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의 발에 짓밟힌 태극기. 한 시민은 선수단 환영장을 입구를 가로막은 사복경찰 앞에서 끝까지 이 태극기를 들고 있었습니다.
8월25일. 대한민국선수단이 돌아와 서울 세종로에서 퍼레이드가 약속된 날. 화창하던 하늘이 갑자기 비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올림픽의 정치적 악용에 반대하는 수많은 목소리에도, 갑자기 내리는 비에도 행사는 열렸습니다. 비에 젖은 아스팔트 위를 전통군악대가 앞서고 그 뒤를 태극기가 따랐습니다.

▲ 비 맞은 대형 태극기가 선수단 앞에서 행진을 이끌고 있습니다, 폐막식에 등장한 세계지도에서 사라진 동해와 고립된 한반도가 오버랩 됐습니다.
박태환과 장미란 선수가 선수단의 대표기수로 앞장 서고 그 뒤로 선수단이 각 종목별로 팻말을 들고 뒤를 따랐습니다. 거리는 선수들의 얼굴이라도 보겠다고 나선 시민들로 가득했지만 길 옆에 매달린 현수막은 시민들의 시선을 가려버렸습니다.

현수막 안쪽 도로는 촛불을 대비하는 경찰들의 날선 시선과 선수들의 사진을 찍겠다는 기자들, 그리고 그 기자들을 저지하려는 경호인력과 행사진행 인력이 뒤엉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선수들도 시민들도 퍼레이드의 주역은 아니었습니다.

▲ 선수단 기수로 태극기를 든 박태환 선수와 장미란 선수. 과도한 경호인력과 기자들로 선수들을 환영나온 시민들은 막상 선수들의 얼굴을 보기 힘들었습니다.

▲ 거리 양옆에 과도하게 늘어선 현수막은 시민들이 선수단의 행진대열 조차 보기 힘들게 했습니다. "대한민국 5천만이 대표선수입니다"라는 현수막 글이 무색할 정도로 시민들은 철저하게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경찰들의 시선은 참 부담스러웠습니다.
선수단이 시청광장에 도착할 즈음 간간히 뿌리던 비는 다행히 멎었습니다. 급하게 만들어진 탓인지 약간 어수선했지만 선수들도 즐거워했고 시민들도 즐거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프로그램은 선수단장의 인사말, 선수단 소개, 인기가수들의 공연, 일부선수단의 노래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 시청 앞 무대에 선 선수들. 시민들은 정말 열렬하게 선수들을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선수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늘어선 경찰과 통제선 탓에 시민들은 많이 불편했습니다.

행사장 주변은 경찰들로 빼곡했습니다. 넓은 시청앞 광장을 울타리와 경찰통제선으로 둘러치고 일부 통로만 연 것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촛불을 막으려는 의도인 듯했습니다. 행사장 주변을 돌아보다 반가운 모습을 봅니다. 촛불입니다.

▲ 행사장 하늘높이 걸린 대한민국. 행사장의 주요 현수막과 풍선 등은 온통 빨간색이있는데... 이는 협찬사인 STX의 주요색인 것 같습니다. 선수단 환영식에서 한 기업의 마케팅 기회와 정치적 의도는 굳이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한 눈에 보였습니다.

▲ 행사장 한 쪽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 바로 앞에 경찰이 있었지만 그들의 촛불은 밝았고 많은 시민들이 이들에게 격려의 말을 건넸습니다.

어둠이 점점 짙어져 갈 무렵. 행사장 주변의 경찰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경찰들이 움직이는 방향은 프라자호텔 쪽. 그곳에 거꾸로 게양된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쫓아가 봤습니다.

경찰이 시민 연행을 시도하고 있었고 많은 시민들이 경찰을 가로막고 연행을 저지하고 있었습니다.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거리고 삽시간에 모여든 시민들의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 폭력경찰 물러가라" " 연행자를 석방하라" 구호는 다시 변해서 " 명박퇴진, 어청수 퇴진" 등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구호는 점점 더 커졌습니다. 무대의 엄청난 앰프소리를 누를 만큼 소리가 커졌을 때 쯤 경찰들이 한걸음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날도 연행자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 어르신이 경찰 앞에서 도대체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연행하려 하느냐고 조곤조곤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태극기를 거꾸로 든 것을 탓하는 경찰에게 한 어르신의 말입니다.

"난 빨간색이 위로 올라가게 배웠는데 대통령이 파란색이 위로 올라가게 들더란 말야... 국민이 대통령을 따라야지... 아니 그것도 죄야? 그러면 대통령도 잡아가야지."

경찰은 아무런 답을 하지 못합니다.

또 한쪽에서 또 다른 어르신이 경찰을 호되게 꾸짖고 있었습니다. 연행과정에서 거리에 떨어진 태극기를 경찰들이 발로 밟고 있었던가 봅니다.

"아니 이사람들아. 당신들이 대한민국 경찰이야 친일파 지키는 경찰이야... 대한민국 경찰이 어떻게 태극기를 발로 짓밟아..." 몇몇 경찰들은 머쓱해 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 시민을 연행하려던 경찰들과 이를 막는 시민들, 그리고 이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한데 몰려 혼란이 있었습니다. 연행당할 뻔하던 시민들은 그저 거꾸로 게양된 태극기를 들고 있었을 뿐이었다고 합니다. 구호도 외치지 않았는데 경찰들이 갑자기 달려들면서 혼란이 야기됐습니다.

▲ 경찰의 연행시도가 시작됐지만 한 시민은 악착같이 거꾸로 게양된 태극기를 흔들었습니다.

▲ 경찰들이 갑자기 늘어났습니다. 사복차림의 이들이 들고 있는 작은 부대 식별 깃발이 아니었다면 경찰인지 알아보기조차 힘들었을 겁니다.

▲ 시민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물러나는 경찰들. "불가능은 없다"라는 등의 글귀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혹시 촛불을 든 시민들에게 하는 격렬의 말은 아닐까요?

▲ 경찰앞에서도 시민들의 저항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 한 시민이 손수건에 매직으로 쓴 항의글을 경찰들에게 들어보이고 있습니다.

▲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경찰은 아예 행사장 진입로를 막아섰습니다. 경찰이 참 많더군요.

▲ 경찰에 의해 찢겨진 태극기를 든 한 시민. 경찰 바로 앞에서 오랫동안 제자리를 지킨 그 시민의 표정은 분노를 넘어 슬픔으로 가득차 보였습니다. 그 시민은 행사장 안으로 끝내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처음 경찰이 연행을 시작할 때는 잘 보이지 않던 거꾸로 든 태극기가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경찰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었습니다. 무대에서는 혼혈가수 인순이씨가 부르는 <거위의 꿈>이 흘러나왔습니다. 시민들은 그 노래에 맞춰 태극기를 정말 열심히 흔들었습니다.

▲ 경찰의 시민연행 시도는 오히려 시민들을 자극해 태극기를 거꾸로 드는 '대통령 놀이'는 시청한켠 광장에서 오랫동안 지속됐습니다.

죄가 없더라도 경찰의 연행은 무섭습니다. 그 무서움을 극복하고 경찰 바로 앞에서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용기일 겁니다. 우리시민들의 용기가 대한민국을 사람이 살 만한 나라로 만들어가는 유일한 동력입니다. 행사가 끝날 때까지 태극기를 든 용기있는 시민들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 이 시민은 경찰들의 바로 앞에서 행사가 끝난 뒤에도 경찰이 물러날 때까지 거꾸로 게양한 태극기를 들고 자리를 지켰습니다.

▲ 경찰의 연행조치에 항의하는 한 청년. 손수건을 높이 든 그 청년의 팔은 애처로울 정도로 떨리고 있었지만 청년은 끝까지 손수건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밤 9시가 넘어 행사는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거리 곳곳에는 많은 시민들이 자리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다시 등장한 횡단보도를 오가는 시민들의 저항이 끝이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횡단보도를 신호등에 맞춰 오가는 시민들의 구호는 " 대한민국, 이병박 퇴진" " 공안탄압 중단하라" " 폭력경찰 물러나라" 짙어가는 어둠을 뚫고 힘차게 퍼져갔습니다.

거리 곳곳의 시민들은 박수로, 같은 구호로 이들을 격려했습니다. 시민들의 표정은 점점 더 밝아져갔고, 덕수궁 돌담에 기댄 채 시민들을 바라보는 경찰들의 얼굴에는 피로감이 짙어갑니다.

8월25일 시청앞 광장. 세상을 바꾸는 것은 용기라는 것을 다시 일깨우게 한 시간이었습니다.

용기가 있는 분들은 불의에 맞서 깃발을 들고 싸웁니다.
용기가 부족하다면 깃발을 든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면 됩니다.

부족한 용기를 감추기 위해 오히려 상대의 편에서 용기있는 분들을 폄하하는 분들을 간혹 봅니다. 그것은 노예가 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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