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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분장하고 12시간 대기… 촬영 자체가 취소되기도”[방송사 비정규직 인터뷰] 드라마 단역배우
송선영 기자 | 승인 2014.03.12 01:01

11일 오전, 한 단역 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KBS <대조영> 등에 출연했으나 출연 작품이 적어지면서 생활고를 겪었고 일용직 노동자로 생계를 이어가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연도 함께 전해졌다. 이 단역 배우는 한 번도 대중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다가 안타깝게도 결국 고인이 되어서야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우리가 자주 보는 TV 속 드라마에는 내로라하는 스타들을 제외하고도 드라마 속 한 컷 한 컷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배우들이 있다. 조연 배우, 단역 배우, 보조출연자 등 대사 한 마디를 위해 수없이 노력하면서 언젠간 이들에게 쏟아질 스포트라이트를 기대하며 하루하루 묵묵히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한 젊은 단역 배우의 삶도 그렇다. 연기에 대한 열망을 붙잡고 꾸준히 드라마, 영화에 출연하고 있지만 작품 안에서 고정적으로 출연한 경우는 드물다. 이 때문에 수입도 고정적이지 않다. 작품에 많이 출연할 때에는 한 달에 2백만원이 넘는 수입을 벌기도 하지만, 한 달에 한 작품에만 출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최소 생활비도 벌지 못할 때가 많다. 배우라는 열정 하나만으로 이 직업을 선택한 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대가는 혹독하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명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나민준(가명)씨는 2010년 경 부터 ‘연기’라는 세계에 발을 내밀었다. 그가 작품 속에서 맡은 역할들을 다양하다. 고시생, 배달원, 퀵서비스 맨, 청년, 기자, 그리고 귀신 등. 나민준씨는 최근 배우 김수현이 출연해 큰 화제가 되었던 <별에서 온 그대>에 출연한 바 있다. 화려한 조명을 받았던 김수현과는 달리 작은 배역을 맡았던 그는 얼굴조차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 단역 배우 나민준씨가 출연했던 SBS <별에서 온 그대>. (SBS)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들은 어떻게 되나?

<계백> <무신> <아랑사또전> <구가의서> <미스코리아> <각시탈> <시티헌터> <청담동 앨리스> <야왕> <별에서 온 그대> 등이 있다.

방송에 출연하는 배우의 유형도 여럿일 거 같다. 단역배우라는 표현이 맞나?

단역배우가 맞다. 우리끼리의 말로 병풍이라고 한다. 한 그림을 만들기 위해서 병풍이 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역할이 있다. 대사가 아주 없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사건에 개입을 한다. 회장님의 비서, 운전기사 등 자주 등장하지만 비중은 없는 고정 단역이란 역할도 있다. 보조출연자는 대사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단역에도 등급이 있다. 방송사가 배우에게 등급을 허가해 준다. 1등급부터 18등급까지 있는데 1등급에서 5등급까지는 아역, 6등급에서 18등급까지는 성인이다. 숫자가 높을수록 돈을 많이 받는다. 단역배우 같은 경우는 등급이 있냐 없냐에 따라 페이가 천지차이다. 등급이 없으면 10만원 중후반이고, 등급 가운데 가장 낮은 등급인 6등급은 45만원이다. 또, 방송사 세트에서 찍냐, 야외냐, 밤을 넘기냐 등에 따라 수당이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처음 등급이 없을 때에는 생활비로 택도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등급을 따면서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생활비가 되긴 되니까. 지금은 6등급이다. 올리기 어렵다.

일은 어떤 식으로 하나?
 
‘캐스팅 디렉터’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배우와 드라마를 연결해 준다. 이 사람들에게 프로필을 주면 (그 가운데서) 연기를 잘하든지 아니면 믿을 만한 사람을 쓴다. (드라마 쪽에서) 일이 들어오면 연락을 해서 맞춰주는 거다. 그게 쉽지는 않다. 원체 많은 사람들이 있다. 처음이 어렵다. 아무리 연극을 많이 했어도 드라마 촬영장에 가서 잘 한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경력자가 아니면 잘 쓰질 않는다. 배우가 촬영장에서 제대로 하지 못하면 캐스팅 디렉터들이 엄청 깨진다. 

처음 하는 사람들은 드라마에 나오기 되게 어렵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는 이들이 아니면 드라마 출연이 힘들다. 이들 연락만 기다리니, 캐스팅 디렉터가 갑 우리가 을이다. 사정이 정말 급해서 거절하면 디렉터들은 ‘너 배불렀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자신들이 캐스팅 한 배우가 잘 못하거나 촬영장에서 시간을 끌면 (드라마 제작진이) 디렉터를 엄청 혼낸다. 디렉터들은 우리에게는 갑이지만 반대로 드라마 제작진한테는 약자다.

피치 못할 상황으로 스케줄이 중복될 경우, 일찍 끝나고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상황이 겹쳐서 할 수 없게 되면 디렉터에게 연락을 해 사정이 이렇다고 말해도 ‘안 돼요’라고 말한다. 다른 촬영장에 있는데도 무조건 가야한다. 안 가면 일 하지 못하게 할 거라는 협박을 하기도 한다. 이게 엄청난 스트레스다. 물론 배우에게 공손한 디렉터들도 많다. 

출연료는 바로 들어오나?

출연료는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 정도면 웬만하면 들어온다. 드라마 재정 상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말이다. <드라마의 제왕>과 <야왕>은 문제가 있어서 아직까지 못 받았다가 이제 곧 받는다고 하더라. 제작사가 문제 있는 경우는 몇 개월을 기다리기도 하고, 아주 가끔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망하면 못 받는 거다.

디렉터에게 출연료의 30%를 수수료로 준다. 관행으로 정해진 거다. 급하게 캐스팅이 되었거나 도움을 준 경우에는 ‘20%만 주세요’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30%가 우리에게 법이고, 정해진 법정 수수료다. 

   
▲ 단역 배우 나민준씨가 출연했던 MBS <계백>. (MBC)
고정 수입이 없는 걸 텐데, 먹고 살만은 하나?

고정이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고, 매달 다르다. 한 달에 많이 벌면 2백만원 정도, 못하면 백만원 정도 벌 때도 있다. 그것도 안 돼 작품 하나 할 때도 있다. 수입이 고정되지 않아 그래서 아르바이트들을 한다. 불안하니까. 그런데 아르바이트를 하면 촬영 일정과 안 맞아서 (작품을) 더 못 구하기도 한다. 악순환이다.

드라마 제작 상황 열악하지 않나. <별에서 온 그대>를 보면 천송이도 대기하던데….

상황이 다르다. 현장에 가서 준비 마치고 나서도 곧바로 찍은 경우는 운이 좋은 거고, 한 두시간 정도 기다리는 게 기본이다. 사극은 12시간 정도 기다리기도 한다. 우리 같은 단역은 매니저가 없고 차가 없는 경우가 많으니 야외에서 대기하는 것도 일이다. 예전 양주에 있는 MBC 세트장에 촬영을 갔는데 10시간 정도 수염을 붙이고 갑옷을 입고 기다렸는데 씬이 없어졌다고 가랜다. 열 받아서 옷만 벗고 수염 다 붙이고 콜택시 불러서 집까지 왔다. 그 당시는 너무 짜증이 났다. 이게 뭐하는 짓거리지 하면서.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사극 드라마에서 처음 해보는 분량이 주어졌다. 부담이 되어서 계속 보다 보니 오히려 머리가 꼬이고 뒤죽박죽되면서 단어가 한 글자씩 다 섞여버렸다. 안동 민속촌이었는데 보조 출연자만 50~60명이 넘었고, 관광객도 100여명 정도 있었다. 주인공이랑 붙는 장면이었는데 동선도 너무 많고 대사도 많으니 긴장이 된 거다. 백지장처럼 생각이 안 났다. 20~30번을 찍으면서 계속 ‘죄송합니다’만 했는데 감독이 개새끼 소새끼 하면서 쌍욕을 하더라. 결국 그 장면을 찍었는데, 다시 그 영상을 보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마을 주민들에게 엄포를 놓으면서 큰 소리를 쳐야하는 장면인데 내 표정이 얼어있다. 그 뒤 울렁증이 생겼고, 이를 극복하기까지 2년이 더 걸렸다. 

   
▲ 지난 2012년 4월18일, 각시탈 촬영 현장으로 향하던 버스가 전복돼 그 안에 타고 있던 보조출연자 박 아무개씨가 숨졌다. 이후 유족들은 KBS 앞에서 침묵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미디어스)
<각시탈>에 출연했다고 들었다. 이 드라마 촬영 다시 보조출연자가 목숨을 잃는 사건이 있었다. 알고 있나. 이를 지켜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첫 촬영 할 때였다. 합천에서 찍었는데 서울에서 다섯 시간정도 걸렸다. 내려가서 오는 것도 막막하고 가서 대기할 것도 막막했다. 보통 그런 경우 스텝들의 차나 단체 버스에 타 일행처럼 같이 이동하곤 한다. 보통 때였으면 나도 보조출연자들과 같이 버스를 탔을 것이다. 당시 고민하다가 집에서 차를 가져갔는데 사고가 났다. 그 버스를 타고 갔다면 나도 사고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누가 죽어서 불거질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촬영 다니면서 보는 반장들이나 스텝들이 보조출연자에게 하는 대우를 보면 우리가 생활하면서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군대를 제외하고 그렇게 뭐라고 하는 거 처음 본 거 같다. 나이가 많은데도 막 대한다. 보조출연자들은 대본이 없다. 해당 장면을 찍기 바로 전 ‘이러한 장면이니 이렇게 해라’는 설명을 구두로 하기 때문에 어려울 수 있다.

드라마 제작 현장이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나?
 
모든 방송 드라마의 문제는 ‘제작’인 것 같다. 포괄적이긴 하다. 사전 제작이 완벽하게 되지 않으면 시간에 쪼들릴 수밖에 없다. 스텝, 작가 배우 등 모두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는 작업 환경이 좋을 수가 없다. 한국은 여러 가지 문제로 사전 제작을 거의 안하니까. 하더라도 몇 회분만 하니까. 결국에는 구조적인 문제다. 단역이든 뭐든 간에 그게 해결 안 되면 무의미하다.

연극에도 도전한다고 하던데

단역 배우가 가지고 있는 한계 때문이다. 우리는 더 좋은 배우, 조연이 되었든 주조연이 되었던 더 좋은 역할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실전에서 할 수 있는 양은 너무 적다.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는 게 적다. 트레이닝이 필요하기도 했고, 연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시작했다. 당장 좋은 작품이 왔을 때 준비가 잘 되어 있어야 빛을 발할 수 있으니까.

진짜 꿈이 무엇인가?
 
(한참동안 침묵하다가) 길게 가는 거다. 배우들 중에는 금전적인 문제, 생활고 때문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다. 내가 직업으로서도 내 생활이 가능하게끔 유지가 된다면 그거면 되는 거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일이 돈벌이가 되면 그걸로 만족한다.

송선영 기자  sincerely@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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