가 대통령에 대한 불신을 강화할 단서를 찾기 위해 텔레비전 앞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국민은 마음의 빗장을 이미 8할쯤 닫아걸었다. 번지르르한 말로 두 차례 사과(“소통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한 뒤 언제 그랬냐는 듯 거푸 뒤통수를 때린 것(“정보 전염병을 경계해야 한다”)은 “니 바람 폈제” 하고 아내를 몰아붙여 실컷 두들겨 팬 뒤 억지로 보듬고 “존나” 하고 묻기를 밤마다 되풀이는 가정폭력 남편의 소통방식과 닮은꼴이다. ‘대화’하겠다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패널에 끼워 넣으려는 건 그 이튿날 집으로 직장 부하 불러들여 술상 보게 하는 꼴이다.

드라이아이스를 가스 하이드레이트로 착각하지 말라. 드라이아이스가 기체로 끓는 건 그나마 따뜻한 상온에서다. 국민이 게시판에 격렬한 글을 올리는 건 좋든 싫든 아직은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한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거칠더라도 진정성을 가지고 국민을 ‘인정’하려는 태도가 4시간 리허설 하는 것보다는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제발 연출하지 말고, 국민이 속내를 말할 수 있도록 내버려둬라. 정 궁지에 몰리면 이렇게 말하면 되지 않겠는가.

“이쯤 되면 막하자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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