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관련 보도를 보면서, 조선일보의 실체를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31일 오전 10시부터, 옥천언론문화제 일환으로 옥천군 동이면 금강2교 근처에서 진행된 ‘제6회 조선일보반대 옥천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신동호(34)씨.

부인과 자녀 둘까지 네 식구가 울산에서 3시간 넘게 달려 도착했다. 옥천 조선일보 마라톤대회를 안 건 2~3년 전이지만 참가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 가족걷기에 참가한 신동호씨(가슴에 6132번호표를 달고 있다). ⓒ송선영

‘무엇’이 그와 그의 가족을 옥천으로 이끌었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언론의 실체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습니다. 사회 문제 자체에 큰 관심이 없었죠. 이명박 정권이 저를 변하게 한 겁니다. 언론을 비롯한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조선일보에 대해서도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죠. 공부를 하면 할수록 조선일보의 안 좋은 점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마라톤에 참가한 것이 아니라, 조선일보 반대에 참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족걷기’ 코스에 참가한 신씨 가족의 모습을 굳이 설명하자면, 신씨가 세 살 된 작은아들을 무동 태우고, 그의 부인은 다섯 살 된 큰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늦여름 뙤약볕 들녘가에서 조선일보 반대를 위한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는 것이었다.

▲ 제6회 조선일보반대 옥천 마라톤대회. ⓒ송선영

“조선일보 반대하는 이유? 딱 짜증이 나기 때문”

그가 조선일보를 반대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미국산 쇠고기 보도'였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이유인 과거 ‘친일행적’까지 굳이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최근 기사 내용들만 보더라도 “너무나도 어용 언론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조선일보의 최근 보도 행태를 이렇게 표현했다.

“딱 짜증이 난다.”

그는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조선일보의 모습이 어떠하길 바랄까?

“20년 뒤가 아닌 지금 당장 조선일보가 없어지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힘든 일이죠. 그때 가서라도 부디 더 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의 문제점을 알고, 그래서 제가 죽기 전에 조선일보를 포함한 사회가 갖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이 모두 쓸려 내려갔으면 합니다. 오늘 이 길을 걷는 것도 그런 먼길의 첫 걸음이 아닐까요.”

그는 “옥천에서 조선일보 반대 운동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몰랐다”며 마라톤 시작 전 한용택 옥천군수의 축사를 들었을 때 느낌으로 이야기를 돌렸다.

행사 시작에 앞서 한용택 옥천군수는 “옥천이 ‘언론개혁의 성지’라는 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언론문화제 일환으로 진행되는 마라톤대회에서 옥천의 푸르고 아름다운 산과 금강을 통해 환상적인 풍경과 인심을 느끼길 바란다”고 말해 참가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또 축사가 끝난 뒤, 마라톤 시작을 알리는 총까지 친절히(?) 쏴, 또 한번 참가자들의 큰 호응을 얻어냈다.

신씨는 “옥천군수라면 분명 공직자이고, 어떻게 보면 조선일보와 정권 이런 쪽과 같은 편일 텐데 이런 자리에 나왔다는 것 자체가 기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옥천과 울산의 ‘3시간 거리’ 쯤은 아무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꾸준히 올 것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 마라톤 시작에 앞서, 참가자들이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송선영

600명이 참가한 ‘조선일보반대 옥천 마라톤대회’

시민참여네트워크 국민의힘과 옥천신문사의 주관으로 진행된 이날 조선일보반대 옥천 마라톤대회에는 약 600여명이 참가했다.

하프마라톤(20km), 단축마라톤(10km), 건강달리기(5km), 걷기(5km), 가족걷기 코스로 진행된 이번 대회에는 인터넷 동호회 차원에서 참가한 사람들도 많았으나, 유모차를 끌고 아이를 어깨 위에 태운 가족 단위 참가자들 모습도 눈에 띄었다.

참가자들은 걷고 뛰면서 “조중동은 폐간하라”를 외쳤다.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라는 문구가 적힌 ‘특별 의상’을 차려입고 뛰는 강아지 몇 마리도 눈에 띄었다.

▲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이란 문구를 몸에 감은 강아지. ⓒ송선영
이날 마라톤대회는 먹을거리가 풍성하게 준비됐다.

‘촛불다방’에서 음료와 생수를 제공하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바나나와 수박, 팥빙수를, 또 다른 한쪽에서는 국수와 두부, 막걸리를, 촛불집회 때마다 단골손님으로 등장한 다인아빠는 찐고구마를 제공했다.

원활한 행사를 도운 것은 옥천군수뿐만이 아니었다.

▲ 한 전경이 웃으면서 팥빙수를 받아가고 있다. ⓒ송선영
교통 통제를 담당한 옥천경찰서 소속 전경들이 웃으면서 팥빙수를 받아가자, 주변에 있던 참가자들은 “서울에서 전경하지 않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라” “경찰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데가 어딨냐”며 덕담 한 마디씩을 건넸다.

▲ 아이의 옷에 번호표를 달아주고 있다. ⓒ송선영
버거울 정도로 큼지막한 옷을 걸친 채 부모와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 20년 후, 이 아이들이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언론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은 비록 부모의 손에 이끌려 함께 나왔지만 20년이 지난 그때, 이들 스스로 조선일보를 ‘선택’할지 문득 궁금해졌다.

▲ 마라톤에 참가한 아이들이 결승선을 향해 들어오고 있다. ⓒ송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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