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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같은 언론 환경에서 내가 만난 진짜 기자들”[인터뷰]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조 ‘언론담당’ 홍명교
박장준 기자 | 승인 2014.07.03 14:18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홍명교(31)씨가 삼성전자서비스 AS기사들을 만난 것은 지난해 5월, 노동조합 설립 두 달 전이었다. 그는 서울지역에 금속노조 서울지부에서 기사들에게 “노조 하자”고 설득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 그해 9월 노동조합 교육선전위원으로 결합해 ‘언론 대응’을 맡았다. 노조가 만들어진지 1년 동안 AS기사 셋이 명을 달리했다. 언론 담당 홍명교씨는 그 동안 ‘삼성 같은 언론’을 목격했다고 했다.

노동조합을 만들 당시 기자들 전화가 빗발쳤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전화가 멈췄다. 칠곡센터 임현우씨가 과로사하고 천안센터 최종범씨양산센터 염호석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경찰이 수십 년 만에 ‘시신탈취’를 했,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44일 동안 노숙했지만 취재하는 매체, 기자는 정해져 있었다. 대다수 언론은 이들의 싸움을 이건희씨의 건강상태, 이재용씨의 생일잔치보다 못한 취재거리로 여겼다.

실제 <미디어스>가 ‘굵직한’ 사안을 취재하며 만나거나 목격한 매체는 미디어충청 참세상 미디어오늘 프레시안 매일노동뉴스 한겨레 경향신문 레디앙 정도다. 홍명교 위원은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취재해 고비마다 힘을 준 기자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단독과 특종을 주지 않으면 기사를 실을 수 없다는 매체도 많았고, 매일 동향을 파악하고도 아이템이 까여 한 건도 쓰지 못한 기자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홍명교 교선위원은 언론의 모습이 “꼭 삼성 같았다”고 평했다. 특히 지상파와 보수언론은 거의 보도를 안 했다. 그는 “어떤 노조보다 ‘격정적’으로 시작했지만 일 년 동안 싸우면서 지칠 대로 지쳤고, 기사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며 “잊히지 않기 위해 사진이라도 찍힐 만한 사건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 회고했다. <미디어스>는 지난달 30일 고 염호석씨 노제를 지내러 가는 정동진행 버스에서 홍명교 위원을 만났다. 

   
▲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홍명교 교육선전위원(왼쪽). (사진=삼성전자서비스지회 진정용 조합원)

미디어스) 노동조합에 결합하게 된 과정을 소개해 달라.

노동조합 설립 2달 전인 지난해 5월 금속노조 서울지부에서 서울지역에 있는 AS기사들을 조직화하는 팀에 들어갔다. 그리고 9월 위영일 지회장에게 제안을 받아 지회에 결합했다. 그런 만큼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들어왔다.

미디어스) AS기사들의 첫 인상은 어땠나.

삼성에서 규모가 있는 노동조합, 그것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은 처음이다. 보통 사람들이 ‘친절한 삼성 직원’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겠다고 한 것이다. 7월14일 창립총회 때 삼성 유니폼을 입은 AS기사 400여명이 왔다. 그 동안 들었던 함성소리보다 훨씬 컸다. ‘격정적’이었다. 그때 ‘여기서는 반드시 노조가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노조에 합류하게 돼 기뻤다.

미디어스) 삼성전자서비스에 대한 첫 인상은 어땠나.

회사에 대한 인상은 처음부터 좋질 않았다. 출퇴근 시간 기사들에게 말을 걸고 선전물을 나눠주는데 대뜸 와서 “네가 뭐냐? 알기는 아냐”며 선전물을 뺏는 사람들도 있었다. 서울 서초센터에서 있었던 일인데 관리자 넷에 둘러싸인 적도 있다. 그때 혼자 있었는데 경찰을 불렀고, 그제야 해결됐다.

   
▲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홍명교 교육선전위원. (사진=삼성전자서비스지회 진정용 조합원)

미디어스)센터에서 있었던 일을 좀 더 얘기해 달라.

초기에는 센터별로 대응이 달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일치해 가더라. 노조가 확대되는 것을 경계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미디어스) 언론대응을 해왔다. 싸움이 치열했던 만큼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은데.

최종범 열사 투쟁 뒤 ‘리스차량’과 관련된 악의적인 기사가 먼저 생각난다. 당시 회사는 리스차량을 지원한다고 했는데 ‘사용확인서’에는 독소조항이 있었다. 사장이 요구하면 반납해야 한다는 것과 차량에 손상이 있으면 기사가 책임을 진다는 취지의 조항이었다. 노조는 이걸 비판했다. 그런데 한 언론은 ‘노조가 차량에 달린 GPS 때문에 리스차량을 거부해 조합원들이 불만이다’고 보도했다. 이런 기사가 몇 번 나왔다. 기사를 쓴 기자는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썼다”고 얘기했다.

미디어스) 지난해 최종범씨가 돌아가셨을 때도 기사는 거의 안 나왔다.

그렇다. 최종범 열사는 10월31일 돌아가셨고 장례는 12월24일 치렀다. 돌아가셨을 때 SBS 보도 빼고 거의 안 나왔다. 12월2일 상경 농성을 시작했는데도 그랬다. 돌파구를 만들기 어려웠다. 그리고 1월부터 게릴라파업(순환파업)을 시작했지만 역시 기사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미디어스) 지난 4월로 넘어가자. 그때 경총과 교섭이 결렬됐다.

타임오프(‘노조 전임자가 급여를 받으면서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제한하는 제도’로 근로시간면제한도제도로 불린다)와 노조 사무실 지원은 안 된다고 했다. 경총은 사실상 취업규칙 수준의 단체협약안을 제시했다. 지회는 삼성의 노조 고사화 전략으로 판단했고,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 미디어오늘 2014년 7월2일자 10면

미디어스) 이른바 교섭투쟁은 ‘교섭’이 우선이다. 언론에 공개할 내용이 있는 반면 아닌 것도 있다. 고민이 있었을 것 같은데.

딜레마에 빠졌다. 결국 언론과 사람들의 시선을 모아낼 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우리는 ‘강하게 싸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상경 노숙농성을 진행했다. 그게 5월10일 시작한 2박3일 서초동 본사 농성이다. 그리고 5월30일에 파업에 돌입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튿날 염호석 열사가 행방불명됐고, 결국 5월17일 정동진에서 발견됐다. 지회는 당장 전면 무기한 파업과 노숙농성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투쟁기간 동안 언론의 관심을 끊이지 않게 하는 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 우리는 사건을 만들어야 했다.

미디어스) 노조는 6·4 지방선거 사전투표에도 집단적으로 참여했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이재용 부회장을 만난다고 하자 중국대사관에도 갔다. 물론 기사가 많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삼성’ 문제니까 언론이 좀 붙었던 측면도 있다. 이 문제를 꾸준히 보도한 기자들도 꽤 있다.

사실 지회 입장에서는 같은 이야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인터뷰 기사는 꾸준히 나왔다. 물론 기자들의 고충을 이해한다. “단독기사를 주지 않으면 지면이 잡히지 않는다”는 기자들도 있었다. 진보언론에도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미디어스) 단독, 특종을 잡고 싶은 건 언론과 기자들의 고질병이기도 하다. 방송사는 그런 경향이 더 있다.

이 부분에서 삼성의 언론 장악력을 실감했다. KBS가 노숙농성을 보도했지만 취재한 지 거의 3주가 돼서야 기사를 내보냈다. 한 지상파 방송사 기자는 매일 전화를 해 동향을 파악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보도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결국 기사를 한 건도 못 썼다. 이 기자가 최근 농성장에 찾아왔다. 조합원들과 술을 마시고 울먹이면서 “기사를 못 써서 정말 죄송하다”고 하더라.

   
▲ KBS의 삼성전자서비스 관련 리포트 갈무리.

미디어스) 그래도 꾸준히 보도한 언론도 많다. 고마운 매체와 기자들이 있다면.

미디어오늘 이하늬 기자는 열사 관련 보도를 정말 열심히 해줬다. 묻힐 뻔한 임현우 동지 기사도 정말 열심히 써줬다. 참세상 윤지연 기자는 매일 같이 전화를 걸었고 이 문제에 가장 많이 관심을 기울인 기자 중 한 명이다. 프레시안 최하얀 기자는 조합원들이 노숙농성에 지쳐있을 때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인터뷰를 내줬다. 매일노동뉴스 김학태 기자는 대부분 언론이 기사를 내보내지 않을 때도 센터의 부당노동행위를 취재해 내보냈다. 시사인 송지혜 기자의 최종범 열사 관련 2박3일 르포 기사도 큰 힘이 됐다. 미디어충청 정재은 기자는 1년 내내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가장 열심히 취재했다. 오마이뉴스 기사들이 만든 ‘삼성전자A/S의 눈물’ 시리즈도 정말 큰 도움이 됐다. KBS 이슬기 기자에게도 정말 고맙다. 경남도민일보는 굵직한 투쟁이 많았던 경남지역 사건을 꾸준히 보도했다.

미디어스) 마지막으로 기자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투쟁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비공개 교섭을 하면서 기자들이 답답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노동조합은 언론과 미디어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도 흙에서 진주를 발견하듯 기사를 쓴 기자들에게 정말 고맙다. 상대는 삼성이었다. 그만큼 기자들의 고충이 있었다. 그래도 내부에서 싸워서 기사를 내준 기자들을 만났다. 삼성 같은 언론 환경에도 진짜 기자들이 있었다. 잊지 못한다.

박장준 기자  weshe@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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