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서울 상경을 촉발시킨 장본인이었던 KBS 김시곤 보도국장이 9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김시곤 보도국장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한다기 보다는 상황이 이렇게 된 배경과 배후에 노조와 타 매체의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는 점을 집중 설명했다. 이어 자신의 사의와 함께 길환영 KBS 사장 역시 보도국의 독립성을 침해했다며 사퇴할 것을 요구했다. 엇비슷한 시간, 길환영 KBS 사장은 청와대 앞에서 농성하고 있던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찾아 '공개 사과'했다. 한국 방송 역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다.

<미디어스>는 8일 밤부터 세월호 참사에서 KBS가 겪고 있는 '수모'와 '곤란'이 단순히 KBS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공영방송이 처한 위기의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는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김시곤 보도국장의 발언 전문을 공개한다. 김시곤 보도국장은 KBS의 세월호 보도에 대해 "건강하고 보편 타당한 사고와 시각을 가진 시청자들이 판단"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시곤 보도국장의 발언 역시 그들의 판단을 위해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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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시간이면 저희가 보도국 오후 편집회의를 하는 시간인데 편집을 못하고 기자회견으로 오게 됐습니다. 편집회의에는 보통 보도국의 여러 기자들이 참석합니다. 보도국의 기자들 함께 했습니다. (오세균 뉴스제작3부장이 김시곤 보도국장 왼쪽에 배석했다) 보도국의 부장들이고 저와 같이 뉴스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KBS 보도국장입니다. 먼저 오늘 저희 기자회견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의 고통과 슬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우리 사회, 특히 언론과 노동운동이 좀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기원하면서 기자회견 시작하겠습니다.

(김시곤 보도국장은 6일 낸 보도국장의 입장을 거의 그대로 읽다시피 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그 동안 KBS 및 KBS 간부에 대해 일방적 주장을 제기하며 KBS의 이미지와 명예를 훼손해 왔고 언론노조 기관지로 출범한<미디어오늘>을 비롯한 일부 매체는 언론노조KBS본부의 주장을 릴레이식으로 인용보도하면서 KBS에 대한 비난을 확대재생산해 왔습니다. 그동안 언론노조KBS본부의 주장에 대해 일일이 대꾸할 가치를 못느껴 자제해 왔으나 이번에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사안은 묵과할 수 없기에 소상히 밝히고자 합니다

1. KBS보도국장이 ‘세월호 사망자는 교통사고에 비하면 그리 많지 않다’라고 발언했다는 언론노조 KBS본부의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 뉴스 특보가 한창일 때 보도국 한 부서원들과의 점심 식사 자리가 있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세월호 참사는 기본적으로 안전불감증에 의한 사고였다 따라서 이를 계기로 안전불감증에 대한 뉴스시리즈물을 기획해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진의는 그랬습니다.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낳고 있는 교통사고 사망자가 한해 1만명선에서 6천여명 선으로 내려오긴 했지만 여전히 한 달에 500명 이상 숨지고 있는 만큼 교통사고에 대한 경각심도 일깨워야 한다라고 발언한 내용을 놓고 언론노조 KBS본부가 전체 내용은 거두절미한 채 일방적으로 왜곡 선동한 것입니다.

▲ 9일 오후 길환영 사장 퇴진 주장과 함께 사의를 밝힌 김시곤 KBS 보도국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4일 발언을 해명하기 위해 언론노조 KBS본부 노보 편집국장에게 전화도 하고 부위원장에 항의하고 문자까지 보내는 등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도 전혀 미동도 없었다. 마치 한 번 당해봐라 하는 것이었다. 진보 매체에서는 이를 기사화하고 심지어 오늘 아침에는 이 글을 토대로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은 사설까지 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언론의 현실입니다.

이번 자리를 빌어 진중권 교수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진중권 교수는 교통사고를 언급한 것 자체가 정치적이라고 언급하며 트윗을 했습니다. 자신이 정치적이니까 모든 것이 정치적으로 보이는 것 아니냐는 질문 하나, 그리고 <한겨레신문>이, 지난 6일자 신문입니다. 이렇게 식사자리에서의 언급 정도가 아니라 교통사고 사망자수와 세월호 희생자 수를 정식으로 비교한 기사는 왜 정치적이냐고 비난하지 않느냐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언론노조KBS본부가 저의 발언을 문제 삼는 이유는 제가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보도국장이라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보도국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매우 위험하고 상식에 어긋난 생각을 뉴스에 반영해 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뉴스에 반영할 것이기에 문제제기를 하노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되묻고자 합니다. KBS뉴스에서 언론노조KBS본부가 주장하는 그런 문제점이 발견됐는가? 특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언론노조KBS본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세월호 참사가 KBS뉴스에서 별것 아닌 사안으로 다뤄졌던가?

세월호 참사 이후 가장 많은 고민을 하고, 가장 장시간 그리고 가장 열심히 일했던 사람은 언론노조KBS본부의 간부들이 아니라 진도에 내려가 있던 백 여명의 기자들과 50여명의 중계기술요원들, 그리고 본사와 지역국의 기자들과 방송요원들이며 보도국장 또한 지금까지 이들과 단 하루도 함께하지 않은 적 없었다는 점과 KBS가 세월호 참사를 가장 많은 시간동안, 가장 심도 있게, 가장 진지하게 선도적으로 보도해왔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KBS보도국장에 대한 평가는 KBS뉴스에 대한 평가를 통해 이뤄집니다. 그리고 KBS뉴스에 대한 평가는 언론노조KBS본부가 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보편타당한 사고와 시각을 가진 시청자들이 할 것입니다.

2. ‘검은 옷 착용 금지’ 지시는 청와대와 대통령만 바라보는 철저히 권력지향적인 보도태도에서 나왔다는 언론노조 KBS본부의 주장 역시 사실무근입니다.

이 지시를 내린 진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뉴스특보가 계속되고 사망자보다 실종자가 훨씬 더 많았던 당시 모 앵커가 뉴스특보에 상복 비슷한 옷을 입고 나왔고 곧바로 몇몇 시청자의 항의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생사가 불분명한 실종자들이 많은 상황에서 상복을 입고 나온 것은 실종자들이 이미 사망한 것으로 결론지은 것 아니냐, 그리고 이는 실종자 가족들을 절망에 빠뜨리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보도국장으로서 매우 타당한 지적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따라서 상복처럼 보이는 ‘검은 옷’은 지양하라고 얘기했고 그 이후에는 앵커들이 ‘검은 옷’은 입지 않았습니다. 생각들은 비슷한 것입니다. KBS뿐 아니라 다른 방송사의 뉴스앵커들도 ‘검은 상복’을 입고 뉴스를 진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시청자 게시판 등을 살펴본 결과) 검은 옷에 대한 항의가 없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 물었는데, 해당 앵커가 뉴스특보에서 검은 옷 입은 건 한 번뿐이었다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겠습니다.

3. KBS에서는 일반 시청자가 절차상 보도국장과 직접 통화하기 어렵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합니다.

언론노조KBS본부는 보도국장에게 시청자들은 직접 전화할 수 없게 돼 있으며 따라서 시청자의 전화가 왔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론노조KBS본부의 성명서를 받은 <미디어오늘> 등 진보매체 기자들은 모두 보도국장의 개인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왔으며, 개인정보보호 대상인 보도국장의 휴대전화번호 취득 경위는 밝히지 않는 이상한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사안과 관련해 과거 노조 전임자이자 공정방송위원회 노측 간사직을 역임했던 저는 언론노조KBS본부가 이렇게까지 변질되고 정치적이 될 수 있다는 데 대해 실망감을 금할 수 없습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세월호 참사를 이용해 KBS 특정간부를 공격하고 이를 통해 KBS와 조직을 무력화시키고 나아가 이를 정치 이슈화하는 그릇된 투쟁 관행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 선언으로 오늘 회견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 KBS 사장은 우리나라 민주정치가 5년 단임제를 기반으로 뿌리를 내렸으니 단임제로 해야 한다.

하나, 언론에 대한 어떠한 가치관과 식견도 없이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 온 길환영 사장은 즉각 자진 사퇴해야 한다. 그 이후에 KBS 사장의 임기는 확고히 보장돼야 한다.

하나,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훼손, 보도본부장에 대한 노조의 신임투표는 철폐하고 보도본부장의 3년 임기도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

하나, KBS노조와 언론노조 KBS본부는 정파적 입장과 미시적 관점에서 벗어나 KBS가 건전한 상식에 기초한 자유민주주의 발전과 국민 행복을 위한 언론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합리적 제도 개선 운동을 펼쳐야 한다.

하나, 이번 세월호 참사는 여와 야, 보수 진보를 떠나 우리 국민 모두 통렬히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모든 제도와 관행을 근본적으로 고치는 계기로 삼아야 할 비극이자 교훈이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보도국장 저 김시곤은 혼신의 힘을 기울였으나 보도의 중립성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책임을 지고 오늘부로 보도국장직을 사퇴하려고 하며, 한국의 유일한 공영방송 KBS가 명실상부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는 작은 씨앗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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