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3시께. 여름의 끝을 알리는 서늘한 빗줄기를 뚫고 서울 남대문로 YTN 사옥으로 향했다. 노조의 출근저지 투쟁으로 사장실에 입성하지 못했던 구본홍 YTN 사장이 3시30분께 사장실로 온다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일 이어지는 노조의 출근 저지에 한동안 출근할 의욕을 잃어버린(?) 듯했던 구 사장은 갑자기 왜 (남들은 다 저녁 약속을 준비한다는, 황금 같은) 금요일 오후에 출근을 감행한 걸까. 바로 '월급 도장'을 찍기 위해서라고 했다. YTN의 월급 지급일은 25일이다.

▲ 구본홍 사장을 막아선 YTN노조원들 ⓒ곽상아
'월급 미지급설'(?)이 퍼진 것은 22일 오전부터라고 한다. 일부 간부들을 통해 "노조 때문에 직인 도장을 찍지 못해 25일날 월급이 안 나올지도 모른다"라는 얘기가 퍼졌고, 이것이 노조에 전달된 것이다.

노조는 이를 '노노 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사측의 월급장난'이라고 판단했다. 사장 공석 때도 월급과 수당은 별 문제없이 지급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 사장은 현재 밖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어 월급 도장을 꼭 사장실에서 찍어야 할 이유가 없기도 했다.

구 사장이 간부들을 대동하고 17층 사장실 앞에 나타난 것은 3시40분께. 미리 대기하고 있던 노조원 40여명은 구 사장을 향해 "노노갈등 유발하는 월급장난을 집어쳐라"는 구호를 연이어 외쳤다.

한동안 말이 없던 구 사장이 말했다.

"내가 월급을 가지고 협박하고 있다고 보나. 사장이 도장을 찍어야 월급이 나온다. 여러분은 조합원 외의 YTN 사원들도 생각해줘야 한다. 노조 때문에 월급 안 나오면 사원들만 문제가 아니라 사원들 가족까지 피해본다."

하지만 노종면 언론노조 YTN지부장은 "월급 책임을 노조에게 뒤집어 씌우려 하지 마라"며 이렇게 반박했다.

"지금 당신이 월급으로 협박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이렇게까지 치졸하고 비열하게 생각하는 분이라면 YTN사장으로 적합하지 않다. 사장이 공석일 때도 월급과 수당이 전부 나왔다. 월급 책임을 노조에게 뒤집어씌우지 마라. 다른 업무는 다 밖에서 보면서 왜 월급 결제만은 꼭 사장실 안에서 하겠다는 것인가. 회사 규정에 따라 인감관리 책임이 있는 사람이 사장실에서 도장 가지고 나가서 찍고 바로 다시 들여오는 방법도 있다. 간부들도 이런 일에 동원되지 좀 마라. 창피하지도 않나."

▲ 고개를 떨군 구본홍 사장 ⓒ곽상아
이에 구 사장은 "나는 사장으로서 내 방에서 도장을 찍어야 한다. 밖에서 찍으라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도장만 찍고 가겠다. 비켜주시라"고 말했다. 한 간부 역시 "직인이 있는 장소는 사장님만 알고 있다. 사장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을 보탰다. 노조 쪽은 "도장은 금고에 있다. 그게 무슨 옥쇄라도 되느냐"고 반박했다.

'월급 도장' 문제로 노사가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노조 쪽에서는 "YTN을 그만 물러나십시오" "YTN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언론계 선배라면 이제 그만 물러나시라" "김인규도 물러났는데 왜 그러나" 등 구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구 사장은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이 없다가 "이만 돌아가겠다"며 3시50분께 돌아갔다. 구 사장이 돌아간 뒤 노조 관계자는 취재온 기자들에게 "25일까지 월급이 미지급되면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월급 미지급 사태가 벌어졌을 때 사원들에게 조합비로 일단 급한 돈을 주는 방안도 검토하는 듯하였다.

하지만 생계 해결의 수단인 '월급'은 너무나 민감한 문제였기 때문일까. 노조는 "절대로 사장실에 들어오게 할 수 없다"며 구 사장을 돌려보낸 지 불과 1시간 만에 "급여 지급을 위해 노조가 양보하겠다"는 글을 내부 게시판에 공지했다.

노조는 "구본홍씨를 YTN의 사장으로 인정할 수는 없으나 끝까지 직인 날인을 막는 일이 노노 갈등을 부추기려는 구씨의 의도에 넘어가는 것이라 판단해 양보를 결심했다"며 "월요일 중으로 직인 날인이 이뤄지도록 양해하겠다"고 밝혔다.

노종면 지부장은 노조 공지 직후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월요일 중으로 구씨가 잠시 사장실에 들어가서 도장만 찍고 나올 수 있도록 허락하겠다고 사측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그럼 다음 달 월급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노 지부장은 "이런 식은 이번 한번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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