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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노조 왕국 삼성에 민주노조 건설 자체가 성과이자 과제”[인터뷰]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남신 소장 “삼성 노숙농성이 민주노조의 심장”
박장준 기자 | 승인 2014.06.23 16:34

2007년 6월30일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을 하루 앞두고 이랜드 홈에버 노동자들은 홈에버 월드컵점을 점거했다. 그리고 이 점거는 장기파업으로 이어졌다. 저임금 여성 비정규직이 대다수인 이 싸움은 청와대가 주목해 큰 관심을 가질 정도로 반향을 이끌어냈다. 조합원과 시민들, 언론이 이랜드를 포위했고, 510일에 이른 초장기파업은 2008년 11월13일 끝났다. 네이버 웹툰 <송곳>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 등 파업 지도부는 당시 핵심간부 11명에 대한 권고사직을 받아들였다. 노조 싹을 자르려는 회사에 최고의 선물을 준 셈이다. 대신 노조는 현장에 돌아갈 조합원을 위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당시 수석부위원장이던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파업 직후 “노동부 공식집계 최장파업인 510일 장기파업. 조합원들의 몸과 맘은 한계를 넘어서서 상할대로 상했고 이겨도 이기는 게 아닌 싸움이 됐다”며 “가장 절박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투쟁을 포기하지 않는 한 가장 힘겨운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결국 애초 요구와는 한참 거리가 먼 투쟁 기간 중에 발생한 문제들이 핵심현안으로 자리잡는 고질적인 악순환 구조에 도리없이 갇히게 된다”고 썼다. 그는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가 새로운 조직화의 주체가 되는 것만큼 중요한 성과는 없다”고 썼다.

이랜드 파업 7년 뒤 이번에는 삼성이 포위됐다. 삼성전자서비스 간접고용노동자들은 지난해 7월 노동조합을 만들고 1년 가까이 쉬지 않고 싸웠다. 그리고 3명의 동료를 잃었다. 최종범에 이어 염호석까지 노조는 1년 새 두 번째 열사를 맞았다. 지난달 17일 경남 양산분회장 염호석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서에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질 못하겠으며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도 보지 못하겠기에 절 바칩니다”, “저 하나로 인해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라며 “지회가 승리하는 그날 화장하여 이곳에 뿌려주세요”라고 썼다. 동료들은 지난달 19일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앞에서 노숙을 시작했다.

   
▲ (사진=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기본급 없는 건당 수수료, 분급 임금 체계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주체는 ‘원청’ 삼성뿐이다. 따지고 보면 삼성전자서비스 간접고용노동자들의 월급은 원청 삼성전자서비스와 그 모회사 삼성전자가 하도급업체에 주는 도급비에서 나온다. 임금 체계를 만드는 일도 임금을 인상할 수 있는 것도 오직 삼성뿐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남신 소장은 19일 <미디어스>와 인터뷰에서 “삼성의 경우, 센터별로 제각각인 급여체계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쟁점이 될 정도로 급여체계가 불투명하다”며 “원청 삼성이 직접 표준화된 임금체계를 만들어 저임금과 건당 수수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이남신 소장은 “근본적으로 삼성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위장도급이고 불법”이라며 “저임금, 건당 수수료, 노동인권 침해, 최저임금법 위반 등 모든 악의 근원이 여기서 나온다. 결국 직접고용 정규직화가 근본해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하도급 구조 개선은 삼성에게 독약일 수 있다.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게 되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였다. 지난 1년 노조의 싸움으로 여론은 절대적으로 삼성에 불리하다. 게다가 삼성은 현재 경영권 승계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가 서비스부문을 통합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이 맥락에서 보면 납득이 된다.

한국을 쥐락펴락하는 재계 1위 삼성 입장에서 노동자 700여명은 언제든 진압 가능한 시위대일뿐이다. 이남신 소장은 “노사관계는 힘의 관계가 핵심”이라며 “삼성은 이랜드보다 더 악질일뿐더러 전근대적인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노사 둘만 놓고 보면 아예 교섭에 나서지도 않고 밟아 죽인다고 나섰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소장은 “삼성의 딜레마는 이건희 회장의 건강 상태, 3대 세습의 불투명성, 이재용 체제에 대한 우려, 여기에 백혈병과 비정규직 문제”라며 “사회적 여론이 삼성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에 그나마 교섭이 가능한 힘의 균형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농성 일주일째, ‘원청’ 삼성은 교섭을 요청했다. 조건은 삼성 이름을 가린 블라인드 일대일 교섭이었다. 노조 지도부 둘이 구속된 상황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지회장 위영일), 그리고 금속노조는 이를 ‘고민 끝에’ 받아들였다. 노조는 공식 보도자료에서도 삼성 이름을 지우고 ‘회사 측’이라고 했다. 노조 내부와 언론에서 ‘깜깜이 교섭’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의 중재와 개입으로 삼성의 교섭 참여가 공식화됐으나 삼성은 여전히 비공개를 고집하고 있다. 삼성은 이 과정에서 처음보다 후퇴된 안을 던지며 노조를 압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 (사진=미디어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열흘 정도 이어진 비공개 교섭 결과를 소식지를 통해 공개했다. 임금체계, 노조활동, 고 염호석씨 장례 관련 삼성과 노조의 제시안을 모두 공개했다. 최대 쟁점은 임금이다. 삼성이 애초 제시한 ‘월 70건 기준 1건 초과시 3만 원’ 안을 “계산을 잘못했다”며 뒤로 물릴 정도였다. 조합활동 보장 등에서 삼성의 안은 모두 후퇴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는 삼성이 제시한 안에 대해 확대간부 회의를 열고 밤샘 논의 끝에 17일 수정안을 제시했고, 삼성은 일주일 정도 시간을 달라고 한 상황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중재에 나선 만큼 이번 주중 교섭이 타결될 가능성도 있다.

사실 금속노조는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삼성의 조건을 수용했다. 따지고 보면 어용노조 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점에서 삼성 싸움은 이랜드 파업과 닮았다. 이남신 소장은 “이랜드 투쟁의 최종 안은 지도부가 판단한 것이었고, 최종 교섭은 비공개였다”고 말했다. 그는 “죽는 것 빼고 다 해봤지만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만약 이랜드가 홈에버를 홈플러스에 매각하지 않았다면 교섭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이 교섭 시기고, 여기서 일괄 타결 안을 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사회적 여론이 우리에게 쏠려 있었다. 지도부 해고 안을 들고 비공개로 교섭했다”고 회고했다.

이남신 소장은 “블라인드 교섭에 대한 평가를 두고 말이 많지만 투쟁주체들의 판단을 중심에 둬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혹여나 밖에서 보기에 잘못된 결정이더라도 투쟁주체들이 온전히 질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노숙농성 중인 조합원들이 어떤 수준의 요구를 쟁취해야 자신감을 가지고 현장에 복귀할 수 있느냐는 문제”라며 “민주적 소통과 토론을 통해서 조합원이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을 자신들이 직접 받아안고 가게 하는 것이 요구안의 수준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현장에 돌아가 노조 깃발을 유지할 노동자들이 직접 결정할 문제라는 것.

“지금 이 순간에도 510일 파업의 후유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조합원들이 많다. 가슴 깊이 박힌 생채기처럼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사는 조합원들도 많다. 치열한 파업 과정 속에서 무르익은 눈물겨운 동지애 그 이면에 자리 잡은 고통의 크기를 쉽게 가늠할 수 없다. 이랜드투쟁이 이럴진대 다른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고통은 더 말해 뭣하겠는가. 이제야말로 지난 40여년 갖은 풍상 속에서도 살아남은 민주노조운동과 10여년 고난에 찬 비정규운동을 냉철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정말 이 고통을 줄이고 끝낼 수 있다면 끝내야 한다. 쉽게 싸워서도 안 되고 장기 투쟁을 과대평가해서도 안 된다.” (이남신, 2008)

이남신 소장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투쟁의 근본요구는 직접고용 정규직화이지만, 간접고용 싸움의 특성 상 지금 삼성전자서비스 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노조의 생존과 조직의 확대”라며 “1700여 명의 노동조합이 삼성에서 안착하고, 일상적인 활동을 해나가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의 잘못을 까발려 모든 것을 일거에 돌려받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는 없다”며 “어렵게 깃발을 올린 민주노조가 중장기적으로 조직을 확대할 수 있는 조건을 이번에 꼭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숙농성 700명은 삼성 민주노조의 심장”이라고 말했다.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고집하는 이상 삼성의 타깃은 ‘민주노조 깨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이남신 소장의 생각이다. 그는 “‘직접고용 정규직화’라는 성공과제에 초점을 맞춰 보면 지금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보면 비판할 점은 많지만 이런 관점은 굉장히 어리석은 비판일 수 있다”며 “과반 이상의 민주노조를 중장기 목표로 두고 실질적으로 현장권력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배가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삼성전자서비스 투쟁을 평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삼성에서 과반 노조를 만든다면 그것만으로 굉장한 성과다. 무노조 왕국에서 이룬 성과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 이남신 소장

“미흡한 것은 많다. 일이 급박하게 진행되면서 지도부와 집행부에 고민이 많을 것이다. 연이은 열사투쟁으로 굉장히 격앙돼 있다. 작게는 엄청난 비용의 식비에서부터 뒤틀리는 교섭까지 복잡한 사정이 많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좀더 내부 소통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장기파업, 노숙농성을 해본 사람은 안다. 30일이 넘으면 간부와 조합원이 따로 있지 않다. 모두가 지도부다. 지금 삼성 지회 상황이 그렇다. 공개든 비공개든 이 정도 상황이면 모두가 정보를 공유하면서 싸운다. 삼성은 특히 그렇다. 조합원은 바보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결사항전, 장기투쟁이야말로 오히려 쉬운 길일 수 있다.”

이남신 소장은 “삼성 노동자들은 굉장히 잘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대단위가 헌신적으로 결합하고 있어 일부 진통은 있겠지만 잘 정리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삼성 투쟁이 상징적이고 전국적인 싸움인 만큼 밥 한끼의 연대가 더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투쟁에 대한 평가는 당사자들이 가장 객관적일 수 있다”며 “왜냐하면 결국 자신이 돌아가 일하고, 조합활동을 할 현장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삼성전자서비스 간접고용노동자들에게 “교섭이 균형을 잡고 있는 지금, 스스로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며 “이 싸움이 장기화돼 상징으로만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장준 기자  weshe@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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