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10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술이 거나하게 들어간 한 감독이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영화인들은 부산에 자위하러 온다고. 술기운을 빌어, 한 치의 부끄럼 없이 긍정했다. 곱씹을수록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맞다. 부산영화제에는 자위하러 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 올해로 12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 4일부터 12까지 9일간의 '축제'를 마쳤다. 사진은 부산 해운대 요트경기장에 위치한 야외상영장에서 열렸던 개막식 ⓒPIFF
나를 포함한, 영화에 빌붙어 입에 풀칠하는 매체와 소속기자들도 마찬가지다. 부산영화제는 취재를 위한 취재의 장소로 전락한지 오래다. 올해도 어김없이,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아니 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영화제를 취재한다는 매체 혹은 소속기자의 자위를 위한 자리다. 부산영화제 관련 기사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진지 오래다. 저녁부터 영화제 측과 영화관계자들이 마련한 파티를 하루에도 몇 탕씩 오가며 오전부터 스타들을 찾아 발품을 팔아야했던 취재의 고통을 달랜다는 명분. 그 명분은 이제 집단 자위를 통해 자연스레 그리고 공공연히 주목적이 된지 오래다. 취재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불야성을 이루는 해운대 바닷가의 횟집으로 장소를 이동, 새벽까지 자위는 이어진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절정의 쾌감을 느끼려면 이들에게 체력은 곧 능력이다.

▲ 부산영화제 행사 중 좁은 장소로 진행에 차질을 빚었던 영화 'M' 기자회견장. '기자를 무시한 파행운영'이라며 사진기자들이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과 각을 세웠다. ⓒ조이씨네
자위는 기사를 통해서도 이뤄진다. 그 기사들에 따르면 엔니오 모리꼬네를 시작으로 기무라 타쿠야, 강동원 등이 참석한 행사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들은 부산영화제의 근간을 흔들어놓을 만한 일들로 보일 정도다. 현장에 있었지만, 엔니오 모리꼬네는 차치하더라도 기무라 타쿠야가 사용한 마이크에서 하울링이 났다한들, 강동원이 참석한 기자회견 장소가 좁았다한들 (짜증이 좀 났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무슨 국제 망신이요, 기자를 무시한 파행운영인지 심히 궁금하다. 진행요원과 실랑이를 벌이던 한 기자가 김동호 집행위원장에게 대놓고 기자들 대접이 형편없다고 운운하던 모습은 극에 치달은 자위의 한 단면이다. 덕분에 '굴욕'을 당했던 한 여배우의 포토뉴스, 갈수록 비대해지는 영화제의 외형에 비해 내실이 부족하다는 (해마다 반복되는) 분석 기사는 자위 축에도 못 낀다.

▲ 영화전문포털 '조이씨네' 서정환 편집장
물론, 모든 매체와 모든 기자들이 자위를 위해 부산을 찾지는 않는다. 하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부산영화제에 참가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 유혹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제의 규모는 더욱 커질 테고, 부산을 찾는 스타들은 더욱 많아질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를 좇는 매체와 기자들의 의무와 책임은 더욱 엇나간 방향으로 표출될 것 또한 명약관화다. 더 자극적인 자위를 위한 기사들이 생산될 테고, 그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한 술자리에는 감독, 배우, 스탭은 물론이고, 영화제작자, 마케터, 매니저들까지 합류하여 더욱 질펀해질 것이다. 순수하게 영화를 위해 부산을 찾은 관객들과 소수 영화인들을 제외하고, 해운대의 밤바다는 스스로 영혼을 달래는 이들의 손길을 어루만지는 넉넉함으로 가득하다.

올해는 부산을 찾은 또 다른 부류가 있었다. 이명박, 권영길, 정동영. 어떻게 알았는지, 그들도 자위를 위해 먼 길 마다않고 부산영화제에 참석했다. 때마침 부산영화제 사상 처음으로 개막일에 비가 내렸다. 부산영화제의 질펀함은 최고조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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