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해직기자 6명이 오는 28일 해직 2000일을 맞는다. 지난 2008년 10월6일, YTN 인사위원회가 권석재, 노종면, 우장균, 조승호, 정유신, 현덕수 등 기자 6명에게 해고 통보를 했을 당시만 해도 해직 사태가 이렇게 길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던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지난 6년 간, 해직 사태를 풀 수 있는 계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사 간 합의를 깨고 법원의 ‘해고 무효’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의를 제기했던 YTN 회사 쪽, 해직 언론인 문제에 손 놓고 있는 정치권, 3년 넘게 해고 무효 소송에 대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대법원이 전향적인 태도를 취했다면 분명 해직 사태는 2000일을 맞기 전에 다른 결말을 맺었을지도 모른다.

▲ 2008년 10월 YTN 노조원들이 서울 남대문로 YTN 타워 1층 후문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미디어스
구본홍 반대 투쟁, 그리고 YTN 6명 해직

YTN 해직 사태는 지난 2008년 10월, 구본홍 사장 반대 투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YTN 노조원들은 이명박 캠프의 방송 특보를 지냈던 구본홍씨가 사장으로 오는 것이 “공정방송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구본홍 반대 투쟁’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YTN 노조원들은 “낙하산인 구본홍씨가 사장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회사가 단행한 인사 발령을 거부하는 등 노사가 팽팽히 맞서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 결과, YTN은 2008년 10월6일 노종면 당시 노조위원장을 포함한 6명을 해고하는 등 33명에 달하는 기자들에게 징계 처분을 내렸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폐합 사태 이후 처음 있는 ‘무더기 해고’였다. 당시 YTN 기자들 뿐 아니라 각 정부 부처에 출입하고 있는 다른 언론사 기자들까지 잇달아 성명을 내어 “기자의 생명인 펜을 뺏고 마이크를 끄는 행동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YTN을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해직 사태 장기화 … 무력화 된 YTN 보도

YTN 해직 사태는 단지 6명의 기자들이 해고된 데에서 끝나지 않았다. 해직 문제에 대한 노사 사이의 간극은 컸다. 이견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YTN의 가장 주요 콘텐츠였던 <돌발영상>은 무력화 되었고, 뉴스전문채널로서 YTN의 보도 경쟁력은 크게 하락했다. 공정방송 침해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구성원들은 이 때마다 성명을 내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지만 바뀌는 것은 많이 없었다. 해직 사태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보인 YTN에 좌절하고 실망한 구성원 여럿도 스스로 YTN을 떠났다.

해직 사태가 꼬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YTN 태도에 있다. YTN노조가 제기한 징계무효소송에 대해 2009년 11월 법원이 ‘6명 전원 해고 무효’ 판결을 내렸음에도, 회사가 YTN 노사 합의를 뒤집어 항소하기 시작하면서 해직 사태는 더 꼬여만 갔다.

지난 2009년 4월1일, YTN 노사는 노종면 당시 노조위원장 구속적부심을 앞두고 ‘상호 신뢰와 협력의 정신’을 바탕으로 “2008년 10월에 발생된 해고자들에 대해서는 법원의 결정에 따르기로 한다”고 합의한 바 있다. 이 합의서는 단체협약과 동일한 효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노사가 합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본홍 사장은 갑작스럽게 사퇴했다. 이후 YTN은 2009년 11월 법원이 ‘6명 전원 해고 무효’ 판결을 내렸음에도 결국 “법원 판결은 대법원 판결을 의미한다”며 항소했다. 이 사안은 현재 대법원에서 3년째 계류 중이다.

이와 관련해, 당시 합의에 직접 서명했던 구본홍 전 YTN 사장은 지난 2012년 8월 <기자협회보>와 인터뷰에서 “법원의 1심 판결이 나오면 그 결과를 수용할 생각이었다. 1심의 결과가 YTN 완전 정상화의 결정적 계기가 되리라 생각했다”며 현재까지 해직 사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 지난 2009년 10월 YTN 해직 1주년 당시 미디어스와 인터뷰를 했던 YTN 해직 기자들 ⓒ미디어스
정권 차원의 입김 작용한 YTN 해직 사태

YTN 해직 사태 해결이 쉽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YTN 해직 사태가 단순한 노사 사안이 아닌 정권 차원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사실 YTN이 자체적으로 6명에 대한 해고를 결정했다고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YTN 사태에 정권 차원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추측은 그 동안 재판 과정 등에서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충분히 추론 가능하다. 그렇기에 정권 차원의 큰 결단 없이 YTN이 자체적으로 해직 사태에 대해 큰 결단을 내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관측이 뒤 따르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정치권을 향해 해직 언론인 사태에 적극 나서라고 촉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구본홍 반대 투쟁이 극심했던 2008년 9월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였던 우장균 YTN 기자는 기자협회보 칼럼을 통해 당시 박선규 청와대 언론2비서관이 2008년 8월19일 YTN 노사가 협상결렬을 선언한 직후 본인을 찾아와 “청와대는 구본홍씨를 사퇴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대통령의 뜻”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폭로한 바 있다.

또,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지난 2008년 YTN을 불법사찰을 자행했던 사실은 정권이 YTN 사태에 깊숙하게 개입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황이 되기도 했다. 2008년 10월 YTN 노조원들이 해고를 당했을 당시, 원충연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지원관이 YTN 근처로 직접 출근하며 불법사찰을 자행한 기록들은 이미 언론을 통해 공개된 바 있다.

이에 지난 2012년 11월13일 노종면 당시 YTN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조승호, 임장혁, 현덕수 등 노조원 4명은 “BH(청와대) 하명에 따른 총리실의 불법사찰 조직이 주도한 범죄행위로 인해 막심한 경제적,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며 대한민국과 원충연 당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조사관에 대해 각각 2억5천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국무총리실이 2009년 YTN이 파업에 돌입하기 직전 노조위원장이 긴급 체포되는 과정에서 경찰서를 직접 찾아 우려를 표하는 등 사실상 ‘압력’을 가한 사실은 지난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 논란이 일기도 했다. YTN 사태가 극심했던 2009년 당시 남대문경찰서장이었던 김기용 전 서장은 재판 과정에서 서면진술을 통해 남대문서장 재직 당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 2명이 찾아와 YTN 사태에 우려를 표명했다고 답변했다. 김기용 서장은 또 지난해 11월15일에 증인으로 출석해 당시 찾아온 사람이 원충연 조사관이냐는 질문에 “누군지 기억이 안 난다”고 답변했으나, 재판이 끝난 뒤 취재진이 “오늘 법정에서 본 원충연씨가 그때 찾아온 사람이 맞느냐”고 묻자 “네, 서장실에서 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감감 무소식 대법원, 장기화 되는 해직 사태

▲ (사진=YTN노조)
해직 기자를 비롯해 YTN 노조원이 제기한 징계무효확인 소송은 약 3년 가까이 감감 무소식이다. 노조원들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2009년 11월 1심에서 전원 해고 무효 판결을, 2011년 4월 2심에서는 6명 가운데 3명에 대한 해고만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에 기자들은 2011년 5월, 대법원에 상고했다.

지난 2011년 5월27일 대법원에 접수된 해당 사건의 기록을 살펴보면, 양 쪽 변호인들은 2011년 6월부터 2013년 9월까지 소송위임장, 상고이유서, 상고이유보충서 등 서류를 제출했고, 특히 한국기자협회 소속 기자들은 해고의 부당함을 담은 탄원서를 2012년 3월5일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3년 9월 이후, 해당 사건에 대한 움직임은 없다.

앞서 지난 1월 대법원 쪽은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현재 YTN 사건은 대법원에서 검토할 게 많아 (아직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 재판부는 나름 쟁점에 대해 검토하고 있고, 빨리 선고될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선고와 관련된 움직임은 3월 현재까지 보이지 않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