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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에 다시 본, 어느 철도노동자의 죽음[노바리의 시네마 돋보기] 켄 로치 ‘네비게이터’
노바리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 승인 2014.05.28 11:49

1996년의 어느 날, 켄 로치는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자신을 전직 철도 노동자라고 밝힌 롭 도버라는 남자가 보낸 이 편지에는 그가 18년간 일해 오면서 경험한 이야기들이 쓰여 있었다. 마가렛 대처의 시대에도 끝까지 민영화의 길을 면했던 영국 철도가 결국 민영화된 때였다. 롭 도버는 정리해고로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철도 노동자 중 한 명이었다. 다만 다른 철도 노동자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굳건한 신념을 소유한 사회주의자이자 노조 활동가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바로 이 신념 때문에 철도 노동자의 길을 택했다. 

편지에 흥미를 느낀 켄 로치는 각본을 보고 싶다고 답장한다. 마침 모래언덕에서 떨어져 힘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일을 나갈 수가 없었던 그는 이참에 생애 최초로 ‘시나리오 쓰기’라는 과제에 도전해 보기로 한다. 그는 6주에 걸쳐 자신의 경험과 아이디어들을 정리해 초고를 완성했고, 이를 켄 로치에게 보냈다. 켄 로치는 초고를 본 소감을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다. “그의 시나리오는 삶으로 충만했고 캐릭터와 이야기가 가득했다.”
 
   
▲ 영화 '네비게이터'의 한 장면 (Sixteen Films)
 
영국 철도가 민영화된 직후의 스산한 풍경을 생생하게 담아낸 켄 로치 감독의 <네비게이터>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러나 <네비게이터>의 영화화 과정이 쉽게 진행된 건 아니었다. 구체적인 영화 제작의 준비가 갖춰지기까지는 이후로도 2년이 더 걸렸고, 마침내 1998년이 돼서야 롭 도버는 시나리오 작가로서 정식으로 영화화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된다. 언제나 켄 로치와 함께 일해온 프로듀서 레베카 오브라이언, 촬영감독 배리 애크로이드, 편집자 조너선 모리스, 음악감독 조지 펜튼, 프로덕션 디자이너 마틴 존슨이 <네비게이터>를 위해 합류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계약하고 불과 1주일 후, 롭 도버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는다. 자신이 희귀 폐암의 일종인 중피종에 걸렸으며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18년간 일했던 철도 작업장에서 계속 노출되었던 석면이 바로 발병원이었다.
 
그러나 그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평생 고집스럽게 투쟁가의 삶을 살면서 언제나 낙천적이고 유머를 잃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레 포기한 의사들을 보며 “당신들보다 더 오래 살겠다” 다짐하며 전세계로 치료법을 수소문했다. 그의 친구들은 그를 돕기 위한 펀드를 조직했고, 치료법을 찾고 지지를 받기 위한 인터넷 페이지도 열었다.
 
한편 그는 민영화가 진행되는 와중 아직까지 남아있던 회사들을 대상으로 법적 투쟁을 시작한다. 자신의 병에 대한 책임을 공식적으로 묻는 소송이었다. 그 와중에 “석면의 위험성과 심각한 노출도를 회사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발견됐다. 회사 내부 메모에, 이 석면 지붕을 제거하는 데에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씌여 있었다. 
 
마침내 그는 법정에서 승소했고 완성된 영화를 미리 볼 수는 있었지만, 영화가 개봉하는 것까지 보지는 못했다. 10대 후반 사회주의자가 된 이래 평생을 노동자로, 또한 활동가로 살았던 그는 2001년 2월 20일 결국 눈을 감았다. 그의 나이 45세였다. 영화는 그해 9월이 되어서야 토론토영화제와 베니스영화제를 통해 첫 선을 보였고, 영국에서는 12월에야 TV를 통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그가 죽은 지 사흘 후, 가디언 지에 켄 로치가 쓴 추모사가 실렸다. 켄 로치는 그 글을 “노동계급은 챔피언을 잃었다”고 끝맺었다(링크).
 
   
▲ 영화 '네비게이터'의 한 장면 (Sixteen Films)
 
 
그의 추모사를 통해, 그리고 10년 뒤 켄 로치 회고전에서도 여전히 그의 이름을 언급하며 관객에게 환기시키는 영화 제작팀을 통해, 영국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우리 역시 롭 도버의 이름과 삶을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게 되었다.
 
롭 도버의 경험과 삶, 나아가 생명과 죽음까지도 투영된 영화 <네비게이터>는, 그렇기 때문에 영국 철도의 민영화 이후 그 여파가 무엇이었는지 매우 구체적인 차원에서, 구체적인 인물들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 ‘경쟁’과 ‘효율’을 외치며 도입된 민영화였지만 이윤의 극대화를 목표로 한 회사의 정책 하에서 어리석고 비효율적이며 우스꽝스러운 일들까지 벌어진다.
 
노조는 지원자에 한해 명예퇴직을 한다는 협상에 합의했지만 회사는 합의를 아무렇지 않게 뒤집고 전원 정리해고를 강제했다. 철도라는 복잡하고 유기적인 생명체의 전문가였던 철도 노동자들은 어제와 같은 일을 하면서도 인력파견업체에 소속되어 일당을 받는 일용 노동자가 된다. 이윤을 위하여 각종 안전 규칙은 무시되고 녹슨 선로는 방치된다. 롭 도버는 민영화 이후 노동자들의 삶이 파탄나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도 철도 안전 규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을 걱정했다. 이는 필연적으로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영화 직후 영국 철도는 매년 대형 인명 피해를 동반한 사고가 났고, 롭 도버가 눈을 감기 직전인 2000년 10월 햇필드에서 발생한 탈선 사고는 여전히 민영화의 폐해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그리고 먼저 언급되는 사고이다. 그리고 이윤을 위해 안전이 무시되는 상황은 <네비게이터>에서도 후반부 이야기를 떠받치는 중요한 기둥이 된다. 노동자의 삶과 목숨, 그의 가정 모두 손쉽게 파괴되고, 이는 사람의 가치관과 내면까지도 하루아침에 바꾸어놓는다. 그래서 이 영화의 엔딩은 켄 로치의 여타 90년대 영화들보다 훨씬 씁쓸하고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이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되는 <네비게이터>는 2001년 노동영화제에서 상영된 후 13년 만에 다시 상영되는 것이다. 노동자뉴스제작단에서 배급하는 비디오 외에, 상업적인 배급망을 통해서는 개봉은커녕 DVD도 출시되지 않았다. 그런 만큼 이 영화가 이번에 큰 스크린에서 35mm 필름으로 상영되는 건 매우 드물고도 귀중한 기회이다. 더욱이 작년 수서발 KTX가 결국 민영화의 단계를 밟고 이후 착실하게 영국식 철도 민영화의 단계를 밟아가고 있는 지금, 이윤을 위해 각종 안전 규칙들을 무시했다가 대형 참사가 나고, 그 구조마저 이미 민영화되어 있었다는 현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지금의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 영화 '네비게이터'의 한 장면 (Sixteen Films)
 
이 영화가 보여주는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싶다. 있어서는 안 될 대규모의 인명 피해 사고가 났을 때, 우리는 너무나 손쉽게 희생자들의 숫자를 떠들고 그들에 대해 서둘러 추모의 눈물을 흘린 뒤 곧 잊어버린다. 이번에는, 적어도 내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들 하나같이 잊지 않겠다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도록 두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각자 답들을 찾고 있는 듯 보인다. 다행한 일이라 생각한다.
 
거기에, 나는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대규모의 어린 목숨들의 죽음 사이로, 보이지 않고 말해지지 않는 죽음들 역시 필사적으로 보고 찾아내고 말해야 한다고. 소위 ‘효율적 운영’에서 제일 먼저 인원이 감축되고 안전이 무시되는 상황은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하고, 이 노동자들의 과로와 희생이 다시 필연적으로 대규모 참사로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늦은 뒤에야, 이미 보이지 않고 은폐되는 피해와 죽음들이 한참 진행된 뒤에야, 죄 없는 아이들이 그렇게나 속절없이, 그렇게나 많이 떠나고 나서야 뒤늦게 후회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기 전에 분명히 있었을 어떤 죽음들, ‘은폐된’ 죽음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노동자의 상황은 언제나 가장 먼저 생략되고 지워진다. 그가 소위 ‘데모’나 하는 ‘사회 불순세력’에 속해 있었다면 더욱 그렇다. 이제 죽음조차 평등하지 않은 이 시대에, 죽음은 선별되고 서열화된다. 어떤 이는 응급실에 실려가는 것만으로 신문의 톱뉴스를 장식하지만 어떤 이들의 죽음은 그저 숫자로만 지칭되고, 어떤 이들의 죽음은 헐값에 넘어간다. 어떤 죽음은 심지어 의도적으로 지워진다.
 
그러나 숫자로만 지칭되는 죽음을 적극적으로 기억하겠다 다짐할 때, 또한 고의적으로 지워진 죽음을 복원하려 할 때 ‘정치적’이라는 모함이 뒤따른다. ‘종북 선동세력’을 운운하던 이들의 헛소리가 아닌, 거리로 나와 ‘국가의 제 역할’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는 비난이 덧씌워진다. 그러나 우리는 모함을,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더욱 더 적극적으로 기억해야 하고, 기록해야 한다. 지워지는 죽음일수록 더욱 필사적으로 찾아내고 기록해야 한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영화의 전반부가 민영화 이후 철도 노동자들이 처한 참담한 현실의 과정을 차근히 다룬다면, 후반부는 이윤을 앞세워 안전 규정들이 차례로 무시되는 상황을 다룬다. 정리해고 이후 인력파견업체에 속해 그날 그날 일을 받던 믹은 어느 날 현장에 나갔다가 영국 철도의 안전 규정이 싸그리 무시된 채 작업을 요구받고 이에 항의한다. 8명이 한 조로 일해야 하는 작업을 고작 4명이서 해야 하는 데다, ‘열차 감시자’를 세우고 신호수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의 기본 절차조차 생략된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결과는 요주의 인물로 찍혀 블랙리스트에 오른 뒤 6주간 동전 한 푼조차 벌 수 없는 실업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후 그는 끔찍한 선택을, 자발적으로 하게 된다. 생계가 직접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에서 스스로 인간다움과 노동자성을 포기한, 과거 노동자-인간이었던 존재들의 모습. 
 
그런데 이 영화의 첫 상영 이후, 인터넷 뉴스에서 접한 어느 철도 노동자의 죽음이 나를 더욱 참담하게 한다. 원래대로라면 ‘열차 감시자’가 있어야 하는 작업에서 그는 열차 감시자도 동료도 없이 혼자 일하다 죽었고, 심지어 26시간째 일하던 상태였다. 2001년에 1995년을 배경으로 영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막 보고난 후 그 영화의 한 장면이 2014년 대한민국에서 그대로 실제로 일어나는 이 현실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영화와 현실의 거리가 왜 이다지도 가까운가. 더욱이 그 영화를 본 직후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는 그 철도 노동자의 죽음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을 것 아닌가. 
 
<네비게이터> 뿐만이 아니다. “가난한 애들이 수학여행은 불국사로나 가지...”라는 어느 목사의 발언을 접한 직후 거의 10년 만에 다시 본 <레이닝 스톤>에는 “아이 평생 단 한 번의 성찬식이니 예쁜 새 성찬식 드레스를 입히고야 말겠다”며 고군분투하는 가난한 실업자 빚쟁이 아버지가 나온다. <하층민들>의 상영이 끝난 토요일 주말 저녁 극장에서 나오니 바로 앞 보신각에서는 송경동 시인이 연행되고 있다.
 
카메라와 스크린이라는 매개와 어느 정도의 시간을 통과해 우리의 민낯의 현실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게 해주는 영화라는 매체가, 현실과 더없이 밀착돼 있는 이 상황이 안겨주는 현기증. 더욱이, 20년 전 먼 영국땅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이 말이다. 대체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켄 로치의 영화들이 던져대는 질문들이, 너무나 무겁다.
 

노바리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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